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달 12일 귀국한 지 20일만에 불출마를 선언하고 자진 사퇴했다. 귀국 전엔 지지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고, 귀국 직후까지만 해도 이번 대선의 최대 다크호스로 인식됐던 주자다. 현재도 각종 다자 구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이어 2위로, ‘포기하기엔 아까운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나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자칭 ‘정치 신인’인 그로선 시간이나 조직을 갖추고 본선에 나설 물리적 조건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야권에 유리한 탄핵 정국에서 보수 주자라는 ‘약점’을 깨고 나갈 방법이 없다는 점, 기성 정치권과 화학적 결합을 하기 힘든 상황에서 쏟아지는 검증과 비판을 막아낼 참모진 등 조직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 무엇보다 갖은 노력과 승부수에도 추락하는 지지율 속에서 더 이상 버텨낼 의지를 잃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반 전 총장이 조기에 중도 포기할 수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 각종 검증 공세가 쏟아지자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반 전 총장은 1일 기자회견에서 “순수한 애국심이 인격살해와 가짜 뉴스로 폄훼됐다”며 “나와 가족, 유엔의 명예에 상처를 남겼다”고 했다. 후발 주자로서 새롭게 검증대에 오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의 귀국 후 퇴주잔 동영상이나 턱받이 논란, 기차표 발권기 논란 등 진위 여부를 떠나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둘러싸고 각종 구설이 이어졌다. 처음엔 장난 같았지만 점점 ‘한국 서민 생활과 동떨어졌다’는 이미지를 덧씌웠다. 또 동생과 조카의 뇌물수수 혐의 기소나 본인의 뇌물수수 의혹, 재산공개 축소 의혹 등 본선에서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비리 의혹이 터져나왔다. 여기에 유엔 사무총장 시절 실적과 평가에 대한 논란, 대선 출마 자격 여부 논란 등 전형적인 정치 공세가 이어졌다. 본인이 내세우려던 외교력이나 국제무대에서의 경험이 존중 받지 못하고, 엉뚱한 트집만 잡히고 있다는 섭섭함을 여러 번 토로했다. ‘명예로운 삶’에 익숙했던 전문 외교관 출신에겐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느껴졌을 것이란 얘기다. 실제 한일 위안부 합의를 높이 평가했던 그의 발언을 집요하게 캐묻는 취재진에게 분노를 숨기지 못하고 “나쁜 놈들”이라고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둘째, 핵심 지지층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반 전 총장은 촛불 민심을 존중한다면서도 직무 정지 상태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잘 대처하시라”고 했다. 계속 ‘개혁적 보수’라던가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정권 교체가 아니라 정치 자체를 교체해야 한다”며 이념적 틀에 갇히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무엇보다 어느 정당에도 들어가지 않고 이른바 ‘제3지대’에서 ‘빅텐트’를 마련한다는 구상으로 여야 인사들을 두루 접촉했지만 그 누구도 반 전 총장의 정체성을 믿지 못했고, 아무도 선뜻 돕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정치권에선 이런 그의 애매한 화법과 처신을 ‘반반(半半)’이라며 비꼬기 시작했다. 결국 어느 쪽에도 ‘확실히 우리 입장을 대변해줄 것’이란 인상을 주지 못했다. 유력 주자를 보유한 야당은 재빨리 그를 ‘정권 연장용 보수 후보’로 낙인 찍으며 프레임을 선점했다. 여당의 충청권 의원들이 따라나서려다 그의 지지율이 답보하자 탈당을 보류하기도 했다. 대선에선 필수적인 지역 기반조차 잡지 못했다. 핵심 지지 기반이 없으니 지지세를 확산시킬 여지도 없었다는 것이다.

셋째, 충성스러운 조직을 갖추지 못했다.

귀국 전부터 반 전 총장을 도우려는 인사들이 넘쳐나 캠프 사무실만 서너개 운영됐다. 핵심은 외교관 그룹과 이명박 정부 출신이나 중도층 정치인 등이었다. 한 명 한 명은 ‘체급’이 상당한 이들이었지만, 그룹별 또는 개별 인사들 사이에 주도권 경쟁과 갈등이 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군’인 반 전 총장이 시간을 두고 주도면밀하게 내부를 정리하지 못한 결과였다. 정책을 총괄하려던 곽승준 전 청와대 수석이 중도에 나가기도 했다. 반면 현장에서 발로 뛰며 언론 보도나 야당의 공세 등에 즉각 대응할 젊은 인사들은 턱없이 부족했고, 지지율이 하락하자 괜찮은 새로운 인재의 영입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에 반 전 총장이 얼결에 실토했듯 “돈이 없으니 대선 준비가 힘들다”며 정당 입당을 염두에 둔 듯한 속내도 내비쳤지만, 특정 정당 입당시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고 판단한 기존의 참모진이 이를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넷째, 지지율 하락세에 일찍 손을 들었다.

지지율 여론조사만 보면 귀국 전만 해도 문재인 전 대표와 해볼 만한 승부였다. 그러나 귀국 직후 인천공항에서 대선 출정식에 버금가는 귀국 연설과 전국 민심 투어에도 불구하고 20%대 초반을 간신히 유지했다. 일단 ‘컨벤션 효과’가 크지 않았다. 이후 각종 인신공격성 의혹이나 본인의 크고 작은 말과 행동의 실수, 정치권의 잇따른 비아냥과 공격 속에서 갈피를 못 잡으면서 지지율은 급락하기 시작했다. 대선 전 민심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구정 설 연휴 직후 실시된 일부 여론조사에선 문 전 대표와 1대1 대결시 더블스코어 이상으로 패한다는 결과까지 나왔다. 일부 조사에선 다자 구도에서 보수 후보군 중 유승민 의원에게도 밀린다는 조사도 나왔다. 반 전 총장은 70대 중반으로선 체력적으로 무리일 수 있는 전국 민심 투어에 이어, ‘반(反) 문재인 개헌 연대’까지 숨돌릴 틈 없이 승부수를 띄웠지만, 후각이 예민한 정치권에선 누구도 지지 기반이나 향방이 불투명한 그의 손을 덥썩 잡지 않았다. 반 전 총장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1일만 해도 오전부터 사퇴 선언 직전까지 바른정당과 새누리당 등 범여권을 돌며 개헌 연대를 타진했지만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지지율을 끌어올릴 획기적인 돌파구가 없다, 나만의 세력을 만들기 힘들다고 느꼈을 수 있다.

여론조사는 선거에서 참고사항일 뿐, 투표일 전날 자정까지 뛰는 것이 정치의 상식이다. 근성 있는 정치인은 끝까지 ‘숨은 표’을 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은 ‘지금으로선 2위 지지율을 깨기 힘들다’는 생각만으로, 대선 근처에 가기도 전에 포기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