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예비군이지만 군면제입니다

지난해 11월, 경기도의 한 동원부대에서 훈련을 받던 예비군 1년차 임모(24) 병장이 단독군장 차림으로 5t 트럭에서 내리던 중 무릎이 꺾이며 넘어졌다. 의무대를 거쳐 국군수도병원으로 후송된 임씨는 전방십자인대파열 진단을 받았다. 수술은 2주 뒤부터 가능하다 했다.

임씨는 우선 깁스를 두르고 훈련부대로 복귀했다. 동원중대장은 임씨를 불러 수술을 받으려면 군 병원과 민간전문병원 중 하나를 택하라 했다. 민간전문병원에 가겠다고 하자, 자비부담서약서 없이는 보내줄 수 없다며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2주 뒤, 그는 경기도 안양시의 한 관절전문병원에서 자가인대 재건 수술을 받았다. 수술비 389만3090원이 청구됐다. 임씨는 예비군법을 근거로 군에 치료비를 청구했다. 임씨가 제시한 규정은 예비군법 제9조, 보상 및 치료 부분이다.

조항에 따르면 예비군 대원은 임무수행이나 훈련 중 부상을 입으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의료시설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부근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의료시설이 없고 응급치료가 필요한 부상인 경우에는 민간의료시설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국가 의료시설 또는 민간의료시설에서 치료한 경우에는 국가가 비용을 부담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의료시설에서 치료한 경우에는 그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한다.

그러나 군은 치료비 지급을 거부했다. 자비부담서약서에 서명했기 때문이라 했다. 임씨는 '써야만 보내주겠다'고 강요당해 작성한 서약서가 법에 우선할 수는 없다며 국민 신문고에 민원을 제의했다. 그 결과 공상(公傷·공무 중 상해) 판정까지는 얻어냈지만, 함께 제기한 치료비 청구심의는 아직도 답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1월, 임씨는 병무청에서 '불안정성 대관절'로 신체 등급이 5급으로 조정됐다. 사실상 장애판정으로, 전쟁 상황이 아닐 경우 군역 면제에 해당한다. 군 복무 당시 임씨 신체 등급은 2급이었다.

임씨가 부상 후 새로 받은 신체 등급.

◇국방부와 나의 이야기

군 취재에 앞서 법조계 전문가를 통해 자비진료서약서의 효력을 확인했다.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는 "절대 서약서가 법에 우선할 수 없다"며 "예비군법에 보상 관련 조항이 있다면 서약서는 법 집행에 영향을 미칠 수 없으며, 혹시나 임씨가 제시한 예비군법 조항과 달리 훈련 중 다친 예비군에게 민간병원비를 지원해 주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이 별도로 존재한다면, 그건 예비군을 배려하지 않는 법이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이제 군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처음 연락한 곳은 병무청이었다. 병무청 관계자는 "군 장병을 모아 부대로 보내드리는 것까지 만이 우리의 임무"라며 "훈련 도중 발생한 부상 처리 문제는 국방부에 연락하셔야 한다"고 답했다. 그래서 국방부에 전화했다. 다음은 국방부 관계자와의 통화 내용이다.

기자 : 공상판정을 받으면 민간병원에서 치료받았다 하더라도 보상을 받을 수 있지 않나요? 자비진료서약서가 예비군법에 우선하는 것인지요?

국방부 관계자 : 공상판정을 받더라도 훈련 부대 군의관이 '군 병원에서는 이 사람을 치료할 수 없다'고 승인을 해야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보상해줄 수 있습니다. 또 보상 책임자인 동원 훈련 부대장 허락 없이 임의로 민간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공상이라도 돈을 받기 어렵습니다.

기자 : 응급 상황에도 우선 군 병원에 가서 처치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하나요?

국방부 관계자 : 응급이냐 아니냐는 상황 판단은 보상 책임자인 동원 훈련 부대장이 내립니다.

기자 : 대개 동원 훈련 부대장은 전문 의료 지식이 없지 않나요?

국방부 관계자 : 군의관이 부대장의 판단을 돕습니다.

기자 : 보통 동원훈련은 중대나 대대 단위로 이루어지는데, 군의관은 대부분 최소 연대 이상 부대에서 근무하지 않나요?

국방부 관계자 : 시급을 다투는 비상사태에는 군의관이 판단하기 어렵겠죠. 하지만 동원 훈련 부대장은 보상 업무를 많이 해 본 분이니, 군의관 통보가 없어도 경험을 바탕으로 빠르게 판단을 내리곤 합니다. 물론 응급 상황일 때는 민간병원 가라고 할 수도 있죠. 그런데 훈련 중 다친 분들은 대부분 타박상이나 염좌 등 응급이 아니거든요. 또 예비군 분이 훈련 때 다쳤을 때는 괜찮다고 하는데, 나중에 퇴소하시고 나서 응급환자였다고 주장하는 때도 많아요.

기자 : 예비군 훈련 중 부상 입은 임씨는 1차로 군 병원으로 후송돼 전방 십자인대 파열 판정을 받았어요. 그런데 동원 훈련 부대장이 민간병원 가려면 자비진료서약서를 쓰라고 지시했다 하더군요.

국방부 관계자 : 일단 기자님이 전화 주셨으니 저희도 알아볼게요. 그런데 대부분 제가 부대에 확인차 연락을 해보면, 예비군 말씀과 다른 경우가 있어요. 예비군이 말씀하신 게 진실이 아닌 때가 가끔 있는 거죠.

기자 : 부상자분은 국민 신문고 통해서 공상판정 받았고, 신체 급수가 2급에서 5급으로 떨어졌는데요.

국방부 관계자 : 어… 그러면… 크게 다치셨던 모양이네요…

기자 : 예비군 분이 발목 정도 삔 거였으면 저도 전화하지 않았겠죠. 하지만 전방 십자인대가 날아가는 부상이었어요.

국방부 관계자 : 혹시 장애등급은 받으셨나요?

기자 : 이제 신청해야겠죠.

국방부 : 아… 사실 국방부는 정책적인 것만 담당하고, 사고 관련 자료 같은 세부 데이터는 각 군에서 관리하거든요. 치료비에 대한 지원 여부나 금액 등은 각 군에서 지급해요. 그렇기 때문에 국민 신문고가 들어와도 저희에겐 닿지 않고 각 군으로 가버려요. 그러니 저희도 그런 민원이 있었어도 알 수가 없는 거고요.

◇예전 군대와는 다르다는데

국방부가 보다 상황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도록, 기자가 임씨와의 통화를 주선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당신이라면 군 병원을 믿을 수 있겠느냐"는 임씨 질문에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한다. 또 "치료비를 받고 싶다"는 임씨 말에 "알아본 뒤 늦어도 내일(3일)까지 연락해주겠다"고 말했다 한다. 그리고 임씨는 아직까지도 국방부 회신을 받지 못했다.

약 한 달 전인 지난달 13일, 필자는 ' 신검 앞둔 스무살, '그 분' 앞에만 서면 왜 떨리는가?' 기사를 쓴 뒤 병무청 항의전화를 받았다. 병무청 관계자는 "20~30년 전 군대 모습을 기사에 쓰셨다"며 "예전과는 달리, 요즘 군대는 인권을 존중하고 개개인의 권익을 보장하는데 잘못 알고 계신다"고 했다. 기자는 2010년에 육군 병장 만기 전역했다. 20~30년 전 군대는 알지도 못한다. 한 달 전이나 지금이나, 기자가 취재하고 쓴 건 요즘 군대다.

P.S 13일 병무청에서 본지에 전화를 해 "바뀌었다는건 병역판정검사에 한정된 이야기"라며 "군 생활이 좋아졌는지는 병무청이 알 수가 없고 관여할 문제도 아니어서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