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서울 중랑구 용마산 중턱에 있는 놀이공원 용마랜드. 녹슬고 페인트칠이 벗겨진 회전목마 앞에서 필리핀 관광객 마기(여·40)씨와 아들 니코(22)씨가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고 있었다. 가동을 멈춘 지 오래돼 먼지로 뒤덮인 바이킹 앞에서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었다. 이날 마기씨 모자(母子)처럼 용마랜드에서 사진을 찍은 외국인 관광객은 40여명에 달했다.

1983년 개장했다가 1990년대 허가가 취소된 '폐(廢)놀이공원' 용마랜드가 아시아 관광객들 사이에서 '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용마랜드는 허가가 취소된 뒤 조명을 켜는 것 외에는 놀이기구를 가동할 수 없게 됐다. 딱히 팔리지도 않아 이런 상태로 15년 넘게 방치됐다.

아이돌 그룹 엑소의 멤버 수호가 2015년 용마랜드 회전목마 앞에서 찍은 앨범 재킷용 사진.

영화 촬영이 끝나고 버려진 세트장처럼 을씨년스럽던 이곳이 관광 명소가 된 것은 '한류 열풍' 때문이다. 2015년 아이돌 그룹 엑소(EXO)가 이곳에서 앨범 재킷 사진을 촬영한 뒤 동남아 팬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이곳에서 촬영한 드라마가 일본에 방영된 이후 일본 관광객도 늘었다. 아이유나 여자친구 같은 유명 가수들도 이곳에서 앨범 사진을 찍었다. 마기씨는 "엑소 멤버들이 사진을 찍은 이곳에 오니 너무 가슴이 뛴다"며 "낡았지만,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분위기도 마음에 쏙 든다"고 했다.

용마랜드 현준수(60) 사장은 "평일에 약 30명, 주말에는 50~60명의 외국인 손님이 다녀간다"며 "입장료는 받을 수 없어, 시설 이용료로 5000원을 받는데도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의 한 여행사는 신혼부부 10쌍을 데리고 이곳에 와 웨딩 촬영을 하는 상품까지 내놨다. 홍콩에서 온 밍크(여·29)씨는 "먼저 다녀간 친구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꼭 와보고 싶어 숙소가 있는 홍대에서 1시간 반 넘게 걸려 찾아왔다"며 "방치된 지 오래돼 곳곳에 먼지가 쌓였지만, 오히려 고풍(古風)스러운 분위기가 있어 사진 배경으로는 최고"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중랑구 망우동 용마랜드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회전목마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형 테마파크에 밀려 15년 넘게 문을 닫았던 이곳이 최근 사진 촬영 명소로 인기를 끌면서 젊은이들과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룹 엑소 멤버 수호는 누구?]

사진 찍기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한국인 방문객도 늘어났다. 이날도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 10여명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웨딩 사진을 찍었다. 셀카봉을 높이 든 대학생 커플들도 보였다. 가장 인기 있는 촬영 장소는 회전목마 앞이다. 해가 진 뒤 어두컴컴할 때 1만원을 내면 10분간 기계 조명을 밝혀 주는데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젊은 여성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오후 7시 문을 닫는 용마랜드는 결혼을 앞둔 커플의 '프러포즈' 장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예비 신랑과 신부, 친구들이 1인당 2만원씩 내면 영업이 끝난 놀이공원을 통째로 빌릴 수 있다. 지난해 이곳에서 프러포즈를 하고 결혼한 김모(34)씨는 "조명이 들어온 회전목마 앞에서 로맨틱하게 프러포즈를 했더니 아내가 감동받아 울음을 터뜨렸다"고 말했다. 현 사장은 "폐장 이후 한 명밖에 남지 않은 직원 월급도 제대로 못 줬는데, 관광객들 덕분에 이젠 조금이라도 줄 수 있게 됐다"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