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10시30분,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이끈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국회 의원회관 4층 자신의 의원실에서 경제민주화법안 처리에 소극적이었던 당내 주류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면서 탈당을 예고했다. 같은 시간,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는 같은 건물 2층에 있는 한 회의실에서 '경제현안 점검회의'라는 이름으로 캠프 내 경제 전문가들을 망라한 공개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참석자들은 참여정부 출신 전직 관료들이 주축이었다. 건설교통부와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했던 이용섭 전 의원,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과 환경부 차관 출신 김수현 세종대 교수, 재정경제부 국제금융차관보와 조달청장을 역임한 김성진 숭실대 교수 등이 주요 멤버였다. 김 전 대표의 자리는 없었다.
문 전 대표는 행사가 끝난 후 기자들을 만나 '김 전 대표의 탈당 예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문 전 대표는 김 전 대표의 기자간담회 사실도 몰랐다가, 기자들에게 김 전 대표의 발언 내용을 전해들은 뒤에야 "사실이라면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라고 답했다.
문 전 대표는 ‘김 전 대표를 직접 만나 설득할 생각이 없나’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다”고 했지만, 문 전 대표측에서 김종인 전 대표를 만나 적극적으로 탈당을 만류하는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날 경제현안 점검회의를 주관한 이용섭 전 의원이 탈당 예고 간담회 직전 김 전 대표를 만난 것이 문 전 대표측의 움직임의 전부였다. 20대 총선을 앞둔 지난해 1월 김 전 대표를 영입했을 때와 비교해보면, 이날 문 전 대표의 반응은 상당한 온도차가 느껴졌다.
◆ 金 "여소야대 1년, 개혁 진척없어" vs 文 "야당이라 정책 주도 못해"
정치권에서는 이날 문 전 대표가 보인 반응이 김종인 전 대표의 탈당 이유를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라고 평가한다.
김종인 전 대표는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탈당 이유로 개혁 입법 과제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과 20대 국회에 대한 실망을 꼽았다. 그는 “민주당에 와서 4.13 (국회의원) 선거 때 국민들에게 '여러분이 많은 의석을 주면 제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하게 수행해서 변화를 가져올테니 도와달라'고 했는데, 지금 20대 국회가 1년이 거의 다 됐고 모든 당이 개혁 입법을 외치고 있으면서도 실질적인 개혁 입법은 진척이 안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집중투표제 도입 등을 주요 골자로 한 자신의 상법 개정안 처리에 미온적인 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 등이 탈당 결심을 굳히게 된 계기로 거론된다.
문 전 대표는 이에 대해 “지금까지는 우리가 야당이어서 정책 주도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가 정권을 잡아서 우리가 정책을 주도해나갈 수 있을 때 (경제민주화 입법이)비로소 가능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문 전 대표의 반박은 김 전 대표의 생각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김 전 대표는 “현재도 여소야대 국회 속에서 당이 개혁을 외치고 있다면 그 개혁에 관한 입법이 순조롭게 진행되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제대로 진행이 안되는 상황에서 나는 상당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면서 “여야 정권교체의 의미라는 것이 별로 나라의 변화를 일으키는데 크게 작용하지 않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 金 "순탄한 입법하려면 180석 필요"...'대통합' 고리로 제3지대 정계개편 나설까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탈당 이후 김 전 대표가 ‘대통합’을 연결고리로 한 제3지대 정계개편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대통합’ 과 ‘분열’ 사이의 선택이라는 형식으로 대선 구도를 재편하려고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 전 대표가 문재인 전 대표 등 ‘적폐 청산’을 외치는 야권 주류를 분열 세력으로 고립시키고 개혁을 위한 대연정에 동의하는 세력이 뭉치는 제3지대 정계개편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친(親)문재인계가 주도하는 민주당 중심의 정권 교체로는 경제민주화를 실천할 수 있는 개혁이 담보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보고, 비패권세력이 연정을 통해 국정을 주도하는 구상을 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김 전 대표는 이미 전날 자신의 사회관계서비스망(SNS) 페이스북에 “정쟁과 분열이 나라를 망치도록 두어서는 안될 것”이라며 범(凡) 보수와의 연정에 비판적인 문 전 대표측을 비판한 바 있다. 김 전 대표는 이날 중구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새로운 한국 경제의 길' 초청 강연에서 “국회에서 각종 입법이 순탄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180석 이상의 의석이 확보가 되는 그런 정부의 형태가 만들어지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경우 김 전 대표의 구상 속에 있는 집권세력은 민주당 내 비(非)문,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이 주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 내 친박성향이 강하지 않은 중립 지대의 의원들도 가세할 수 있다.
김 전 대표는 탈당 결심을 하기 전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 여권 내에서 개헌과 제3지대 정계개편을 강조하는 정치인 뿐만 아니라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탈당 선언 하루 전인 6일에는 박영선, 변재일 의원 등을 만나 의견을 나눴다. 탈당을 선언한 7일에는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을 만나 대통합을 위한 개혁세력 창출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나타냈다. 국민의당은 주승용 원내대표가 김 전 대표에게 당 합류를 요청하기도 했다.
◆ '無당적' 선언하고 '대선출마' 가능성 열어둬
탈당 전후로 정치권 전방위로 접촉을 이어간 김 전 대표는 당분간 특정 정당에 속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표는 “어떤 당으로 들어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직접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두고봐야 알 일이고 미리 뭐라고 할 수 없다”면서 여지를 남겨뒀다.
그는 자신의 활동 방향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정치적으로 큰 혼란 겪고 있고 국민이 반으로 나뉜 상황이 우리나라 발전에 가장 큰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는데 그런 것을 정치적으로 소화해서 국민 통합을 이끌어 갈지가 큰 과제”라고 말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김 전 대표는 본인이 특정 정당에 들어가는 것 보다는 개헌과 대연정에 동의하는 국민의당, 바른정당, 민주당 비문재인계 등을 포괄하는 정계개편을 추진할 것”이라면서 “김 전 대표가 어떤 수단을 통해 이 같은 구상을 실천할 지 정치권의 이목이 쏠려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