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서울의대 캠퍼스. 차에서 내린 부부는 각각 초록색 넥타이와 초록색 스카프를 하고 있었다. “정당 컬러로 맞추셨군요!” 하고 인사를 건네니 안철수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꼭 그런 건 아니고, 미국의 색채 전문 기업인 팬톤에서 매년 올해의 색을 선정하는데 2017년은 초록색이래요. 행운의 색이라기에.” 김미경 교수 역시 웃으며 말했다. 딸이 두고 간 스카프인데, 목에 두르면 딸 생각이 나서 기분이 좋아진단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와 부인 김미경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부부가 나란히 서울의대 캠퍼스를 찾았다. 탄핵 정국으로 대통령선거가 일찍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졌고, 대선주자를 비롯한 정치권 인사들의 행보가 바쁜 시국에 힘들게 마련한 시간이다. 매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지만, 부부가 나란히 언론 매체와 인터뷰를 하는 것은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한 이후론 처음이다.
서울의대 캠퍼스는 30여 년 전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인연이 있는 장소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김 교수에게는 익숙한 곳이지만, 안 대표는 거의 십여 년 만에 온 것 같다면서 오랜만에 감회에 젖었다. 매서운 겨울 아침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 사람은 추억이 깃든 도서관과 산책로 등을 찾아 짧은 인사를 나눴다. 간단한 사진 촬영 후 인터뷰를 위해 김미경 교수의 집무실에 앉았다. 정갈하고 소박한 공간은 김미경 교수를 꼭 닮았다.
마주 앉은 안 대표의 왼쪽 손목에서 비핏이 눈에 띄었다. 마라톤 기록을 남기는 데 유용해서 요즘 늘 차고 다닌단다.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능숙하게 앱 하나를 실행시켰다. 마라톤 기록이 담겨 있는 앱이다. 하루 단위의 기록인데 데이터가 꽤 많다. 마라톤은 안 대표의 오래된 취미생활이다. “이 앱은 지도로도 볼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지도를 가리키며) 여기 중랑천 끝에 저희 집이 있는데, 코스가 몇 개 있어요. 의정부까지 갔다 올 때도 있고요. 출장을 가도 마라톤은 하는 편이에요. 아, 여긴 독일 출장 갔을 때인데 일정 사이에 시간이 생겨서 5㎞ 정도 뛰었어요.”
부부는 마라톤이라는 같은 취미를 갖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집 근처 5㎞ 정도를 달린다. 김미경 교수는 4㎞ 정도. 둘이 동시에 출발하면 안 대표가 앞서 1㎞를 더 달리고 돌아와 다시 둘이서 집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두 분 모두 마라톤으로 다져진 몸을 가지셨군요. 건강해 보이십니다.
저는 평생 감기에 걸린 적이 없어요. 저희 집안이 원래 흰머리가 별로 없어요. 어머니, 아버지 연세가 여든이신데 아직도 검은색이 많으시고요. 그런데 저는 벌써 하얘졌어요.(웃음) 염색이요? 아니요, 안 합니다. 괜찮습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머리가 하얗게 변했잖아요. 흰머리는 열심히 산 사람의 훈장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웃음)
정치 안 했으면 머리가 까만색이었을 거예요.(웃음) 열심히 해야죠.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자리인데.
마라톤은 지구력을 대표하는 스포츠인데요.
제가 옛날부터 그랬어요. 100m 달리기를 하면 힘들어서 중간도 못 뛰는데, 1000m 장거리 달리기를 하면 항상 1등을 했어요. 제가 특기가 이 악물고 참는 거예요.(웃음) 의사, IT 전문가, 벤처 경영자, 교수를 거쳐서 정치까지 지금 다섯 번째 직업인데요. 모든 분야를 처음부터 잘한 건 아니었어요. 처음에 교수 되고, 강의 끝나고 ‘교수가 이렇게 강의를 못해도 되나’ 할 정도로 바닥부터 시작했어요. 기업 할 때는 첫 4년 내내 은행에 돈 꾸러 다녔어요. 언제 망할지도 모르고요. 그냥 특기가 이 악물고 참는 것이기 때문에.(웃음)
지금 정치를 하는 데도 이 법칙이 적용되고 있나요?
어떤 면에서는요.(웃음) 제가 실수도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하나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같은 실수는 다시는 안 한다는 거예요. 그걸로 항상 딛고 올라서고 그랬던 것 같아요. 정치도 마찬가지겠죠. 이 악물고 참으면서요.(웃음)
대통령선거가 실시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소위 대선주자로 손꼽히는 인사들의 행보는 바쁘다. 하루가 다르게 대선 출마 선언이 나오고 있다. 대선 후보로 손꼽히는 안 대표의 하루도 빠르게 돌아간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몇 달째 나라가 어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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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 살리기 운동을 한다는 생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이해타산보다는 무엇이 나라를 위해서 최선인가, 그 판단 기준만 가지고 있어요. 지금은 나라 살리는 정권 교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가 위대한 건 책임이거든요. 못하면 책임을 물어야 해요.
유력 대선주자로서 아무래도 지지율에 신경이 쓰이시죠? 높은 숫자가 아닙니다만.(웃음)
지난 총선에 성공했을 때 26.74%라는 정당 지지율을 받았습니다. 민주당보다 높은 숫자였죠. 그러다 보니 정권에 위협이 되어서 기획수사가 들어갔어요. 돈 받은 사람이 없는데, 원색적으로 리베이트라는 용어로 기소했죠.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나 선관위에 증거를 제출하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보시면, 일곱 명이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서 기소됐는데 전원이 전 혐의에 대해서 무죄가 됐어요. 이런 경우가 거의 없거든요, 사실. 정권 차원에서 안철수 죽이기를 시도했던 건데, 결국 성공했죠.(웃음)
성공은 당대표를 그만두신 걸 말씀하시는 거죠?
아무도 돈을 받지 않은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때는 어떤 변명도 안 통해요. 당을 보호하기 위해 책임지고 그만둔 후 6개월 동안 인고의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지난 1월 11일 1심 공판이긴 하지만 전원 혐의 무죄가 나왔어요. 저는 이 과정을 통해서 증명이 됐다고 봅니다. 깨끗하다는 것 증명했고,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것 증명했습니다. 다시 평가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인터뷰 직전 말씀드렸듯이 저는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한 번 했던 실수 다시는 안 합니다.
선거는 결과가 중요하니까요.
정치는 말이 아니라 결과물로 보여줘야 합니다. 제가 직접 치렀던 선거가 두 번의 선거, 전국 단위 선거가 세 번 있었습니다. 총선, 지방선거,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다섯 번 중에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단 한 석만 뺏기고 나머지는 전부 이겼어요. 정치적인 성과물, 돌파 능력을 증명한 셈입니다. 현역 정치인은 저밖에 없습니다.
탄핵 정권이 되면서 대선주자들의 행보도 빨라졌습니다. 국민들은 어떤 리더와 리더십을 원하고 있을까요.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리더십인 것 같습니다. 저는 모든 것이 리더십의 문제 때문에 시작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필요한 건 새로운 리더십이겠죠.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면 좋겠다는 판단 기준은 4가지라고 생각해요. 정직하고 깨끗할 것, 반복되면 안 되잖아요. 다음으로 유능할 것, 무능의 결과 때문에 우리 모두가 힘들잖아요. 정치에서 유능은 위기를 어떻게 돌파하고 성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예요. 또한 책임지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 정치의 만악(萬惡)이 책임지지 않는 데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요. 정보화 시대를 넘어 4차 산업혁명 시대로 갔는데 우리는 아직도 7080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어요.
김 교수께서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안 대표를 두고 깨끗함과 정직함의 대명사인 생수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썼었죠.
제가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에요. 물이라는 게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거든요. 깨끗하고 투명한 것이잖아요. 제가 다섯 번째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떤 일을 하든 항상 그런 태도로 했습니다. 나름대로 모든 영역에서 성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같아요.
사실 90년대에 백신을 무료로 배포하고 동그라미재단을 만드신 건 교과서에도 소개가 될 만큼 개인이 하기 어려운 일이었죠. 그게 안 대표를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정치인들이 국민이 아닌 사익만을 추구하는 민낯을 보여 상실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많은 요즘 더 그런 정신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90년대 중반에 기업을 할 때 그랬어요. 백신을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배포하면서 기업도 생존할 수 있단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당시에 아무도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정직하고 깨끗해도 성공할 수 있다’를 증명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증명해냈고요. 정치도 마찬가지예요. 정직하고 깨끗하게 정치가 가능하다를 보여주는 것이 새 정치 아닐까요? 기본이잖아요. 이번 국정논단 게이트를 보면서 우리 모두가 알았잖아요. 뿌리까지 썩은 대한민국의 민낯을 보며 지역별, 이념별, 세대별로 싸울 일이 아니구나 싶었어요.
둘이서 그런 이야기를 해요. 설희가 첫 번째 아이고, 두 번째가 안랩, 세 번째가 동그라미재단, 네 번째가 국민의당이라고요. 좋은 순서가 아니고 연대순으로요. 오래 같이 살다 보니까 남편은 다른 사람들이 안 해본 어려운 일을 시도해서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정직해서는 돈을 못 번다는 말을 투명경영을 통해서 처음으로 보여줬어요.
백신 무료배포는 개인이 하기에는 큰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미국 회사의 수천억 제안도 거절하셨잖아요.
남편이 하고 나면 곧 당연한 걸로 받아들여요. 백신회사는 미국에서 수천억에 사려고 했는데 안 팔았어요. 남편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아요. 그걸 팔았으면 백신에 대한 주권이 없어지게 되고, 당시 같이 일했던 안랩 사람들의 직업 안정성도 사라져요. 꿋꿋하게 버텼어요. 자신이나 돈, 명예보다 더 중요한 걸 선택했던 것 같아요. 그건 제가 아내로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김미경 교수가 많이 한 말은 남편 안 대표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김 교수 본인은 많이 변했다. 안 대표가 정치에 발을 담근 지 5년, 남편의 정치 입문을 반대하던 ‘비정치적인 아내’의 대명사격이던 김미경 교수는 조금씩 태도를 바꾸게 됐다. 남편의 진정성을 전해주기 위해서라면, 본인이 역할을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김 교수님은 그간 인터뷰 자리에서 뵙기 어려운 분이셨습니다. 이제 ‘비정치적인 아내’라는 수식은 놓으셨나요?
그동안 저 나름대로는 교수라는 이름을 갖고 살았어요. 정치인의 동반자가 됐지만 교수로서 해야 할 일도 꼭꼭 해야 했고요. 그게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름대로 직업에 대한 존중의 마음인 동시에 공공성을 위해하지 말자는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할 정도로 정치가 중요한 때가 됐어요. 정치를 떠나서 교수일 수는 없어요. 밸런스를 살짝 바꿨어요. 교수와 정치인의 동반자, 두 가지 롤이 진정한 화합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것을 이제 깨닫게 됐어요. 저도 (남편처럼) 좀 늦습니다.(웃음)
광화문 촛불집회에도 부지런히 참석하셨다고 들었어요.
매주는 아니고, 탄핵 통과되기 전에 세 번쯤 나갔어요. 남편과 같이 참여했던 날도 있었어요. 따로 앉아 있었지만요. 중·고등학생들이 교복 입고 나온 모습에 가장 마음이 아팠어요. 우리 어른들이 어떻게 했기에 아이들이 저렇게 다 나와서 고생하고 있나. 그때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던 기억이 나요. 가능하시면 학생들을 위로 해주시라고요.
정치 내조는 어떻게 해주세요?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안 해요. 어중간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도움도 안 될뿐더러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가 자주 해드리는 말은 있어요. 직접 많이 만나보시라는 거요. 직접 만나면 인터넷, SNS, 종편 방송과 전혀 다른 세상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정치인 남편, 이런 점은 좀 더 자랑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처음 만남을 시작했을 때, 제가 본과 3학년이었어요. 큰 시험이 있을 때였어요. 4학년이던 남편이 일종의 작업 전략으로 시험공부를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길로 도서관에 같이 다녔는데, 남편이 그 약속을 평생 지켰어요. 제가 공부하고 싶어 하거나 단기연수에 가고 싶어 하거나 할 때, 항상 지지해주고 전적으로 응원해줬어요. 법대 갈 때도 그렇고 단기연수 갈 때도, 항상 나름대로 제 세계를 펼쳐나가게끔 잘 해줬어요. 외조를 엄청 받았다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공부 다 할 수 있게 해주고요.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이에요.
반대로 나만 아는 아쉬운 점이라면?
뭘 하든지 나중에는 유머러스해지시는데, 정치는 아직 유머를 즐길 정도는 안 된 것 같아요. 아재개그를 가끔씩 즐기시지만, 옆에서 보면 하루하루가 작은 전투처럼 치열한 것 같아요. 언젠간 그런 유머의 경지가 되시겠죠?
두 사람은 서울대 의과대학 캠퍼스 커플이다. 1년 선후배 사이, 가톨릭학생회에서 매년 의사가 없는 마을인 ‘무의촌’에 방문해서 의료봉사활동을 하다가 인연이 됐다. 가난하고 소외받은 지역에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사랑에 빠졌고, 도서관을 함께 다니면서 연애시절을 거쳐 부부가 됐다.
오랜만에 캠퍼스에 왔는데, 연애시절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공부만 하셨겠지만.
공부하다가 놀면 훨씬 더 재미있어요.(웃음) 주변 사람들이 그때 이야기 하는 걸 들어보면 저희가 아무 눈치도 안 보고 잘 다녔다고 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불편했다고요.(웃음) 둘이 있으면 모든 게 다 좋았으니까요. 제가 작은 쪽지 하나까지 보관하는 성격이라, 최근에 그걸 꺼내보니 아 그랬구나 싶더라고요. 제가 불어 공부했던 기억도 나고.
두 분은 어떤 커플이었나요?
같이 학교를 다닌 후배가 있는데, 얼마 전에 딸과 만나는 자리가 있었어요. 딸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엄마와 아빠는 소울메이트였다”는 표현을 하더라고요. 저는 그게 딱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우리말로 표현하면 좋겠는데.
맞습니다. 컨디션도 비슷해요.
애정 표현도 잘해주시나요?
저는 남편이 의학자로서 성공을 거둘 수 있으리라 철석같이 믿었어요. 비교적 소수만 하는 기초의학을 하는 것도 아내로서 서포트하는 편이었는데, 백신을 하겠다고 해서 실망했어요. 그래서 제가 “그러려고 의과대학 힘들게 들어가서 고생하고 박사학위 따고 고생했느냐”고 하니까, 남편이 그건 저랑 설희를 위해서 의과대학에 들어온 거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런 다정한 멘트를 하는 면이 있으셨군요?
끝내주죠? 요즘은 설희 결혼 이야기를 하다가 “아버지가 정치를 하니까 누가 혼사를 맺겠느냐, 딸 결혼이 어렵게 됐다”고 했더니 “진정한 사랑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라고 말하고 넘어가세요.(웃음) 그런 이야기 하시면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다?” 하면서 웃어요. 딸이랑 썰렁한 농담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따님은 미국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죠?
마지막이라고 믿고 싶은 5년 차에 들어갔어요. 수학 전공이고요. 보통 5년이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각자 바빠서 자주 못 만나지만 거의 매일 아침마다 페이스타임을 해요. 서로 문자도 끊임없이 주고받고요. 셋이 함께요.
결혼 적령기의 딸을 둔 모든 부모님의 소원은 비슷합니다. 좋은 사윗감을 만나게 해달라는.
종종 결혼 이야기를 해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딸이 어렸을 때는 제가 “설희야, 결혼 안 하면 안 될까?”라는 말을 한 적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딸은 ‘우리 집은 가족 수를 늘려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더라고요.(웃음)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결혼은 중요한 것 같아요. 두 사람이 만나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인생이 달라져 가거든요.
저도 동의합니다. 결혼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가족과 떨어져서 살았어요. 부모님은 여수 고향에 계시고 저는 서울 친척집에서 공부를 했어요. 방학하자마자 기차표 사서 내려가고 개학하기 직전에 올라오고 했는데, 그때마다 헤어지기 싫어서 울었어요. 결혼하기 전부터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흩어져서 살지 말자고요. 정서적인 안정을 위해서는 부모가 가능하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둘 다 바쁘고 공부하고 그런 여건이었어도 그걸 최우선으로 삼았던 것 같아요.
부모 자식도 인간관계라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요. 아이의 자율성을 믿는 편이거든요. 너무나 명확한 것에 대해서는 설득하지만, 부모도 확신이 없는 경우에는 경험하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거기서 스스로 배우는 게 있잖아요. 딸이 어릴 때 자기가 어떤 대학이나 직업을 선택했으면 좋을지 물어보더라고요. 저는 끝까지 말을 안 했어요.(웃음) 하고 싶고 마음이 닿는 쪽을 선택하면 어떤 것이든 좋다고 해서, 지금 자기 길을 가고 있어요.
어떤 태도나 행동을 하는 것은 말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부모가 그걸 믿고 내면화해서 행동할 때 아이들도 그걸 받아들이는 거에요. 부모가 중요한 모델 같아요. 그다음에는 사랑이고요.
소소한 일상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집에서는 어떤 분이신지?
갈수록 다정다감해지시는 것 같아요. 작년 6월에 제가 학회에 다녀왔는데, 냉장고에 옥수수를 딱 사놓으셨더라고요. 제가 옥수수와 총각김치를 좋아하거든요. 오기 전날 사다 놓으신 것 같아요. 아마 미안해서 그러신 것 같은데, 고맙고 좋았죠. 평소에 다정다감하신 편이에요.
마지막은 새해 덕담으로 마무리할까요?
한국 정치가 지금 거의 바닥을 친 것 같아요. 뿌리까지 썩은 민낯을 모든 사람들이 보게 됐어요. 돈 있고 힘 있으면 대학 그냥 들어가고 학점 받고, 이게 저는 수십 년 전에 있었지 2016년, 2017년 대한민국에 있으리라 상상을 못 했는데, 한심한 노릇이지만 오히려 지금이 바꿀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전 사회의 총체적인 개혁을 할 수 있는 계기로 삼으면, 우리가 그동안 해야 하는데 못했던 사회 변화들을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좋은 계기로 삼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