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어제 자국 내 말레이시아 국민의 출국을 금지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김정남 독살 사건의 여파로 강철 주(駐) 말레이시아 북한 대사를 추방하고, 비자 면제 협정을 취소하자 나온 조치다. 이에 따라 북한에 거주하는 말레이시아 국민은 사실상 북한의 인질이 돼버렸다. 말레이시아 나집 라작 총리도 북한인 출국을 금지하는 등 대응 조치를 취했다.

국가 간에 상대국 외교관을 추방하거나 기피 인물로 설정하는 것은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외교관계에 대한 빈 협약'은 관련 조항을 두고 있다. 그러나 북한처럼 민간인을 억류하는 것은 전시(戰時)에나 있을 조치다. 더구나 말레이시아에서 김정남을 최악의 화학무기로 독살해놓고 인질까지 잡는다는 것은 북이 말레이시아 문화부장관 말대로 "깡패 국가"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집단을 상대로 '외교'나 '국제법'을 말하는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소용없는 일이다.

이번 사건은 전 세계가 북한 정권의 야만성과 폭력적 본질을 바로 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먼저 말레이시아가 속해 있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이 북한과의 관계를 재설정한다면 북의 행태에 큰 경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67년 설립된 아세안은 동남아시아 10개국의 정치·경제·문화 공동체로 그동안 북한에 비교적 관용적으로 대해왔다. 평양에 공관을 둔 국가는 모두 24국에 불과한데, 아세안은 절반이 상주 대사관을 유지해왔다. 이런 이유로 북한은 아세안을 아시아 외교, 통상의 거점으로 삼아왔다. 북한이란 나라의 본질을 모른 것이다. 당연히 북은 이 나라들을 무대로 테러, 불법 돈벌이, 돈세탁, 밀수 등을 저질러왔다. 우리 각료 등 17명을 폭사시킨 북 테러가 일어난 곳도 아세안에 속한 미얀마였다. 아세안 전체가 북한에 경고하거나 특별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