"털보 아저씨, 마지막으로 우리 딸 여권 사진 한 장 찍어주세요."

지난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사진관 '행운의 스튜디오'. 주부 김수진(34)씨가 세 살배기 딸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제 돌 사진도 여기서 찍었고 졸업사진과 우리 가족 사진도 모두 아저씨가 찍어주셨잖아요. 사진관 문 닫는단 말을 듣고 아쉬운 마음에 달려왔어요."

사진관 주인 김선수(69)씨가 카메라를 들며 눈물을 글썽였다. "내가 카메라 셔터 누른 지도 벌써 40년이 넘었으니, 이제 그만할 때가 됐나 봐요." 10년 전까지만 해도 턱수염이 덥수룩했던 김씨는 동네에서 '털보 아저씨'란 별명으로 불린다.

김씨는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977년 이곳에 50㎡(약 15평) 남짓한 사진관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목사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 사진을 배운 것이 평생 직업이 됐다고 한다. 그는 "영화는 못 찍었지만 망원동 사람들의 인생을 담는다는 생각으로 40년간 셔터를 눌렀다"며 "내가 찍은 사람들만 15만명이 넘는다"고 했다.

2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사진관 ‘행운의 스튜디오’에서 김선수(69)씨가 손님의 여권용 사진을 찍고 있다. 김씨는 주변 상권이 뜨면서 임대료가 크게 오르자 40년 동안 운영해온 사진관의 문을 이달 말 닫고 폐업할 예정이다.

김씨는 40년간 사진값을 올리지 않았다. 처음 개업할 때나 지금이나 '증명사진 9장에 여권사진 8장을 합해서 1만원' '돌사진 액자 포함 1만원'으로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우리 사진관 손님 중에 가난한 사람이 많았다"며 "추억을 선물해 준다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싶어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고 했다.

사진을 배우려는 학생들을 상대로 무료 강연도 많이 했다. 김씨는 "벼룩시장에 '무료 사진 강연' 광고를 내면 주머니 얇은 대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며 "지금까지 학생 3700명 정도가 스튜디오에 찾아와 사진을 배워갔다"고 말했다. 사진관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박남(55)씨는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망원동에 있던 사진관이 줄줄이 문을 닫았지만, 아저씨의 인심 때문인지 여기만 손님이 바글바글했다"고 말했다.

이 사진관은 오는 30일 문을 닫는다. 망원동 일대가 이태원 경리단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면서 '망리단길(망원동+경리단길)'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상권이 살아나면서 임대료가 3배나 뛰었기 때문이다. 2일 사진관 앞에는 '3월 30일까지만 운영합니다. 가족사진, 영정사진 80% 할인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망원동 토박이인 김경민(35)씨는 "첫 가족사진부터 주민등록증 사진, 운전면허 사진까지 모두 여기서 찍었는데 사진관이 문을 닫으니 내 어린 시절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