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은 늘 같은 것으로 먹었다.' 편혜영의 단편 '동일한 점심'의 첫 문장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남자는 대학 복사실에서 일하는데, 매일 점심 시간마다 같은 구내식당에서 같은 메뉴를 시켜 먹는다. '그렇게 늘 똑같은 한 끼 밥을 먹는 것으로 어제의 낮과 오늘의 낮이 같음을 실감하고 오늘 밤과 내일 밤이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똑같지 않은 날을 똑같은 척 살아가는 일이 좀 덜 고될까?

한 사람의 점심 시간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쯤 깊이 알게 되는 것도 같다. 어디서,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점심을 먹느냐에 따라서 말이다. 나는 거의 혼자 점심을 먹는 사람이다. 약속을 점심 시간에 맞춰 잡기도 하지만 요즘처럼 일이 많을 때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혼자 집에서 먹거나 혼자 밖에서 먹거나 안 먹는다.

삽화= 이철원 기자

그러니 누군가 내 점심 시간을 들여다본다면 이렇게 쓸 수 있겠다. '집에서 자기 손으로 차려 먹을 때는 새롭거나 특별한 요리는 하지 않는다. 귀찮기 때문이다. 밖에서 혼자 먹을 때는 우동이나 덮밥 같은 일품요리를 주로 선택한다. 귀찮기 때문이다. 식욕이 없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종종 건너뛴다. 귀찮기 때문이다.' 나라는 인간에 관한 축약본으로 꽤 그럴 듯하다.

얼마 전 한 대형몰의 푸드코트에서 점심을 먹었다. 어쩌다 보니 직장인들의 점심 시간과 겹쳐서 실내가 혼잡했다. 간신히 바(bar)형 테이블 한구석에 자리 하나를 찾았다. 역시 직장 동료 사이로 이루어진 팀이 많았는데, 그들 대부분은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먹는 행위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혼자 온 사람들도 꽤 되었는데, 그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혼자가 아니었다. 그들의 점심 식사 파트너는 스마트폰이었다.

나도 밥을 욱여넣으며 스마트폰을 넘겨 보았다. 나의 인스타그램 친구 한 명은 매일 낮 열두시 삼십분쯤이 되면 자신의 점심 식사를 사진 찍어 올린다. 유명하거나 멋진 레스토랑 요리가 아니라 직장 근처 '밥집'의 소박한 음식들이다. 겨울비 내리는 월요일엔 칼국수, 유난히 추운 날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콩나물국밥 한 그릇, 주말을 앞두고 괜히 설레는 금요일엔 삶은 달걀 반쪽이 단정히 얹힌 비빔국수 사진 등이 올라오곤 한다.

그런데 그날은 한시가 가까워가도록 아직 사진이 업로드되지 않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나? 혹시 어디가 아픈가?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온라인 친구의 안부가 궁금하고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러고 보니 매일 똑같은 시간에 올라오는 그의 점심밥 사진들은 성실한 일상의 기록인 동시에 그가 세상에 전하는 안부 메시지인 셈이었다. 똑같은 날들을 똑같지 않게 살아가려 애쓰는 나름의 분투일 것이다.

일본의 한 여행사에서 영업과장으로 근무하는 시노다 나오키도 그런 사람이다. 이제 오십대 중반이 된 그는 27세이던 1990년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먹은 모든 끼니를 노트에 그림으로 그려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44권의 노트가 있다고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된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라는 책에는 그 음식 그림일기들과 함께 그것을 쓰는 작가의 원칙이 소개되어 있다. 음식은 사진 찍지 않고 기억만으로 재현할 것. 매일 밤 귀가 후 15~30분씩 그릴 것. 이틀 이상 출장이나 여행을 갈 땐 노트를 가지고 갈 것 등등.

그의 '먹은 기록'을 살펴보는 것은 그의 삶을 열람하는 것이다. 1991년 3월 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한 날 점심엔 튀김소바를 먹었다. 그는 다만 이렇게 쓴다. '튀김과 소바는 따로 담아 나온다. 튀김은 세 종류다.' 딸과 함께한 첫 어린이날엔 패밀리레스토랑에서 햄버거 스테이크와 치킨너깃을 시킨다. 오랫동안 온 적 없던 패밀리레스토랑도 막상 와보니 괜찮다고 생각한다.

음식은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조용한 매개체가 된다. 우동, 소바, 돈가스덮밥, 백엔 초밥, 역전 도시락…. 매일매일 성실하게 먹고, 일하고, 살아온 한 인간의 꾸밈 없는 역사를 들여다본다. 그 평범하고 수수한 음식들과 일상들이 새삼 경이롭다. 오늘 당신의 '점심+밥'은 부디 하루의 작은 쉼표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