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려서 동물을 살릴 수만 있다면 수만 장이라도 그려야죠."

주인에게 버려져 안락사당할 위기에 몰린 동물들을 '연필 드로잉'으로 살려내는 사람이 있다. 애완동물이 버려진 사연을 담은 그림으로 달력을 만드는 화가 오은정(여·34)씨다. 드로잉에 관한 책을 6권 내고, 개인전도 3번 연 화가지만 유기 동물 달력 제작이란 색다른 일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경기 파주시 작업실에서 화가 오은정씨가 2년 전 유기 동물 보호센터에서 입양한 길고양이 ‘흑자’를 안고 있다.

"2011년 말 유기견 보호센터 홈페이지에 우연히 접속했다가 유기견들의 안락사 예정일에 관한 글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보호센터에 온 지 10일이 지나도록 새 주인을 만나지 못한 애완견들의 안락사 날짜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오씨는 곧장 보호센터로 찾아갔다. 강아지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는데 3일 뒤 안락사가 예정됐다는 설명을 듣고는 그 개를 데려왔다. 털이 까매서 까뮈라는 이름도 지어 주었다. 시설에서도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유기 동물은 안락사 처리된다. 살 수 있는 기간은 시설의 재정 여유와 공간 사정에 따라 저마다 다르다.

전 주인에게 학대를 당했는지 까뮈는 마음을 열지 않았다. 이런 까뮈를 오씨는 그림으로 그렸다. 그러자 까뮈가 자기 모습이 담긴 그림을 가만히 쳐다보거나 앞발로 만졌다고 한다. 오씨가 이런 사연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더니, 수백 명이 까뮈를 돕고 싶다는 댓글을 남겼다. 까뮈는 몇 달 후 새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오씨가 연필로 그린 유기견 ‘별은하’. 며칠 굶은 모습으로 보호센터 앞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5년 한 해에 동물 8만2100마리가 버려졌고 이 중 1만6400마리(20%)가 안락사 처리됐다. 오씨는 "우리가 매일 보는 달력에 유기 동물 그림을 담으면, 이런 현실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2012년 여름부터 달력 제작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전국 유기 동물 보호센터를 찾아다니며 애완동물들이 버려진 사연을 모았다. 보신탕집으로 끌려가던 중 한 대학생 덕분에 목숨을 구한 강아지 해피는 2016년 달력 11월의 주인공이 됐다. 같은 달력 3월의 모델인 고양이 캔디는 태어나자마자 교통사고를 당해 왼쪽 발이 잘렸지만 한쪽 발로도 씩씩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으로 포즈를 잡았다.

달력을 온라인 후원 사이트에 올렸더니 2500여 명이 달력을 사겠다고 나섰다. 오씨는 제작비를 뺀 수익금 전부를 보호센터 10곳에 보냈다. 달력 모델인 유기 동물 24마리는 모두 새 가정에 입양됐다. 그 외에도 50여 마리가 새 가족을 찾았다. 달력 제작은 오씨가 화가 생활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그는 "작업실에 틀어박혀 순수 미술만 하던 내가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오씨의 목표는 매년 유기 동물 달력을 펴내는 것이다. 아직도 유기 동물 수만 마리가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책임감'을 갖길 바란다고 했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인데, 동물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그들을 책임지는 사회가 진정 성숙한 사회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