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현

"점심 뭐 먹지?"

온 가족이 모처럼 집에 있는 토요일이다. 주부 배우리씨는 색다른 요리를 하고 싶다. 그녀가 손에 쥔 건 스마트폰. 톡톡 손가락 몇 번 눌러 유튜브 요리 채널 '아내의 식탁'에 들어간다. 일본 전골 요리인 '스키야키'가 눈에 들어온다. 요리 영상이 잘 보이게 스마트폰을 싱크대에 고정하고,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 '휘리릭' 스키야키를 만들어냈다.

맛있는 냄새에 거실에서 운동하던 남편 나복근씨가 제일 먼저 반응한다. 홈트레이닝에 푹 빠진 남편. 복근을 자랑스레 어루만지며 식탁으로 다가온다. "이러다 요리 선생 되겠어!" 한 손에 태블릿 PC가 있다. 아파트에서도 층간 소음 걱정 없는 유산소 운동법으로 인기 끌고 있는 '조용한 유산소' 운동법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보면서 따라 하는 중이다. "조금만 더 하면 복근 생기겠는걸."

뒤이어 서재에서 나온 시아버지 나교수씨. 역사 얘기부터 꺼낸다. 유튜브에서 설민석의 한국사 강의를 본 후 각종 역사 다큐멘터리까지 섭렵 중이다. 시어머니 교양인씨, 며느리가 만든 스키야키를 한입 맛보고는 외친다. "하오츠(맛있어)!" 유튜브에서 '노래로 배우는 중국어' 강의를 틈나는 대로 본 효과가 있다.

"얘들아 밥 먹으렴." 불러도 대답 없는 두 아이. 방문을 열어보니 초등학교 3학년 아들 나천재군이 유튜브의 어린이 장난감 설명 채널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을 보며 '액체 괴물'(젤리형 장난감) 만드느라 여념 없다. "엄마, 나도 '허팝' 형 같은 '유튜버' 될래!" 독특한 과학 실험을 보여줘서 인기 많은 '허팝'의 유튜브 영상을 애청하면서 희망 직업이 바뀌었다. 아들 꿈은 과학자였다.

배씨는 딸 방에 갔다가 화들짝 놀랐다. 올해 고3 되는 딸 나미인양. 스모키 화장한다며 '포니'의 메이크업 영상을 컴퓨터 화면에 띄워놓고 눈두덩을 검게 칠한다.

최근 집마다 유능한 가정교사(?)가 생겼다. 휴일도 없이 언제 어디서든 나타난다. 어학부터 요리, 뷰티, 어린이 교육, 공예…. 못 가르치는 게 없다. 게다가 무료! '유튜브' 얘기다.

경기 불황에 배움에 목 마른 사람들은 조그만 사각형 스마트폰 안에 있는 자기만의 교실을 클릭한다. 유치원생, 초등학생들에겐 유튜브 스타 '허통령(허팝)' '캐통령(캐리)'이 '뽀통령(뽀로로 대통령)'보다 유명하다. 스마트폰 쓰는 노년 인구가 늘면서 중국어·스페인어 등 어학 강좌부터 역사·인문학 특강까지 보는 어르신도 많다. 유튜브를 백화점 문화센터처럼 이용한다.

'1인 미디어'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문가급 수준 있는 영상 콘텐츠도 많아졌다. 지난해 11월 기준 국내 유튜브 채널 가운데 100만 구독자를 넘은 채널이 약 50개, 10만 구독자 이상 채널이 600여 개에 달한다. 단발성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구독해 볼 만큼 콘텐츠 질이 높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렇다 보니 가전제품 조립법과 같은 간단한 생활 정보부터 인문·역사학 등 고품질 강연까지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유튜브가 선생님 노릇을 톡톡히 한다. 일명 '우리 집 유(You) 선생'이다.

경기도 평촌에 사는 백진주씨네 가족. 일곱살, 아홉살 두 자매의 영어선생님은 '유튜브'다.

[Story] 온 가족 가정교사 ‘유선생’
국경없는 채널… 해외 동영상 보면서 DIY 스피커 만들기도
검증 안된 정보 골라낼수 없어… 스마트폰 중독 등 부작용도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교구(敎具) 된 유튜브

"재뉴어리, 페브루어리, 마치!"

경기도 평촌 권지유(7)·지수(9) 자매가 스마트폰의 영상을 보며 영어 노래를 따라 부른다. 자매의 엄마 백진주(35)씨는 아이들 영어 교육을 집에서 유튜브로 한다. "유튜브에서 '파닉스'를 검색해 알파벳송부터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웬만한 영어 단어를 줄줄 외어요. 겨울방학 때는 유튜브에서 '어린이 요가' 영상을 보여주며 운동도 시켰죠. 학원비 굳었어요(웃음)."

유튜브가 어린이 교육 도구가 되면서 한글·영어 선생님을 대체하고, 피아노·발레·요가 등 예체능 강사 역할까지 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이정민(10)군은 요즘 유튜브에서 유명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감상하거나 따라서 쳐본다. "엄마, 저 피아노 치는 모습 좀 핸드폰으로 찍어주세요!" 얼마 전 유튜브에서 또래의 피아노 연주 영상을 본 뒤 자신도 피아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겠다며 의기양양이다.

유튜브 교육 키즈 1세대는 천재 기타리스트 정성하(21)씨로 대표된다. 2006년 9월, 정씨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연주 영상을 유튜브에 처음 올리며 '기타 신동'으로 떠올랐다. 당시 핑거스타일(기타만으로 멜로디·반주·리듬을 한 번에 연주해 곡을 완성하는 주법) 기타 연주는 흔치 않았다. 이 주법을 아버지에게 처음 배운 정씨는 유튜브를 통해 토미 이매뉴얼, 울리 뵈게르샤우센 등 세계적인 기타리스트의 연주를 따라 하며 실력을 키웠다.

2005년 국내에 유튜브가 처음 선보였을 때만 해도 뮤직 비디오나 드라마 다시 보기가 주 용도였다. 요즘은 다르다. '모모(More Mobile) 세대'라 불리는 아이들은 글보다 영상이 익숙하다. 단순히 배워서 실력을 뽐내는 '유튜브 신동'에서 한 단계 진화한 '키즈 크리에이터'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아이가 직접 주인공이 돼 영상 콘텐츠를 만든다. '라임튜브'의 길라임(7)양, '마이린TV'의 최린(12)군이 대표적이다.

유튜브가 여러 방면에서 활용되면서 교사들도 보조 자료로 활용한다. 경기도 안산의 중학교 체육교사 정영환(31)씨는 "배드민턴, 배구 등 체육을 가르칠 때 교실에서 유튜브 영상을 미리 보여준다"며 "체육관에서 직접 시범을 보일 때보다 학생들이 잘 집중하고 흥미 있어 한다"고 했다.

'마이린TV’ 최린(왼쪽)군은 바퀴 달린 운동화 ‘힐리스’ 타는 법 등 다양한 놀이법 소개로 또래친구들 사이에서 ‘꼬마 유선생’으로 통한다.
오순녀(51)씨는 유튜브로 제이미 올리버, 마사 스튜어트 등 해외 요리 채널을 즐겨보며 자신만의 퓨전 요리를 개발한다.

노년 유튜브 학생도 급증

유튜브는 비단 아이들만의 선생이 아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세대별 스마트폰 이용 특성과 영향력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스마트폰 보유율은 2012년 57.5%에서 2015년 78.8%로 증가했다. 스마트폰 보급 초기에는 20~30대가 주 보유층이었으나 2015년 조사에서 40~50대의 보유율이 80%를 넘는 등 고연령대로 확산됐다. 스마트폰을 쓰는 중장년층 '유튜브 학생'도 자연히 늘었다.

정근수(73)씨는 유튜브로 한국사를 새롭게 배우는 중이다. "설민석의 역사 강의를 보는데 아주 볼만해요. 요즘엔 뉴스도 유튜브로 많이 봅니다." 오순녀(51)씨는 제이미 올리버, 마사 스튜어트 등의 요리 채널을 즐겨 본다. "예전에 미국에서 유학 시절 봤던 것이 떠올라 종종 유튜브에서 보며 저만의 퓨전 요리를 만들어 봐요."

LTE 시대, 고용량 데이터 전송이 빨라지면서 최근 1년 사이 유튜브 사용은 급격히 느는 추세다. 시장조사업체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안드로이드 기준 국내 이용자의 유튜브 모바일 앱 평균 이용 시간은 665.5분이다. 6개월 전보다 28.5% 늘었다. 같은 기간 유사 동영상 채널 '다음TV팟'은 139.3분, '네이버 미디어플레이어'는 114.9분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컴퓨터로 유튜브를 보는 시간(60.3분)보다 길다.

유튜브 세상엔 국경이 없으니 해외 정보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최근 DIY 가구 만들기에 취미를 붙인 이재우(29)씨는 집에서 유튜브 채널을 보고 DIY 스피커를 만들었다. "영상은 전문 해석 없이도 이해가 돼 해외 콘텐츠를 보고 따라 만들었답니다."

더테이블 팀이 지난 1월 31일~2월 6일 10~70대 남녀 203명을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73.5%가 유튜브를 활용해 어학, 만들기 등 뭔가 배우거나 습득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유튜브 동영상을 활용해 배우는 것이 도움 된다고 답한 응답자는 94.8%나 됐다. 유튜브를 통해 주로 배우는 콘텐츠는 요가·홈트레이닝 등 운동(38.2%), 화장법 등 뷰티(30.1%), 인문학·역사 등 강연(28.3%), 각종 제품 리뷰 등 사용법(23.1%), 영어·중국어 등 어학(22%), 요리(20.2%), 뜨개질·DIY 가구 등 각종 만들기(12.1%), 학업(9.2%) 순으로 나타났다.

'가짜 정보' '악플' 등 부작용 교육해야

우리 삶의 전방위 분야에서 유튜브가 '척척박사'처럼 여겨지면서 부작용도 발생한다. 가장 큰 문제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골라낼 수 없다는 것. 30대 익명의 한 여성은 "경험으로 습득한 정보나 노하우를 전하는 크리에이터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는데 과연 전문가라 할 수 있는지 헷갈린다"고 했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은 지나친 유튜브 사용으로 인한 아이의 시력 저하나 스마트폰 중독을 우려하기도 했다. 전미영(가명·35)씨는 "TV로도 유튜브를 볼 수 있어 아이가 지나치게 유튜브에 빠질까 봐 오늘 아침에는 남편이 TV 리모컨을 갖고 출근해 버렸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유튜브에 익숙한 자녀와 달리 부모가 잘 모른다는 점도 문제다. '마이린 TV' 최린군의 아버지 최영민(46)씨는 "요즘 초등학생들은 부모가 모를 뿐 상당수 유튜브에 스마트폰으로 직접 찍은 영상을 올린다. 아이들 사이에선 보편적인 놀이 문화다. 그런데 아이의 얼굴이 노출되면 자칫 외모를 평가하는 악성 댓글로 상처받거나, 평생 지울 수 없는 디지털 기록이 남을 수 있다. 어차피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면 부모가 먼저 관심을 갖고 아이가 유튜브를 잘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했다.

최재용 한국소셜미디어진흥원 원장은 "유튜브는 외국 플랫폼이다 보니 공중파처럼 방송통신위원회의 규제를 받지 않아 음란물이나 검증되지 않는 루머가 올라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어린 자녀가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동영상에 노출될까 우려되면 유튜브 계정을 부모가 공유하면 된다. 어떤 동영상을 시청했는지를 알 수 있다. 유튜브 설정에서 '제한 모드'를 켜면 음란 혹은 지나치게 폭력적인 동영상은 아예 볼 수 없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주부 김미진(41)씨는 아이가 유튜브에 중독되지 않게 하기 위해 유튜브와 책을 병행한 교육법을 활용한다. 예컨대 아이에게 위인전을 읽게 하고 관련 인물의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보여주면서 학습 효과를 높이는 방식이다. 소셜미디어 전문가인 김철환 적정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외국어로 된 영상의 경우에는 유튜브의 자동 자막 생성 기능이나 자막 번역 기능을 적절히 활용해 이해를 높일 수도 있다"고 했다.

아이 교육 활용할 만한 유튜브 채널

스마트폰과 함께 성장한 아이들은 부모보다 더 유튜브 사용에 능숙하다. 무조건 막거나 아이가 보는 대로 무관심하게 두기보다는 아이의 관심사에 맞는 좋은 콘텐츠 채널을 찾아주면 교육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영어 등 외국어 교육 채널

아동 교육 채널 '비지 비버(https://goo.gl/WYGmqU)'는 흥미로운 멜로디와 화려한 캐릭터로 알파벳, 숫자, 색깔 등 주제별 영어 표현을 가르친다. '키즈월드(https://goo.gl/Tpp7kx)'는 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한국어 학습 영상도 볼 수 있어 다양한 언어별 기초 학습이 가능하다. '핑크퐁(https://goo.gl/BZnLZB)'은 유아·아동 교육을 위한 채널로 놀이를 통해 영어 발음 및 알파벳을 학습할 수 있다. '소피아 영어(https://goo.gl/Kj3mfR)'는 캘리포니아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 소피아양이 운영하는 영어 채널. 중학생 소피아가 생활영어를 나이에 맞게 쉬운 설명으로 소개한다. '찰리스크래프티 키친(https://goo.gl/4bGdJ1)'은 꼬마 자매 요리사가 요리하며 영어로 설명한다.

▲과학·역사 교육 채널

인기 과학 채널 '브이소스(https://goo.gl/8Rxr0r)'는 '밤하늘이 어두운 이유', '블랙홀에서 번지점프를 하면 어떻게 될까', '실제 포켓몬은 얼마나 셀까' 등 독특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과학 지식을 알려준다. 션TV(https://goo.gl/GVkmo2)는 시우·시원 형제가 어린이 눈으로 바라본 재미있는 과학 콘텐츠를 공유하는 채널이다. 놀이, 마술, 만들기, 초거대 실험, 액체 괴물 만들기 등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동영상을 제작한다. '지니키즈 역사(https://goo.gl/bQstNY)'는 갑신정변, 백년전쟁 등 한국사와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을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준다. 'EBSLearning(https://goo.gl/5kc4GF)'은 '초등 스토리 한국사', '초등수학 개념잡기' 등 교과 콘텐츠를 배울 수 있다. 수능 연계율도 높아 학부모들에게 인기다.

▲체육·프로그래밍 교육

'축구배울래?(https://goo.gl/j7yQHV)'는 '슈팅 세게 차는 법', '공 멀리 차는 법'과 같은 축구 기술을 알려준다. 프로그래밍 교육도 유튜브를 활용할 수 있다. 유튜브의 인기 프로그래밍 채널 '생활코딩(https://goo.gl/N0C7TH)'에서는 html부터 css, 자바스크립트 등 기초 개념부터 '웹 애플리케이션 만들기 수업'과 같은 실용적인 단계까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연령에 관계없이 프로그래밍을 처음 시작하는 이들이 독학으로 공부할 수 있다.

▲유튜브 에듀

조금 더 풍부한 교육 콘텐츠를 원한다면 '유튜브 에듀(www.youtube.com/edu)'를 방문해봐도 좋다. 영어로 제작된 수학, 사회, 과학, 미술, 음악, 체육 등 전 과목에 해당하는 자료들이 수준별·카테고리별로 정리돼 있다. 학교에서 배운 수업과 연관된 콘텐츠를 찾아 연장된 학습도 가능하다. 유튜브 에듀의 인기 채널로는 역사, 경제, 천문학, 생물학, 화학 등 다양한 분야를 애니메이션으로 재미있게 풀어내는 '크래시 코스(https://goo.gl/0VLgcW)', 과학 이론을 실생활에 적용시켜 실험으로 보여주는 '사이쇼(https://goo.gl/4RhuYm)'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