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노모어, 에르메스에 승소…글로벌 패션 기업 상대로 '이례적'
최근 거세지는 럭셔리 공룡들의 '디자인 카피 시비'
"페라가모 스타일 구두입니다"… 표절 인정돼 1억원 배상
버버리는 LG패션 닥스와 체크 무늬 분쟁... 구찌(Gucci)는 전 세계 돌며 법정 싸움 벌이기도

플레이노모어의 샤이걸(왼쪽), 에르메스 제품(오른쪽)

패션기업들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최근 국내 패션기업과 글로벌 럭셔리 명품 브랜드들은 수년간 전 동종 기업들을 대상으로 ‘권리 분쟁’을 벌이며 세계 각지에서 총성 없는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6일 국내 패션 브랜드 플레이노모어(PLAYNOMORE)는 프랑스의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HERMES)가 제기한 모방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에르메스는 일명 ‘눈알 가방’으로 불리는 플레이노모어의 ‘샤이백’과 ‘샤이패밀리’ 가방이 자사의 ‘켈리 백’과 ‘버킨 백’을 모방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일부 형태의 유사성이 공정 거래질서와 자유 경쟁질서를 해친다고 보기 어렵고 플레이노모어만의 독창적인 ‘눈’ 디자인이 제품의 식별표지 또는 구매동기로 작용한다”며 플레이노모어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1심 판결 취소는 물론이고 소송 총비용 또한 에르메스에게 부담하게 했다.

이번 플레이노모어의 승소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와 국내 중소 패션 브랜드 간 디자인·상표권 분쟁에서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국내 패션 브랜드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플레이노모어 측 변호인인 한동수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부정경쟁방지법 일부 조항의 적용 범위 및 한계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밝혔다.

한 변호사의 말처럼 이번 판결은 한동안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모방 소송에 시달린 국내 패션 브랜드 업계에 유의미한 판결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플레이노모어의 사례는 이례적이다. 국내 패션 브랜드가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를 상대로 권리 분쟁에서 승리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판매 직원의 “페라가모 스타일 구두입니다”… 표절 인정돼 1억원 배상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페라가모는 2015년 10월 디자인 저작권을 문제 삼아 국내의 에스디인터내셔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에스디인터내셔널은 구두 제조 전문 업체로 국내에서 닥스(DAKS) 구두를 생산하는 업체다.

금속 버클에 리본 두겹을 끼운 형태의 특유의 장식은 페라가모가 1989년 상표권으로 등록한 바 있다. 닥스가 출시한 구두가 유사한 장식을 달고 나오자 페라가모는 “에스디인터내셔널의 닥스 구두는 페라가모의 상표권을 침해한 유사품”이라며 제조·판매 등의 금지와 1억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페라가모 구두와 논란이 된 닥스 구두(오른쪽)

이에 닥스 측은 “기존의 관행적 장식 형태에 따라 디자인적으로만 사용한 것”이라며 “가격대에 차이가 있어 혼동될 우려가 없다”고 반박했으나 재판부 페라가모의 손을 들어주며 닥스 제조사는 유사한 리본을 사용한 구두를 제조·판매를 금지하고 “페라가모에 1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닥스 구두 판매원도 고객에게 ‘페라가모 스타일’이라고 말한 점, 페라가모 제품이 닥스 제품에 비해 다소 비싼 것은 사실이나 해당 장식을 제거하고 보면 서로를 구별하기 어려운 점 등을 판결 근거로 들었다. 또 재판부는 “닥스 측의 2014년~2015년 제품 판매 수익 중 페라가모 상표권을 침해에서 발생한 수익에 따라 1억 배상액을 산정했다”고 밝혔다.

◆ ‘버버리 체크무늬’ 논쟁…베이지·검정·빨간 체크 = 버버리 고유의 체크무늬 ?

영국의 유명 명품 브랜드 버버리(BURBERRY)는 2013년과 2014년 국내 기업 LG패션(현 LF)과 쌍방울을 상대로 각각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버버리는 LG패션에는 LG 패션의 라이센스 브랜드 닥스(DAKS) 셔츠의 체크무늬를, 쌍방울에 대해서는 트라이 브랜드의 체크무늬를 문제 삼았다.

먼저 버버리는 2013년 2월 "닥스 셔츠가 버버리 고유의 체크무늬를 도용했다"며 LG 패션에 대해 "셔츠의 제조·판매를 중단하고 손해배상금 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상표권 침해금지 소(訴)을 제기했다.
이에 LG패션은 "체크무늬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 요소로 전 세계 패션 브랜드 제품에 활용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한 LG패션은 “적용이 모호한 디자인 요소를 갖고 상표권 침해 소를 불쑥 제기하는 것은 악의가 있는 영업방해 의도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며 강경한 태도로 맞소송을 제기했다.

양사간 ‘체크무늬 주인 논쟁’은 같은 해 10월 법원의 강제 조정 결론안이 나오면서 일단락됐다. 법원은 조정문에서 ‘문제가 된 닥스 셔츠의 제조·판매 금지에 대해서는 요청을 철회’한 반면 ‘버버리가 LG패션에 요구한 5000만 원 배상액 중 일부인 300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론냈다.

버버리 고유의 패턴

이후 조정안에 대해 LG패션 관계자는 "강제조정을 통해 버버리의 제조·판매 중단 요구를 철회하도록 했다”며 “버버리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판매금지 요구를 포기한 만큼 이 부분에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버버리 측은 “제조·판매 중단 요구를 철회한 것은 LG패션이 닥스 셔츠에 대한 시즌 판매가 종료됐고, 더 이상 해당 제품을 생산하지 않기로 한 확약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라며 “LG패션이 해당 제품에 대한 순이익이 2000만 원이라고 밝힌 것보다 높은 3000만 원을 지급하도록 강제 조정 결정을 내린 것 역시 벌금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강제 조정안 이후에도 양사는 장외에서 서로 신경전을 이어가며 뒷말을 남겼다. 결국 버버리-LG패션 간의 체크 분쟁은 명확한 결론 없이 봉합됐다.

이듬해 2014년 3월 버버리는 다시 같은 상표권 침해 소송을 쌍방울에 제기했다. 버버리는 “쌍방울의 트라이(TRY) 브랜드가 온라인을 통해 판매한 속옷 제품의 디자인이 ‘버버리 체크무늬’를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LG 패션의 버버리 논쟁을 한 차례 지켜본 쌍방울은 “해당 제품을 트라이란 이름으로 유통했기 때문에 상표권 침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반박하며‘ 체크무늬 자체는 상표권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로 맞섰다.

재판부는 이번에는 확실히 버버리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쌍방울의 제품에 사용된 체크무늬는 베이지색 바탕에 일정한 간격으로 검은색, 빨간색 선이 교차하는 모양이며, 이것은 단순 디자인을 넘어 버버리 상표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하며, “쌍방울은 버버리에 10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베이지·검정·빨간색의 체크무늬는 버버리 고유의 체크무늬라고 사실상 인정받은 것이다.

◆ 佛 명품 자존심 전쟁…붉은 밑창 구두의 주인

명품 브랜드 간 디자인·상표권 분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화두는 아니다.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로 꼽히는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louboutin)과 입생로랑(Yves Saint Laurent)도 레드솔 구두(Red Sole·붉은 밑창)을 놓고 특허소송전에 휩싸였다.

붉은 밑창 특허 소송전에 휩싸였던 크리스찬 루부탱 제품(왼쪽), 입생로랑 제품(오른쪽)

크리스찬루부탱은 1991년 파리에서 시작돼 아직 역사가 아직 채 30년이 안 된 신생 브랜드지만 모나코의 캐롤라인 공주의 입김을 타고 빠르게 성장했다. 비욘세, 제니퍼로페즈 등 셀러브리티들의 사랑을 받으며 큰 인기를 누렸다

크리스찬 루부탱은 2007년 3월 브랜드 시그니쳐인 레드솔의 붉은 색을 미국 특허청에 상표로 출원했다. 2008년 1월 미국 특허청에 색채상표를 등록 받아 영속적인 권리를 확보한 루부탱의 레드솔은 특허권 보호 대상이 되었다.

루부탱은 2011년 4월 입생로랑이 붉은 색의 여성구두를 내놓자 입생로랑이 상표법을 위반해 레드솔을 사용했다며 입생로랑에 1백만달러(약 11억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걸었다.

이에 대해 미국지방법원은 2011년 8월 “패션산업에서 색은 장식적이고 미학적인 필수 요소”라며 “단 하나의 색상이 트레이드마크가 될 수 없다”고 판결해 루부탱의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루부탱은 항소심을 신청했고 2012년 9월 미국 뉴욕 맨하탄 고등법원은 “루부탱 구두의 상징인 레드솔이 특허권 보호대상이다”고 판결했다. 다만 입생로랑의 슈즈의 경우와 같이 신발 윗부분과 밑창이 모두 빨간 경우에는 루부탱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예외를 달았다.

이로써 루부탱은 레드솔에 대한 특허권을 확인 받았고, 입생로랑은 ‘구두가 모두 붉은색일 경우는 특허권 침해가 아니다’는 판결을 받아 해당 제품의 판매를 계속하게 됐다.

◆ 캐쥬얼 브랜드 게스(Guess)와 명품 럭셔리 공룡 구찌(Gucci)…전 지구를 돌며 ‘G’ 주인 찾기

한편, 체크와 색상 등의 디자인 아이덴티티 뿐 아니라 고유한 심볼 로고도 분쟁의 소지가 됐다.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구찌(Gucci)와 미국 브랜드 게스(Guess)는 ‘G 로고’ 분쟁을 벌였다. 구찌와 게스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G’가 문제였다.

구찌는 2009년부터 미국 뉴욕, 이탈리아 밀라노, 중국 난징, 프랑스 파리에서 게스를 상대로 천문학적인 금액의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구찌는 미국 법원에서 “게스가 구찌 특유의 G 로고와 다이아몬드 패턴을 사용해 유사한 디자인의 지갑, 벨트, 구두를 만들어 소비자에게 구찌 제품처럼 보이게 해 판매했다”며 “1억2000만달러(약 1,350억 원)를 보상하라”고 주장했다 .

구찌와 ‘G로고 전쟁’을 벌인 게스의 제품

게스 측 변호인은 재판부에 "구찌가 주장하는 명예 훼손은 근거가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2012년 미국의 뉴욕 법원은 "게스는 구찌의 'G'로고나 주요 디자인을 사용하지 말 것"을 주문하며 당초 구찌의 청구 금액보다 훨씬 적은 470만 달러(약 51억원)을 배상을 판결했다.
중국 난징인민법원 역시 구찌의 손을 들어줬다. 중국 법원은 "피고측 게스의 상표권 침해 및 불공정경쟁 행위로 구찌브랜드의 명성에 피해를 주었다"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구찌는 2013년 5월 자사의 안방인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밀라노 소송에서 게스에 패소한다. 이탈리아 법원은 “구찌가 제기한 ‘상표권 침해소송’을 전면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프랑스도 게스의 손을 들어줬다. 2015년 프랑스 법원은 “게스가 구찌의 디자인과 무늬 등을 도용하지 않았다”며 구찌가 제기한 소송을 기각했다. 오히려 5500만유로(약 650억 원)의 피해 보상액을 요구한 구찌에게 소송 비용 등으로 3만 유로(약 3천7백만 원)를 게스에 지급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게스의 CEO인 Paul Marciano는 “3년간의 분쟁은 '거대하고 불필요한 소송의 결과”라며 “대화로 간단하게 풀 수 있는 일을 구찌는 하지 않았다”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