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이었던 지난 11일 오후. 서울 도심의 광화문광장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을 남북으로 잇는 태평로에 100여m 간격을 두고 경찰 버스를 연결한 두 줄의 기다란 차벽(車壁)이 쳐졌다. 남쪽 서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과 북쪽 광화문광장의 탄핵 촉구 '촛불 집회' 참가자들 간의 충돌을 막기 위해 경찰이 설치한 것이다.

11일 서울 도심 광화문광장에선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위쪽)가, 시청 서울광장에선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경찰은 서울 시의회 주변에 경찰 버스로 2개의 차벽(車壁·흰 선)을 쳤다. 서로 대립된 주장을 하는‘두 광장 집회’의 참가자들끼리 충돌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비무장지대로 갈린 국토 분단의 현장처럼 경찰 차벽 사이가 탄핵 찬반으로 두 동강 난 민심(民心) 분단을 상징하는 완충 지대가 됐다. 양측 집회 모두 올 들어 가장 많은 인원이 모였다. 그러나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줄다리기와 쥐불놀이를 하며 소원과 풍년을 빌었다는 대보름의 전통은 사라지고 탄핵 찬반을 외치는 구호만 난무했다.

["촛불, 민심 아니다"]

태극기집회 "210만명 역대 최대"
20~30대도 나와 "탄핵 무효"

1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12차 태극기 집회는 역대 최대 규모 인원이 참가했다. 주최 측인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는 "육·해·공군 사관학교 구국동지회 등 170개 단체 소속 회원을 비롯해 210만여명이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집회 시작 2시간 전인 정오부터 양손에 소형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참가자들이 모였다. 영하 6도에 달하는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참가자들은 '억지 탄핵 원천 무효' '탄핵을 탄핵하라' 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고 탄핵 반대 구호를 외쳤다.

1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응원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을지로입구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단에 오른 인사들은 "태극기집회 참가자가 촛불집회를 눌렀다. 촛불은 더 이상 민심이 아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광용 탄기국 대변인은 "'촛불 민심'이란 말을 하는데 사실 더불어민주당의 '촛불 당심'일 뿐"이라며 "촛불 집회는 정치 집회이자 정당 집회, 민주당 당원 집회"라고 말했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헌재가 탄핵을 기각하면 '혁명해야 한다'고 한 문재인씨를 탄핵해야 한다"며 "헌재 재판 결과를 혁명한다는데, 이는 무시무시한 민중혁명이다. 태극기 혁명으로 이 민중 혁명을 부숴야 한다"고 했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판은 이미 뒤집어졌다. 국정 농단을 한 것은 최서원(최순실씨가 개명한 이름)이 아니라 고영태"라고 주장했다.

이날 참가자 중에는 20~30대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단역 배우인 이동열(35)씨는 "야권 대선주자들이 보수를 싸잡아 부패 세력으로 몰아가는 모습을 보고 참을 수 없어 나왔다"며 "젊은이 중에 숨어 있는 보수 지지자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2월 중 탄핵하라"]

촛불집회 "75만명 올들어 최다"
특검 연장 등 외치며 거리 행진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5차 촛불집회에는 올 들어 가장 많은 75만명이 참가했다고 주최 측인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주장했다. 전국적으로는 80만명 이상이 참가했다고 주최 측은 밝혔다.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선 촛불 집회 참가자들이‘조기 탄핵’‘특검 연장’등의 구호를 외치며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 성사될까... 특검 수사 금주 분수령]

이날 시위대는 오후 6시 광화문광장에 집결해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인용을 촉구하는 집회를 가진 뒤 청와대와 헌재 방향으로 가두행진을 벌였다. 참가자들은 '2월 중 탄핵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 행진을 한 뒤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와 마무리 집회를 갖고 오후 9시쯤 해산했다. '특검 연장' '재벌도 공범이다' 같은 플래카드도 내걸렸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야당의 주요 대선주자들도 이날 촛불 집회에 나왔다. 문 전 대표는 광화문광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대통령) 탄핵안이 (헌재에서) 기각돼도 나는 승복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전 대표는 "주권자들의 마음이 곧 헌법이다. 헌재는 이 민심을 잘 받들어주실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본집회에 앞서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함께 '탄핵 버스킹'(거리공연) 사전 행사를 열고 "박근혜 대통령과 국정 농단의 주범들이 국정 농단이라는 책임을 지고 권력의 뒤편으로 물러나게 꼭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본집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 등 지도부를 비롯한 의원 70여명이 당의 상징색인 파란색 목도리를 두르고 참가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희정 충남지사는 광주광역시 금남로에서 촛불을 들고 박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