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홍대·성수동·망원동·잠실·연희동, 대구 중구, 경남 진해 같은 지역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한글 간판들. 요즘 10~20대는 이런 장소의 사진을 찍어 공유하면서 놀이 문화를 만들어낸다.

"'민지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래. 귀염 돋네!"

대학생 김별(22)씨는 예쁘고 독특한 한글 간판을 볼 때면 꼭 사진을 찍어서 친구들과 메신저로 공유한다. 그가 최근 올린 사진은 대학로에 있는 한 아이스크림 집. 명조체 글씨가 반듯하게 적힌 한글 간판에 반했다면서 '#귀욤간판' '#예쁜간판' 같은 해시태그까지 붙여 라인 채팅방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김씨는 "요즘엔 영어로 된 간판보다 한글 간판이 독특하고 좋다. 10~20대 여자아이들이 예쁘다는 이유로 한복 입고 모여서 사진 찍는 것과도 비슷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한글 간판이 새롭게 뜨고 있다. 10~20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소위 '인스타그램 성지'일수록 외국어 간판이 아닌 우리말 간판을 내건 곳이 갈수록 많아진다. 망원동과 성수동, 해방촌과 경리단길, 우사단 마을…. 요즘 젊은이들은 대로(大路)보단 골목에, 뻔한 프랜차이즈보단 조금 불편한 듯해도 낯설고 이채로운 공간에 열광한다. 이런 동네에 자리 잡은 젊은 예술가들일수록 한글 간판을 선호하는 게 요즘 추세다. 가령 서울 등촌동에서 예술가 7명이 1년 동안만 빈 건물에서 프로젝트 전시를 하기로 하고 내걸었던 간판은 우리말로 적힌 '일년만 미슬관'이었다. 미술관 표기를 쓰려면 법적 허가가 필요하다는 말에 점을 하나 빼고 '미슬관'으로 슬쩍 바꿨다. 이 언어유희와 한글 간판 때문에 이곳은 1020세대 사이에서 한동안 '성지'로 조용한 화제를 모았었다. 경남 진해에 있는 한 꽃집 간판엔 한글로 또박또박 '벚꽃 부케'라고 적혔다. 이 네 글자 간판 덕에 이곳 꽃집은 문 연지 몇 달도 안 됐는데 이미 인스타그램에서 제법 알려졌다. 서울 합정동 '안녕 낯선 사람'과 '와줘서 고마워' 카페는 다정한 우리말로 적힌 간판 덕에 몇 년째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곳이다.

서울 잠실 카페 '콩당콩당'도 'coffee' 같은 영어 단어를 내세우지 않아 요즘 오히려 인기를 끄는 곳. 대구 중구 한 애완동물 가게 이름은 '개 키우는 남자'다. 흰색 간판에 불독 한 마리와 날렵한 글씨가 내려앉은 간판으로 유명해졌다. 망원동 술집 '복덕방'은 막걸리 병과 잔, 복덕방이라는 한글을 아기자기하게 모아놓은 간판으로 이름났다. 올해 초 '시민이 뽑은 아름다운 간판'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이 간판들은 단순히 한글을 새기는 것을 넘어 작고 은은하고 여백의 미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월간 디자인 전은경 편집장은 "예전 간판들은 '나 여기 있다'라고 외치는 식이었지만, 이제 젊은 세대들은 남들이 모르는 것을 찾아가는 은밀한 즐거움을 누리길 원한다. 그래서 간판들도 그에 맞춰 목소리를 낮추게 됐고 속삭임을 담아낼 줄 알게 됐다"고 했다.

'Why?' 조선일보 土日 섹션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