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정치권 인사들과 만나는 일정을 앞당기기로 했다. 설 연휴 이전에 손학규·김종인·김한길 등 주로 야권(野圈) 인사를 우선 접촉한다는 계획인데, 이른바 '빅 텐트' 구축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 해석됐다. 반 전 총장은 당초 설까지는 정치인과 만남을 자제하고 전국 각지를 돌며 민심을 청취한다는 계획이었지만 귀국 후 지난 1주일간 지지율이 정체 조짐을 보이자 전략을 공세적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김종인·손학규·김무성 등 통화… 설 전 만날 듯

반 전 총장은 20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손학규·정의화 등 정치권 인사들과 언제 만나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조만간 일정을 잡아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설 전에 만나느냐'고 재차 묻자 "가능한 대로 빨리 만나겠다"고 했다. 반 전 총장 측 관계자는 "반 전 총장은 귀국 후 김종인·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김한길 전 의원,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 등과 직접 통화를 했다"며 "통화한 다섯 분과는 회동 일정을 조율 중이며 일부 인사와는 설 직전에 만날 수도 있다"고 했다. 손 전 대표는 이날 "반 전 총장 측에서 설 전에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만나볼 것"이라고 했다. 김종인·김한길 전 대표 측도 "만날 수는 있다"는 입장이다. 김무성 의원 측도 "곧 만나지 않겠느냐"고 했다. 안철수 의원은 "특별한 현안을 논의하자고 하면 (회동을) 고려하겠다"고 했다.

반기문, 黃권한대행에게 훈장 받아 - 반기문(왼쪽) 전 유엔 사무총장이 20일 정부서울청사를 찾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악수를 하고 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지난 10년간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직한 공로를 인정받아 황 권한대행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반 전 총장이 야권에 먼저 공을 들이는 것은 친문·친박을 제외한 세력들이 제3지대에서 만나 이른바 '빅 텐트'를 치고 반(反)문재인 단일 후보 선출을 위해 연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측근은 "오는 25일 관훈클럽 토론에서 제3지대 연대 구상과 함께 대선 출마 선언에 버금가는 정책과 비전을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반 전 총장의 핵심 측근은 최근 야권 관계자를 만나 반 전 총장의 비서실장으로 민주당 현역 의원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야권 관계자는 "탈당까지 해야 할 텐데 그럴 사람이 있겠느냐"며 난색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정책 분야에서 반 전 총장을 도왔던 곽승준 고려대 교수는 이날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내 역할이 끝나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밝혔다. 곽 교수가 캠프에서 하차한 것을 놓고 캠프 인사들 간 갈등설도 흘러나왔다.

반 "미움과 증오 고쳐져야" 대통합 강조

반 전 총장은 이날 오전 3부 요인 귀국 인사 차원에서 국회를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났다. 반 전 총장은 입당 등 정치적 거취를 묻는 정 의장에게 "아직 (결정을) 못 했다"고 했다. 국민의당 소속 박주선 국회부의장이 "국민의당이 총장님과 정체성이 맞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도 반 전 총장은 대답 없이 웃었다. 반 전 총장은 국회의장단 환담에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여러 분열상, 증오가 있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반 전 총장은 이어 조계사를 찾아 자승 총무원장을 면담한 자리에서는 "성(性)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금지돼야 한다는 것은 유엔의 기본 원칙인데 (이와 관련해) 국내에서 저에 대한 오해와 비판이 있어 깜짝 놀랐다"고 했다. 반 전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 재직 시절 성 소수자 차별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을 갖고 일부 종교 단체 등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소재로 삼는 것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반 전 총장은 이어 정부서울청사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만나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며 국가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두 사람은 14분가량 비공개로 환담하기도 했다. 또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귀국 인사를 했다.

한편, 반 전 총장 측은 이날 취재기자들에게 "질문은 일절 받지 않겠다"고 공지해 논란이 일었다. 반 전 총장 측은 "특정 성향의 매체에서 의도적으로 흠집 내기용 질문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