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현 런던 특파원

유럽 극우 세력은 올해 전후 최고의 전성기를 맞을 전망이다. 이들은 작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여세를 몰아 유럽 곳곳에 극우 깃발을 꽂겠다고 벼르고 있다. 유럽 각국 극우 정당 지지율은 2~3년 전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고공비행을 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몰고 올 충격이 어느 정도일지 지금은 가늠하기 어렵다. 미풍이 될지, 핵폭풍이 될지는 올해 줄줄이 실시되는 주요국 선거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유럽 외교가에선 그중 프랑스를 가장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네덜란드에선 극우 정당인 자유당이 다음 달 총선에서 제1당에 오르겠지만 정권을 잡지는 못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의원 150명을 뽑는 선거에 28개 정당이 나섰다. 최소 5개 정당 이상이 연합해야 내각을 꾸릴 수 있다는 관측이다. 주요 정당들은 자유당이 1당이 되더라도 손잡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오는 9월 독일 총선에서도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돌풍이 예상된다. 이 당은 2013년 총선에선 4.7% 득표율에 그쳐 연방 의회 진출에 실패했지만(독일은 5% 이상 얻어야 의원 배정), 올해는 최대 15% 안팎까지 얻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히틀러와 나치라는 과거를 잊지 않는 독일 국민과 독일 정계에 두껍게 포진한 중도 진영이 극우 세력의 정국 참여를 용납할 가능성은 작다.

프랑스의 제1야당인 공화당의 대선 후보 프랑수아 피용(62) 전 총리가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피용 전 총리는 과거 자신의 아내와 두 자녀를 보좌관으로 거짓 채용해 부당하게 혈세를 챙겼다는 의혹에 휩싸여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프랑스는 사정이 다르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유럽 대부분 국가와 달리 프랑스는 대통령제다. 지도자 한 사람에 의해 국가 운명이 달라진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는 극우 정당 국민전선 마린 르펜 대표가 1차 투표에서 1등으로 결선에 진출할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는 1차 투표 때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2위가 결선에서 최종 승자를 결정한다. 한 외교 소식통은 "결선에선 좌우 중도 세력이 뭉쳐 르펜을 떨어뜨릴 것이란 전망이 많지만, 영·미처럼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장담 못 한다"고 했다. 르펜이 당선되면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체가 극우 포퓰리즘의 나락에 빠질 것이라는 공포감이 크다. EU가 붕괴 위기에 몰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도 우파인 공화당 대선 후보 프랑수아 피용이 유럽의 불안을 최근 '잠깐' 안정시켰었다. 그는 당내 경선에서 양강(兩强)이던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 쥐페 전 총리를 상대로 막판 역전승했다. 여론조사는 그가 대선 1차 투표에서 1등을 기록한 뒤, 결선에서 르펜을 압도적으로 이길 것으로 전망했다.

피용의 '파죽지세(破竹之勢)'는 두 달도 안 돼 처참하게 꺾였다. 그는 의원·장관 때 아내를 보좌관으로 '위장 채용'해 거액의 혈세를 횡령했다는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프랑스 국민은 그에게 후보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피용의 몰락으로 극우 세력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프랑스와 유럽의 앞날도 그만큼 어두워졌다.

권력과 탐욕에 눈멀어 세상 이치와 순리, 상식 따윈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서운 건 이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설 때이다. 지도자 한 명이 망가질 때 국민이 겪는 고통은 대통령제 국가에서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올해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우리가 눈을 부릅떠야 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