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가 동양 3국과 각각 상담기를 갖기로 했다는 소식에 한국에도 비상이 걸렸다. 대표팀 목진석 감독은 3일 "최적 조건을 제시받았는데 여기서마저 패하면 인간 팀으로선 정말 변명의 여지가 없어질 판"이라며 총력 대비할 각오를 밝혔다. 세계 최고수들이 연말 연초 알파고에 60연패를 당한 이후 대표팀은 그 기보(棋譜)를 책으로 묶어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 하지만 바둑계 전체는 인간 팀의 승산을 높게 보는 분위기가 아니다. 김지석 9단은 "1대1 대결에 비해 미리 놓아보고 두는 이점이 엄청 큰 것은 사실이지만 실력의 간격을 메워줄 정도는 아니다"란 견해를 밝혔다. 2013년과 2015년 광저우(廣州)에서 두 차례 3대3 상담기 방식의 세계단체바둑선수권대회가 열려 한국이 두 번 모두 중국을 꺾고 우승한 바 있는데, 김 9단은 2015년 주축 멤버였다.

김영환 9단도 "바둑에선 거의 예외 없이 속기(速棋) 강자가 긴 시간이 주어지는 대국서도 강한 법"이라며 "생각할 시간이 늘어났다고 해도 결과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김 9단은 또 "팀워크가 나쁠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어 상담기가 무조건 1대1 대국보다 유리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견해를 폈다.

목진석 감독은 "공식 초청이 도착하는 대로 대표팀을 짜겠지만 일단은 최상위 3명이 유력하다"고 했다. 이날 현재 한국 랭킹 1~3위는 박정환, 신진서, 이세돌이다. 목진석 감독은 "60국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판이 초반에 밀린 이후 역전이 불가능했다"며 특히 포석에 중점 대비할 전략을 밝혔다. 주최 측에 가장 먼저 참가 의사를 밝힌 중국은 커제(柯潔), 저우루이양(周睿羊), 퉈자시(�嘉熹)가 1~3위에 자리 잡고 있다. 커제가 1대1 대결로 빠질 경우 4위 미위팅이 출전할 수도 있다. 일본은 공식 랭킹이 없지만 이야마(井山裕太), 고노린(河野臨), 이치리키(一力遼)의 출전이 점쳐진다.

상담기 자체를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많다. 단국대 철학과 유헌식 교수는 "지난해 3월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이세돌의 본능적 '직관(直觀)'과, 확률로 최적점을 결정하는 인공지능 '집단 지성(集團知性)' 간의 대결이라고들 했다. 이번 상담기는 거꾸로다. 인간 쪽이 오히려 집단화한 셈이니 이겨도 개운치 않을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상담기에 앞서 현역 세계 2관왕이자 일인자인 중국 커제는 알파고와 1대1 대결을 갖는다. 지난해 3월 이세돌 대 알파고전에 이은 '시즌 2'다. 커제는 알파고가 한 달여 전 60연승을 거둘 때 3전 3패를 기록한 바 있어 이번에도 벅찬 승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지난해 이세돌이 알파고에 1대4로 완패하자 "나라면 이길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으나 막상 최근 들어선 "지금 컨디션이라면 알파고를 못 넘을 것 같다"며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다만 이번 대국에선 지난해 이세돌에게 주어졌던 1인당 2시간보다 시간을 더 줄 계획이어서 결과를 속단하긴 힘들다. 커제·알파고전은 3판 2선승제로 치러지며, 승자 상금은 지난해 이세돌전(100만달러)보다 클 전망이다. 모든 구체안은 20일 발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