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결과 발표문에 '대통령과 공모' 14회 나와

특검, 대통령 혐의 5건 새로 밝혀
"화이트리스트로 특정단체 지원… 정유라 영장 2023년까지 유효"

박영수 특별검사는 6일 오후 2시 서울 대치동 사무실에서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정된 수사 기간과 (박 대통령 등) 주요 수사 대상의 비협조로 특검 수사는 절반에 그쳤다"고 했다. 그는 "특검 수사의 핵심은 국가권력이 사익(私益)을 위해 남용된 '국정 농단'과 고질적인 부패 고리인 '정경 유착'이었다"며 "(분열된) 국론을 봉합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가 조각조각 밝혀져야 하는데 아쉽게도 다 이루지 못해 국민께 죄송하다"고 했다.

박영수 특별검사가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기자실에서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 사건의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특검은 박근혜 대통령이 삼성 측의 뇌물을 받는 등 5가지 범죄 혐의가 있다고 밝히면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이날 특별수사본부를 꾸렸으며 앞으로 특검팀으로부터 이첩받은 내용 등을 수사할 예정이다.

특검팀은 이날 100페이지 넘는 수사 결과 발표문을 준비했다. 수사 결과 발표가 '헌재의 박 대통령 탄핵 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일부 지적에 따라 박 특검과 특검보들이 며칠 동안 문구를 다듬었다고 한다. 박 특검은 이날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고 "발표문을 참조해 달라"고 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특검의 대면(對面) 조사는 불발됐지만 발표문에는 '대통령과 공모(共謀)하여'라는 문구가 14차례 들어갔다. 특검팀이 새로 찾아낸 박 대통령의 혐의는 5가지다. 특검팀은 삼성으로부터 433억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뇌물수수)를 포함한 4가지는 박 대통령이 최순실씨와 공모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최씨의 딸 정유라(21)씨가 출전한 승마대회와 관련해 승마협회 등을 감사한 노태강 전 문체부 국장에 대한 좌천 인사 지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최씨 측근인 이상화 KEB하나은행 지점장을 본부장으로 승진시키도록 은행 측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각각 직권남용) 등이다. 모두 최씨가 부탁하면 박 대통령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나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에게 지시했다는 것이 특검팀이 내린 결론이다. 지난해 8가지 혐의를 적용해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한 검찰 역시 대부분 '최씨 부탁→박 대통령 지시→안 전 수석 실행'의 흐름으로 파악했다. 박 대통령과 최씨가 공모해 광범위한 '국정 농단'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특검팀은 "미르·K스포츠재단도 대통령과 최씨의 이익을 위해 설립됐다"고 했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의 '뇌물 수수 혐의'를 두 갈래로 구분했다. 삼성이 최순실씨가 독일에 세운 스포츠 컨설팅 업체인 '코레스포츠'에 지원하거나 지원하기로 약속한 213억원에 대해선 박 대통령에게 단순 뇌물 혐의가 적용됐다. 특검팀은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원과 최씨가 설립·운영한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한 16억2800만원은 '제3자 뇌물 혐의'에 해당한다고 봤다. 박 대통령은 그 대가로 2015년 6월 안 전 수석 등에게 '삼성 합병이 성사될 수 있게 잘 챙겨보라'고 지시하고, 삼성의 경영권 승계 과정 전반에 특혜를 주도록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특검팀은 밝혔다.

특검팀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은 박 대통령이 김기춘 전 실장에게 지시했으며 이후 청와대 정무수석실, 문화체육관광부 순으로 지시가 하달됐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의 지시로 인해 결과적으로 9400여명의 명단이 작성됐고 355건의 '정부 지원 배제' 결정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특검팀은 '블랙리스트'뿐 아니라 청와대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요구해 활동비를 지원해온 단체의 명단인 '화이트리스트'도 존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청와대가 2014년부터 작년까지 매년 20~30개 단체에 대한 지원을 전경련에 요구해 총 68억원이 지원됐다며 검찰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영수 특검 "박근혜 300억 뇌물수수 혐의 확인"]

한편 특검팀은 구속영장이 기각된 우병우(50) 전 민정수석에 대해서는 2014년 광주지검의 '세월호 수사'를 방해한 혐의와 특검에서 밝혀낸 11가지 범죄 혐의 등을 담은 2만 페이지가량의 수사 기록을 검찰에 넘겼다. 특검팀은 "우 전 수석과 그 일가(一家), 가족 회사인 정강 등 관련 법인들에 대한 정밀한 자금 흐름 조사가 필요하다"며 "검찰에서 추가 수사 후 종합적으로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특검팀은 또 덴마크에 구금 중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21)씨에 대해서는 2023년 8월 말까지 유효한 체포영장을 다시 발부받았다. 정씨 수사도 향후 검찰이 담당하게 된다.

대통령측 "최순실과 경제공동체란 증거 없어"

박근혜 대통령 측은 6일 박 대통령이 최순실과 공모해 뇌물을 수수했다는 특검팀의 수사 결과에 대해 "사실 관계와 너무 동떨어진 황당한 소설"이라고 반박했다. 박 대통령 측은 특검이 종료 6일이 지나서 발표한 것에 대해 "탄핵 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여론전이자 정치적 행태"라고 했다.

박 대통령 측 유영하 변호사는 이날 입장 자료를 내고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해 "최순실이 삼성으로부터 지원받은 것에 대해 대통령이 뇌물을 수수한 것으로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최씨가 재산상 이해를 같이하는 '경제 공동체'라는 점이 입증돼야 하는데 이를 인정할 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며 "대통령과 최씨는 재산상 이해를 같이한 사실이 없고 완전히 분리된 경제주체"라고 했다. 유 변호사는 "최씨 소유 독일 법인 코레스포츠와 삼성전자가 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삼성전자가 최씨 딸 정유라를 위해 말을 사준 사실을 대통령은 알지 못했다"고 했다.

유 변호사는 박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독대와 관련해서도 "대통령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성사되도록 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고, 이 부회장에게 정유라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없다"며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한 지원을 해달라는 부탁을 한 사실도 없다"고 했다.

유 변호사는 '미르·K스포츠재단은 대통령과 최씨의 이익을 위해 설립된 것'이라는 수사 결과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재단 운영과 관련해 단 1원의 재산상 이익도 취득한 사실이 없는데도 특검은 무리하게 대통령을 재단의 공동 운영자로 단정하는 우를 범했다"고 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련해 어떤 지시를 내린 적도 없고, 보고를 받은 사실도 없다"고 했다.

박 대통령 측은 "특검이 목표를 정해놓고 진행한 무리한 짜맞추기 수사에 무차별적인 피의 사실을 공표하는 범법 행위도 자행했다"며 "향후 재판 과정에서 특검 수사의 허구성이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