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하물며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고군분투하는 스물아홉 여자 선수는 오죽할까. 한국 배구에서 '100년에 한 번 나올 보물'로 평가받는 김연경(29·터키 페네르바체)도 그런 신세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곳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우뚝 선 그는 벌써 터키에서 여섯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
'여자 배구 호날두'의 활약은 올해도 거침이 없다. 김연경은 17일(한국 시각) 열린 터키컵 4강에서 강팀 엑자시바시를 상대로 양팀 통틀어 최다인 25점을 폭발시키며 소속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상대 에이스이자 러시아 국가대표 간판 공격수 타티야나 코셸레바(20점)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터키 리그는 세계 최고 여자 프로배구 무대로 평가받는 곳이고, 김연경이 속한 페네르바체는 그중에서도 정상을 다툰다. 그는 지난 다섯 시즌 동안 팀의 붙박이 윙 공격수로 뛰며 거의 모든 우승 트로피와 상을 수집했다. 터키 리그 MVP(2015)와 유럽배구연맹(CEV) 챔피언스리그 MVP(2012)를 받았고, 지난 시즌에도 CEV '드림팀'(총 7명)에 선정됐다. 김연경의 연봉(120만 유로·약 15억원)은 남녀 배구를 통틀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김연경이 타지에서도 씩씩하게 버티는 건 멀리서도 언제나 그를 응원하는 팬들이 있기 때문이다. 김연경의 공식 팬클럽(연경홀릭) 회원만 3400여명. 여성 회원 숫자가 훨씬 많아 '걸크러시'(여자도 반하는 멋진 여자)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김연경은 SNS 활동에도 열심이다. 팔로어만 37만여명에 이른다. 김연경은 SNS에 팬들이 보내준 얼굴 팩이나 화장품, 수제 케이크 등 선물을 찍어 '인증'하며 소통한다. 마음은 외로울 틈이 없는 셈이다. 지난 연말에는 배우 강소라가 보내준 한국 인스턴트 식품 꾸러미 사진을 올리고는 "한국에서 조금 빨리 산타클로스가 다녀갔네요. 많이 먹고 힘낼게요!"라고 적어 놓았다. 터키에는 외국에서 음식 소포를 보낼 수 없기 때문에 강소라가 직접 사람을 보내서 전달했다고 한다. SNS를 통해 알게 된 두 사람은 지난해 여름 처음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가까워졌다. 팬들은 '저 정도면 터키에서 편의점 차려도 되겠다' '먼 곳에서 든든히 드시고 언제나 힘내세요' 같은 응원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 누나'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도 있다. 김연경은 최근 같은 리그 바키프방크의 주팅(23·중국) 생일 파티에 다녀왔다. 이번 시즌부터 터키 무대에서 뛰는 '아시아 후배'를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페네르바체와 바키프방크가 리그 최대 라이벌이란 걸 감안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는 "현지 생활, 배구에 대한 주팅의 이런저런 고민을 들어줬다. 생각보다 잘 적응하고 있어 다행"이라며 언니답게 말했다.
터키 생활에는 도가 텄다. 처음엔 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이나 문화도 낯설었던 곳이다. 스스로도 "초기엔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 싶어 한국으로 도망가고 싶었을 정도였다"고 말한다. 김연경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팀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했다. 동료들을 초대해 밥을 사기도 하고, 대화도 많이 나눴다. 그렇게 점차 '벽'이 허물어졌다. 처음엔 터키어를 한마디도 못 했지만 이젠 현지 식당에서 능숙하게 주문하고, 간단한 인터뷰는 통역 없이 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이스탄불 곳곳에서 김연경을 알아보는 팬들도 많아졌다. 거리에서 사인이나 사진을 요청하고, 사탕·과자 같은 선물을 주기도 한다. 김연경은 태극 마크를 새겨 넣은 팔 밴드를 차고 경기한다. 언제든 '고향'을 생각한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선수 생활 마무리는 한국에서 하고 싶어요. 한국 팬들에게 큰 응원을 받았으니 보답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