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에 앉은 사내의 딱 벌어진 어깨가 보였다. 머리는 짧고 허벅지는 굵었다. "이제 왔나? 진짜 오랜만이다." 고등학교 선배인 그는 나를 보자 손을 흔들었다. 좁은 자리에 틈을 내 앉은 모습에 미안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정겹기도 했다. 파마머리를 한 노인은 "이제 일행이 오셨느냐"며 나를 반겼다. 선배는 "여기 좋은데?"라며 작은 눈에 웃음을 담아 말했다. 찾기 어려울 것이라 여기고 걱정했으나 그 웃음에 안심이 됐다. 10여 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빨갛고 파란 배경에 하얀 고딕체로 큼지막하게 쓴 간판 글씨만 찾아 헤맸더랬다. 길눈 어두운 선배 모르게 '도대체 왜 여기까지 오나' 하는 불평도 했다. 알고 보니 그 가게는 인근 직장인들이 선배 노릇을 할 때, 혹은 선배 욕을 할 때 알음알음 모여드는 곳이었다. 이름은 '남산차돌전문점'. 상호대로 남산 올라가는 초입 남대문 어귀 뒷골목에서 문 연 지 이제 44년이 넘어간다.
"이런 데 이런 가게가 있는지 몰랐네. 여기선 뭐 먹어야 되노?" 선배는 오래 기다려 시장했는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메뉴를 훑었다. "점심에 오시면 된장찌개나 김치찌개가 좋고, 저녁에는 차돌박이 드시면 되죠." 나는 은근히 우쭐거리며 메뉴 설명을 했다. 사람 좋은 선배는 "그렇나?" 하고 사투리로 답하며 "그럼 차돌박이 먹자"고 시원하게 말했다.
주문이 들어가자 은행원처럼 말쑥하게 머리를 뒤로 넘긴 눈썹 짙은 중년 남자가 큰 고깃덩이를 기계로 썰기 시작했다. 노파의 아들인 그는 서류에 사인하듯 신중하고 정확하게 썬 고기를 접시에 담아 내놓았다. 차돌박이(1인분 200g·2만1000원·사진)의 살코기 부분은 크레파스 붉은색만큼이나 밝게 선명했고 하얀 지방은 도화지처럼 잡티 없이 깔끔했다. 그 밑으로는 간장 양념이 잔잔히 깔려 있었다. 나는 불판 위로 고기를 올리며 선배의 안부를 물었다. 경찰서 강력반 형사였던 그는 얼마 전 전투경찰 기동대 소대장으로 발령이 났다고 했다. "나야 뭐 괜찮지. 애들이 어리니까 나도 젊어지는 것 같고. 오히려 배우는 것도 많고 그렇네."
그는 말을 하며 익어가는 고기를 건져 먹었다. 도축한 지 얼마 안 된 신선한 고기와 산뜻한 양념은 입맛을 물리게 하는 법이 없었다. 한 점 한 점 먹을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선배는 굵은 팔뚝으로 국수를 건지듯 고기를 집어 먹었다. 가볍게 양념한 파채와 상큼한 무채를 간간이 곁들였다. 선배의 얼굴 위로 웃음이 더욱 커졌다. "큰 시위가 있으면 좀 고되긴 한데… 일이니까 괜찮다." 선배는 "힘들지 않으냐"는 물음에 반찬을 집어먹듯 가볍게 말했다.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이었다.
각자 1인분 넘는 고기를 먹은 우리는 얼큰하고 간간한 된장찌개를 시켜 버너 위에 올렸다. 그쯤 선배는 홍조가 깃든 얼굴로 휴대폰을 내밀었다. 휴대폰 액정 위로 선배를 똑같이 닮은 아이가 있었다. 나는 그 앳되고 선한 표정의 아이를 보며 감탄했다.
그날 우리는 여느 때처럼 "조만간 다시 보자"며 늦은 밤 헤어졌다. 영하 밑으로 한참 기온이 떨어지는 요즘 나는 문득 다시 선배를 떠올린다. 그는 지금도 길 위에서 어린 전경들과 함께 몸을 떨고 있을 것이다. 다시 선배에게 연락을 넣을 심산이다. 그의 고된 하루를 고기 몇 점으로 보상할 수 있길 바라면서.
▲2월 4일자 B5면 '정동현의 허름해서 오히려'에 소개한 서울 회현동 '남산차돌전문점'은 지난 1월 20일 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필자가 방문한 시점은 작년 12월이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혼란과 불편을 드린 점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