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정부는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김정남을 독살한 북한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평양에 주재하는 자국 대사를 소환했다. 또 김정남 시신을 부검하지 말고 인도하라고 요구한 강철 주(駐)말레이시아 북한 대사를 외교부로 초치(招致)했다. 말레이시아 외교부는 어제 별도 성명에서 "우리의 평판을 훼손하려는 (북한의) 근거 없는 시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고 밝혀 북한에 대한 제재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강 대사는 북한 국적의 '김철'이라는 사람이 자연사했다고 주장하며 "한국과 결탁한 말레이시아가 정치화한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폈다.

말레이시아는 1973년 북한과 수교한 후 40년 넘게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북한에 상주 공관을 두고 있는 24국에 말레이시아가 포함돼 있다. 북의 핵·미사일 도발 이후 많은 나라가 대북 정책을 바꾸고 있지만, 말레이시아는 북한인이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도록 해왔다.

말레이시아가 북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배려한 결과가 대낮에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벌인 살인극이다. 스스로를 '빨치산 국가'라고 자랑하는 북은 외교 관계도 범죄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 전 세계 공관에서 밀수 등 범죄를 저질러 온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1983년 아웅산 테러로 우리 부총리 등 17명을 살해했을 때도 북 대사관이 작전 본부 역할을 했다. 당시 미얀마는 북과 단교(斷交)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외교 관계가 복원됐고, 외교를 이용한 북의 범죄는 달라진 것이 없다. 전쟁하는 사이에서도 외교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외교를 외교로 인식하는 상대 사이의 얘기다. 세계가 북을 바로 보지 않으면 북의 본질에 대한 오해와 이 오해를 이용하는 북의 범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북의 범죄적 본질을 외면하고 있는 곳 중 하나가 한국 야당이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19일 "만약 북한의 지령에 의한 정치적 암살이라면"이라는 단서를 붙여서 북한을 비판했다. 공교롭게도 그날 말레이시아가 북한인 용의자 얼굴과 이름까지 밝혔다. 문 전 대표는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도 '정부 발표가 맞는다면'이라는 전제를 달고 있다. 민주당 정권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KAL기 폭파와 아웅산 테러, 이한영 테러에 대한 북의 시인과 사과를 요구한 적이 없다.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데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지뢰 도발 등을 거론하지 않고 갈 가능성이 높다. 임기가 없는 김정은은 이번 암살도 시간이 흐르면 KAL기 폭파, 아웅산 테러, 천안함 폭침 등과 같이 지나가고 잊힐 것으로 보고 있을 것이다. 범죄와 도발을 멈출 이유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