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현 문화부 차장

본래 받아쓰기의 달인은 기자들이다. 노트북PC가 보급되면서 간담회에서도 수첩에 받아 적지 않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기자가 늘었다. 하지만 '취재원의 말을 옮겨 적는다'는 본질에는 큰 차이가 없다.

노트북과 취재 수첩은 기자들의 연령이나 세대를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인기 가수나 배우의 간담회가 열리면 기자 수백 명이 노트북을 치는 가운데, 한두 명만 수첩에 쓰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노트북은 따닥따닥 소리가 나지만, 타자 실력만 뒷받침되면 취재원의 말을 빠르고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취재 수첩은 가볍고 작아서 휴대하기 편하다. 개인적으로는 노트북보다 수첩을 선호하는 편이다.

받아쓰기는 모국어(母國語)든 외국어든 언어를 배울 때도 최고의 방법이다. 발음대로 들리는 구어(口語)와 별도 표기 체계를 지닌 문어(文語)를 일치시킬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시절의 혹독한 받아쓰기가 없었다면, 아직도 우리는 '밤머거씀니까'와 '밥먹었습니까' 'I LUV U'와 'I Love You'를 구별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받아쓰기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넌 대답만 해)'라는 신조어처럼, 화자(話者)가 유일한 권위를 갖는다는 점이다. 청자(聽者)는 화자의 발언 내용을 충실하게 옮겨 적는 일만 가능하다. 어원(語源)을 살펴봐도 그렇다. 영어로 받아쓰기는 '딕테이션(dictation)'이라고 한다. 여기서 '딕트(dict)'는 말한다는 뜻이다. 말하는 대로 받아적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나 가수들의 발음을 두고 '딕션(diction)'이 좋거나 나쁘다고 하고, 단어가 담긴 책을 사전(dictionary)라고 부른다. '딕트'가 들어간 단어 가운데 가장 무시무시한 것이 '독재자(dictator)'다. 독재자만 발언권을 지니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경청하거나 받아 적어야 한다는 의미다. 독재자는 무엇보다 '말하는 자'이고 '지시하는 자'라는 뜻이다.

'한국 명문대생은 교수님의 농담까지 모두 받아 적는다'는 뉴스를 접할 때 분노보다 서글픔이 앞서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미래의 엘리트가 기존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충실히 따르고 복종한다는 의미가 받아쓰기에 숨어 있다.

회의 때든 수업 시간이든 창의적 발상을 금기로 여기고 받아쓰기를 권하는 사회에서 유능한 관료는 탄생할 수 있어도,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같은 혁신가는 나오지 못한다. 한국이 '선진국 따라잡기'에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추월은 하지 못하는 이유가 '받아쓰기 문화' 때문은 아닐까. '받아쓰기 금지법'이라도 만들지 않는 한, 한국은 한 걸음 더 도약은 어려워 보인다. 교수님 농담까지 받아 적는 모범생은 줄어들고, 뒤집어 생각하며 허점을 찾아낼 줄 아는 '삐딱이'가 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