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 당당한 걸음으로 2부 무대에 오른 이스라엘의 명(名) 지휘자 엘리아후 인발(81)은 여분의 지휘봉을 첼로 수석의 보면대에 끼워넣었다. 이날 그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연주한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암보(暗譜)로 이끌었기에 자신의 보면대가 따로 없었다.

클라리넷의 묵직한 선율로 열린 무대는 올해 서울시향을 향한 클래식 애호가들의 기대치를 한껏 높였다. 바순의 어둡지만 리드미컬한 몸짓은 이내 부드러운 바이올린 물결과 만나 화사하게 빛났다. 단정하면서도 애상의 느낌을 자아내며 피어오른 호른의 노래는 아름다웠다. 잘게 부서지는 음형들, 그 위로 크게 부풀어올랐다가 자연스럽게 가라앉는 흐름은 지휘자의 노련미와 더불어 빛을 발했다. 인발은 악장과 악장 사이 쉴 틈을 주지 않았다. 100m 달리기를 하듯 네 악장을 한번에 밀고 나가 흥분의 회오리를 일으켰다. 셋잇단음으로 장렬하게 포효하는 금관의 울림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트럼펫과 트롬본, 튜바로 이뤄진 금관들은 거칠게 숨을 뿜어내면서도 고른 음으로 공연장을 감싸며 청중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줬다. 근래 보기 드문 호연이었다.

13~14일 서울시향을 지휘한 엘리아후 인발은 열정과 연륜이 묻어나는 해석으로 청중을 빨아들였다.

여든을 넘긴 지휘자는 공연 첫날인 지난 13일에야 롯데콘서트홀에 가봤지만 "하나도 걱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쿠스틱이 좋으면 어디든 오케이! 음악만 있다면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끼어들 자리는 없죠. 나는 절대 긴장 안 해요. 왜냐하면 확신을 갖고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야 하는 지휘자니까. 무대에 서서 음악에 빠져들면 어느덧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일까. 인발은 이날 연주에 만족한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객석과 단원들에게 두루 손을 흔들었다.

1부는 감수성 짙은 연주가 특징인 미국 첼리스트 린 하렐(73)이 적셨다. 인발의 지휘 아래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을 선보인 그는, 본래 체코 출신인 작곡가가 19세기 당시 신세계였던 미국에 건너와 느꼈던 놀람과 고독, 향수를 담백한 선율로 그려냈다. 연주를 마친 뒤 하렐은 첼로 수석 주연선과 오케스트라 자리에 나란히 앉아 비발디의 '두 대의 첼로를 위한 협주곡' 2악장 라르고를 앙코르로 들려줬다. 하렐은 미국 라이스대에서 주연선을 가르쳤던 스승. 사제(師弟)의 따스한 호흡에 객석에선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서울시향의 밝은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