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밤, 한국에서 "김정은 이복형 김정남이 살해당했다"는 보도가 터져나왔다. 도쿄의 일본 기자들은 저녁밥을 먹다 말고 일어나 회사로 뛰어들어갔고, 이후 속보를 쏟아냈다. 뼈 아픈 게 그 뒤였다. 북한에 대한 기사인데도 제3자인 일본 언론 속보가 분량이나 품질 면에서 우리를 압도했다. 첫 일주일 동안 일본 언론은 이번 사건에 대한 기사를 3736건 쏟아냈다. 인터넷 속보를 빼고, 자체 취재 인력을 수백명~수천명 갖춘 신문사·통신사·TV의 정식 기사만 추린 수치다.

아시아 각국을 오가며 끌어모은 구체적인 취재 팩트도 우리보다 빼곡했다. 일당들이 사용한 차량 번호판 소유주가 리정철(47)이라는 기사도, 김정남을 덮친 인도네시아 여성(25)이 "일본 방송국과 몰래카메라 찍는 줄 알았다"고 했다는 기사도 일본이 먼저 썼다. 정점은 19일 밤 후지TV 보도였다. 김정남 동선을 따라 공항 CCTV 수십대의 화면을 이어붙인 5분 26초짜리 동영상을 보며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품푸르 국제공항에서 여성 2명의 공격을 받아 암살 당하는 장면이 담긴 CCTV 동영상이 20일 유튜브에 공개됐다. 현지매체 더스타는 김정남이 피습 당하는 순간을 포착한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남이 피습 후 공항보안요원들과 이동하는 모습.

한 나라의 정보력은 그 나라 국력과 실력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번 일본 언론 보도엔 현지 경찰과 정부기관에 깊숙이 연이 닿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정보가 수두룩했다.

그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일본은 우리보다 깊이 동남아를 연구하고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동남아에 투자했다. 일본의 시장이자 안보 파트너로서 동남아에 그만큼 공을 들여온 것이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 10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은 1만1328곳인데, 우리 기업은 4500곳이 채 안 된다. 정부도 적극적이었다. 일본이 2015~2020년 아시아 각국 인프라 확충을 지원하는 데 쓰겠다고 밝힌 돈만 1100억 달러에 이른다.

이런 식으로 수십년 일군 '인맥의 밭'에서 나온 소출이 이번 사건 보도였다. 두 여성이 김정남을 덮친 데 걸린 시간이 딱 2.3초라는 걸 한국 정부와 언론, 국민은 일본 후지TV를 보고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