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눈에 비친 우리 모습은 우리 자신은 보지 못하는 걸 보게 하는 거울이다. 마이클 브린 전 주한 외신기자클럽 회장의 눈에 비친 한국의 촛불집회는 민주주의의 성숙함이 아니라 법치주의의 미숙함이다. 그는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한국 민주주의에선 국민이 분노한 신(神)이다'에서 민심을 법 위에 두는 것은 법치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에서 살던 사람들에겐 낯선 것이라 했다. 집단지성과 집단광기는 한 끗 차이임을 지적한 말로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그는 "한국에서는 군중의 감정이 일정한 선을 넘어서면 강력한 야수로 돌변해 법치를 붕괴시킨다. 한국인은 이를 '민심(public sentiment)'이라고 부른다"고 썼다.
눈길을 끄는 용어가 한국인들의 '민심'을 'public sentiment'로 표현한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그렇게 번역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백성의 마음'과 '공중 또는 대중의 감정'은 같은 걸까? 만약 둘을 같은 것으로 보면, 민심은 천심, 곧 백성이 하늘이라는 유교의 민본사상을 모르는 거다. 작년 말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가 '군주민수(君舟民水)'다. 군주는 배이고 백성은 물과 같아서, 물은 배를 띄우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민심에 대한 비슷한 생각을 김수영은 시 '풀'에서 표현했다. 풀은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숨은 신'인가, '분노의 신'인가? 왕조시대 왕은 천명의 대변자이기에 왕에 대한 반란은 역적으로 처단됐다. 왕이 곧 국가였던 시대다. 이런 왕조국가에서는 왕의 절대 권력을 통제하고 왕이 백성을 위해 선정을 베풀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걸 각인시킬 목적으로 민심은 천심이란 이념을 고취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왕도 국가의 반역자로 단죄될 수 있는 법치주의가 확립된 근대국가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민주국가에서는 통치자든 국민이든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다. 법치를 확립한 민주국가에서 민심은 여론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마이클 브린의 지적은 한편으로는 유교에 뿌리를 둔 한국의 정치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곧 운동으로서 민주주의가 아니라 체제로서 민주주의를 확립하라는 충고로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