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휴일 아닌 설이 이상했다. 구정(舊正)이라 부르는 것도 영…. 모처럼 친척 집 오가며 명절(名節) 음식 실컷 맛보기가 마음 같지 않았다. 웬만해선 뵙기 어려운 세종대왕이 그래서 더 반가웠다. 신정(新正)처럼 사흘 쉬면 그 만원짜리 세뱃돈 얼마쯤 늘어나려나. 어린 마음은 얄팍했다. 겨울방학이 끝났는데 설이 오면 심통마저 났다. 학교 가야 했으니까.

고등학생이 돼서야 알았던가. 이 신정·구정이 일제(日帝)의 간악(奸惡)한 노림이었음을. '식민지 조선의 얼이 담긴 전통을 내버려둘 수 없다. 설은 그냥 구정이라 불러라. 대신 우리처럼 양력 1월 1일을 신정 명절로 쇠라.'

되찾은 나라에서도 우리는 설을 오롯이 되찾지 못했다. 이중과세(二重過歲) 막는다며 정부가 여전히 양력 1월 1일을 명절로 강요했기 때문이다. 1985년에 겨우 '민속의 날'로 공휴일이 되긴 했지만, 제 이름을 공식으로 되찾은 때는 1989년. 악랄한 식민(植民) 지배기보다 긴 세월을 견뎌낸 것이다.

그 소중한 '설'이 또 이상해졌다. 국립국어원 온라인 사전이 지난해 8월 '설날'이라는 첫째 뜻풀이 다음에 새로운 뜻풀이를 달았는데…. '음력설과 양력설을 통틀어 이르는 말.' 예나 지금이나 설은 명절인 정월(正月·음력 1월) 초하루를 말한다. 음력설이라는 표현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전통이 무슨 만고불변(萬古不變)은 아니다. 문제는 뜻풀이를 바꿀 만큼 개념이 바뀌었느냐는 점이다. 하도 궁금해서, 어느 학원 강사·학생 70명 남짓한테 물어봤다. 설 하면 양력 1월 1일이 떠오르느냐. 집에서 설로 쇤다는 한 명만 그렇다고 답했다. 이런 몇몇 집 말고 누가 양력 1월 1일을 설로 여기는지. 멀리 갈 것 없다. 근현대 100년 고초 속에서 쩡쩡히 살아온 걸 보면 알지 않는가. 양력설이라는 말은 그렇다 쳐도, 설은 그냥 설이다.

해가 바뀔 때면 “닭의 해(정유년)가 밝았습니다” 하는 것도 짚어볼 문제다. 갑자(甲子) 을축(乙丑), 육십갑자는 음력 기준이기 때문이다. 국가표준이 1896년에 이미 양력으로 바뀌었는데 세시풍속(歲時風俗)은 음력을 따르는 데서 오는 혼란이다. 새해는 왔는데 정유년(丁酉年)은 오지 않고…. 양력 현실과 음력 전통, 헷갈리는 공존(共存)의 끝이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