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다큐멘터리 ‘다방의 푸른 꿈’을 연출한 김대현(사진 위) 감독과 김 시스터즈의 김민자씨.

"태어나 보니 엄마는 이난영이야, 태어나 보니 아빠는 김해송이야."

26일 개봉하는 음악 다큐멘터리 '다방의 푸른 꿈'(감독 김대현)은 여성 듀오 미미시스터즈의 노랫말로 시작한다. 이난영(1916~1965)은 '목포의 눈물'을 부른 전설의 여가수. 김해송(1911~납북)은 일제 시대 '히트곡 제조기'로 불렸던 대중가요 작곡가다. 이들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두 딸 김애자(1987년 작고)와 숙자(78·미국 거주), 조카인 민자(76)의 3인조로 구성된 '김 시스터즈'는 한국 최초의 걸 그룹으로 꼽힌다. 김해송이 작곡하고 이난영이 불렀던 곡명(曲名)이기도 한 '다방의 푸른 꿈'은 김 시스터즈의 가족사를 다루고 있다.

6·25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서울 집터에서 생계를 고민하던 이난영이 당시 10대 소녀들이었던 이들과 함께 미군 위문 공연을 한 것이 김 시스터즈의 출발이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헝가리 재즈 음악가인 남편과 함께 19일 방한한 김민자씨는 "처음엔 영어도 제대로 몰라서 팝송 가사를 일일이 한글로 적어서 외워 불렀다"면서 "출연료로 돈 대신 위스키를 받으면 그걸 시장에 내다 팔아서 쌀을 샀다"고 했다. 이들의 소문이 퍼져나가자, 1959년 미국 프로모터가 찾아와 3개월간 미국 순회 공연을 제안했다.

기타·베이스·드럼은 물론이고 가야금과 트럼펫·트롬본·색소폰·백파이프까지 20여 개 악기를 능란하게 연주했던 김 시스터즈는 '동양에서 온 마녀들'로 불리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김씨는 "공연 무대에서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 그만큼 악기를 배우는 속도도 빨랐다"면서 "재즈 음악가인 남편과도 비브라폰(vibraphone)을 배우다가 만났다"고 말했다. 당초 3개월 예정이었던 이들의 미국 활동은 1973년까지 14년간 계속됐다. 최초의 한류(韓流)인 셈이었다.

에드 설리번(왼쪽에서 둘째) 쇼에 출연한 이난영(가운데)과 김 시스터즈.

'한국번안가요사'(2012년)와 '시간의 종말(2016년)' 같은 음악 다큐를 연출한 김대현 감독은 김해송 탄생 100주년이었던 지난 2011년 김 시스터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한국·일본·미국에 흩어져 있는 영상과 음원, 문서 자료를 수집했고, 한국·일본·헝가리 3개국에서 촬영했다. 김 감독은 "제작에만 2년이 걸렸고 예산은 9000만원이 들었다"면서 "이 정도면 독립 다큐멘터리로는 블록버스터급"이라고 했다.

20일 서울 서대문구 아트하우스 모모에서는 시사회가 끝난 뒤 김민자씨의 미니 콘서트가 열린다. '목포의 눈물'과 '다방의 푸른 꿈' 등 5곡을 직접 부를 예정이다. 김 감독은 "한국 가요의 흐름은 1930년대 김해송·이난영에서 1950년대 김 시스터즈를 거쳐 1960~1970년대 번안 가요로 이어졌다"면서 "한국 현대사처럼 가요사(史) 역시 굴곡은 많았지만 흐름은 멈춘 적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