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정책 중심, 대기업서 中企·스타트업 전환 유일한 대안
대기업 투입 정부 주도 '창조 경제' 보다 시장 자율성 강조
“경제 성장에 마법의 탄환은 없다. 단기 부양책은 성장 전략이 아니다. 그러나 정도(正道)는 있다.”
한국개발원(KDI) 연구위원 등 경제학자 출신인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의 성장 담론은 ‘혁신 성장’이다. 유 의원은 단기 부양책은 성장 전략이 아니며, 수출 주도 성장·재벌 주도 성장·내수 주도 성장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혁신 성장의 핵심 키워드는 창업이다. 정부의 산업 정책 중심축을 대기업에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start-up·신생 벤처기업)으로 옮기는 것이 저성장 탈출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유 의원의 혁신 성장론은 박근혜 정부의 창조 경제 정책이나 다른 대선 주자들의 ‘창업 국가’ 공약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방법론에서는 미세한 차이는 있다. 유 의원의 혁신 성장론은 대기업의 창조경제혁신센터 투입 등 국가 주도로 이뤄진 박근혜 정부의 창조 경제나 다른 대선 주자들의 정부의 창업 지원책 확대 보다는 시장의 기능을 강조한다.
창업인들이 정책 자금 융자 보다는 시장에서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조달받을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며, 창업 이후에는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등 규제를 완화해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를 기대한다. 창업에서 실패한 사람들에게는 ‘안전망’을 구축해 재도전의 길을 터주기도 한다.
유 의원의 혁신 성장론에 대해 일부 전문가는 “지적할 것이 없다”는 후한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다만 주요 대기업들이 중견·중소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영역까지 파고들고 있는 현 산업 구조에서 몇 가지 제도를 도입한다고 창업이 활성화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또 안전망이 있더라도 수 많은 젊은이들을 창업 시장에 내모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냐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 창업 초기·유지·실패 3단계 지원, 시장 내 자생적 육성 기대
유 의원은 평소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성장 정책을 한가지만 꼽아달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창업’이라고 대답한다.
유 의원은 ‘창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 창업 초기 단계, 창업 성공 후 유지 단계, 창업 실패시 재도전 단계 등 크게 3단계를 개편하는 공약을 발표했다. 모두 국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것 보다는 자생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유 의원은 창업자가 창업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빚을 내는 융자 방식을 전문성 있는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받을 수 있는 ‘투자 중심’의 환경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이 창업에 자금을 댈 수 있게 유인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벤처 캐피털 설립 요건을 완화하고, 투자에 대한 위험 부담을 낮추는 방식이다. 유 의원은 이를 위해 영국의 제도를 벤치마킹한 공약을 발표했다. 투자 자금에 대해 세금 공제와 환급을 실시하는 영국의 SEIS(Seed Enterprise Investment Scheme) 제도다. 직‧간접으로 벤처 기업에 투자되는 자금에 대해서는 소득공제 혜택을 대폭 확대하고, 실패할 경우 세금을 환급해 준다.
영국은 지난 2014년 초기 단계 기업에 투자하면 실패할 경우 투자 금액의 최대 75%까지 세금 환급 등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SEIS 제도를 도입했는데, 도입 후 15개 기업밖에 없던 런던 북부 지역에 2~3년 사이 약 2000여개의 기업이 생겼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유 의원은 창업 이후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도록 각종 규제도 풀어준다. 중소기업청을 창업중소기업부로 승격하고, 네거티브(negative) 규제 방식을 도입해 창업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네거티브 규제 방식은 할 수 있는 것을 빼고는 모두 못하게 하는 ‘포지티브(positive) 규제 방식’의 반대로, 안되는 것 빼고는 모두 할 수 있게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다.
유 의원은 벤처 창업자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코넥스 시장에 제한적으로 차등의결권 허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차등의결권 제도는 적대적 M&A(인수합병)에 대한 기업의 경영권 방어수단 가운데 하나로, 일부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일부 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것이다. 관련 제도는 적은 지분으로 적대적 M&A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는 효과가 있지만, 적대적 M&A와 무관한 상황에서도 의사 결정이 왜곡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우리나라는 '1주 1의결권'의 상법 규정에 따라 관련 제도를 기본적으로는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를 코넥스 시장에는 도입해 보겠다는 것이다. 유 의원은 코스닥 시장 상장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벤처 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장하는 ‘코넥스 시장’에만 제한적으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주장했다.
창업 기업에 대해서는 법인세도 깎아준다. 유 의원은 ‘특허 박스’ 를 도입해 중소기업이 특허와 지식재산권으로 번 돈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감면해주기로 했다. 특허 박스 제도는 기업이 지식재산권으로 수익을 창출할 경우 해당 부분에 대해 비과세하거나 일반 법인세율보다 낮은 별도의 법인세율을 적용시켜 주는 제도로 네델란드, 프랑스 등 유럽에서 활용되고 있다. 벤처 기업이 유능한 인재를 유치하도록 스톡옵션 세제 혜택도 확대한다. 현재는 스톡옵션을 행사해 확보한 주식을 팔 때 근로소득세 대신 양도소득세(10~20%)를 내며, 이런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스톡옵션 한도는 3년간 5억원이다. 이를 3년간 6억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유 의원은 우리나라의 창업 성공률이 낮다는 것을 감안해 실패시 재기할 방안도 약속하고 있다. 신용불량자로 만드는 연대 보증을 정책자금에 있어서는 폐지하기로 했다. 중소기업 경영인이 범죄나 비리 등으로 사업을 실패한 것이 아니면 재창업시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유 의원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온 ‘창조경제 혁신센터’에 대해서는 대기업에 의존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창조경제 혁신센터는 이어가되, 민간 전문가를 영입해 대기업의 참여 비중을 줄여나갈 계획이다.
◆ 실패율 높은 창업, 저성장 탈출 해법 가능한가
전문가들은 유 의원의 공약에 대해 비교적 적절한 성장 정책이라고 평가한다. 금융연구원 한 관계자는 “좋은 이야기들이라 논평할 것들이 별로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현재 대기업 위주로 고착화 된 산업 구조에서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해도 창업이 활성화 되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신관호 고려대 교수는 “창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재벌과의 하청 관계에서 생기는 불공정 관계가 개선될 필요가 있다”며 “또한 재벌들이 인하우스 기업에 지원함으로써 외부에서 창업한 기업이 경쟁에서 불리해지는 문제도 방지할 필요가 있는데,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개선 방안이 미흡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유 의원은 이러한 지적에 대해 ‘창업하기 좋은 나라’의 전제가 ‘평평한 운동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기업의 공정한 시장 경제 침해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유 의원은 “재벌 대기업에게 최대한의 자유는 허용하되, 경제력의 남용과 독점력의 불공정한 횡포에 대해서는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 고시촌→실리콘밸리, 일자리 창출 해법도 창업?
이번 대선에서 성장 담론 만큼 중요한 공약이 ‘일자리 해법’이다. 지난 2012년 대선의 화두가 복지였다면, 이번 대선에선 심각한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로 고용절벽 상황이 발생하자 일자리 창출이 최대 화두가 되고 있다.
유 의원은 일자리 해법도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육성에서 찾고 있다. 창업이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일자리 창출의 해법도 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과 창업 비중이 커지면 자연스레 일자리도 다양하게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다. 유 의원은 “일자리는 시장에서 만들어야 하지만, 대기업에서 더이상 창출할 수 없다”며 “중소기업과 창업에 국가가 강한 지원을 한다면 결실이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따라서 유 의원은 고시촌으로 향하는 청년들의 발걸음을 실리콘밸리로 돌리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량진과 신림동을 실리콘밸리로 만들자는 선거 구호가 나온 배경이다.
유 의원은 “미국 대학생의 20%가 창업을 생각하고 10%가 실제로 창업한다고 한다”며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신용불량자가 안 되게 할 테니 창업하겠느냐‘고 물으면 20%가 창업을 하겠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대학생들이 도전과 실패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는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나라의 산업 정책 중심이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스타트업으로 옮겨가기에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 과도기에는 기존 기업들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다. 잘못하면 청년들을 창업으로 등 떠미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이에 대해 유 의원측은 일자리 창출에 대해 창업 활성화, 민간부문 고용증대, 사회적경제 일자리 증가 등 종합 대책으로 접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창업 활성화 뿐만 아니라 대기업에서는 고용을 늘리고, 중소기업에서는 임금을 올리는 것이 일자리 해법의 기본 방향이라는 설명이다.
유 의원은 대기업 일자리 확대 방안으로는 적어도 대기업, 공기업, 공공기관, 금융권 등 비교적 경제적 여력이 있는 기업은 비정규직 채용을 처음부터 규제하는 방안도 파격적으로 검토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현행 비정규직 차별 금지 규제들은 실제 숫자를 줄이는데 효과적이지 않다는 판단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직무를 분리해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칙을 적용해 차별 금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비정규직과 동일 업무를 하는 정규직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칼퇴근법’ 등 근로 시간을 단축하는 것도 신규 일자리에 도움될 것이라고 본다.
유 의원은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열악한 중소기업들이 부담하는 4대 보험료를 국가가 부담함으로써 그만큼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임금이 올라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도 검토 중이다.
유 의원은 사회 서비스 일자리도 늘리겠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처럼 공공 부문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국가 예산을 투입하되 비영리 사회적 경제 단체가 기업 운영)’를 확대해 일자리 창출을 시도해 보겠다는 의미다.
다만 유 의원의 일자리 창출 방안은 오히려 기업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일자리 처우 개선은 그만큼 기업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어서다. 유 의원은 일자리 창출에 대한 세제 혜택도 대대적 개편을 예고하고 있다. 대기업에 대한 세제 인센티브는 ‘실질적인 고용창출’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재설계하고, 중소기업에는 임금 인상에 대한 법인세를 인하 폭을 더 크게 만들겠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