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초반부터 범인의 살해 장면이 나온다. 허름한 트렌치코트 차림의 어리숭해 보이는 형사는 "아 잠깐, 한 가지만 더요"라는 질문을 던지며 범인을 찾아낸다. 그렇다. 1970년대 시작해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중반까지 방송되었던 형사 콜롬보다.
내가 지금까지 연기했던 배역들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이 콜롬보 캐릭터는 사실 나에게는 2등이라는 낙인을 찍은 역할이다. 혀 짧은 소리와 치아 사이로 발음이 새는 독특한 말투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우리말 더빙을 먼저 했던 성우는 44세 나이에 작고한 최응찬 선배였다. 선배가 떠나면서 한국어 목소리를 잃어버린 콜롬보를 위해 투입된 대타가 나였다.
내 더빙본이 방송된 후 콜롬보는 역시 최응찬이라는 반응이 들렸다. 나는 모차르트를 바라보던 살리에리 같은 열등감보다는 흐뭇함을 느꼈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던 선배의 역량을 인정해서도 그랬지만 그가 나에게 뭉클한 기억을 남겨준 은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중반 계약 문제로 방송국과 갈등을 겪던 끝에 부산에서 사업가(?)로 변신해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당시 촉망받는 신인 소리를 듣던 내가 그만둔다는 소식에 반색하던 선배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 선배는 달랐다. 애주가답게 술집에서만 마주할 수 있었던 선배가 다방에서 만나자고 했다. 어색하게 찻잔을 쥐어들며 말했다. "야 너 어디 가지 마. 네가 무섭게 쫓아와줘야 나도 무섭게 달릴 거 아니냐." 모난 구석도 많던 그의 무심한 말투에 담겨 있던 후배의 재능을 아끼는 마음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빚으로 남아있다.
최 선배의 부재 때문에 내 목소리를 빌려야 했던 콜롬보의 배우 피터 포크도 2011년 저세상으로 떠났다. 약주를 즐겼던 선배는 그를 반기며 술잔을 건넸을 것이다. 그에게 당신의 연기에 한참 못 미치는 내 목소리를 빌려 한국 시청자들을 만나느라 욕봤다고 말하며 껄껄 웃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내게 최응찬은 대한민국 방송사에서 전설로 기록될 최고의 성우이자 가장 고마운 '선배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