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여론 지지율 1·2위 유력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시작부터 강하게 치고 나오고 있다.

반 전 총장은 지난 12일 귀국해 ‘대선 출정식’에 버금가는 떠들썩한 신고식을 치르면서 대선 링에 올랐다. 앞으로 한 두달 남짓한 짧은 시간에 반 전 총장이 범여권 대표 주자로 자리를 잡을 지 아닐 지가 판가름 나게 된다. 문 전 대표는 오랫동안 야권 대표주자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보수 대통령의 탄핵으로 정권교체 열망이 높아지는 유리한 정국을 맞았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잠재력을 가진 후발 주자인 반 전 총장을 둘러싼 여론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두 사람은 서로 ‘예의’를 차리거나 ‘몸풀기’를 할 여유도 없이 강 대 강, ‘본선’으로 돌입할 전망이다.

반 전 총장은 12일 귀국 연설에서 “패권, 기득권 다 안 된다”면서 “정권 교체보다 정치 교체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우리 정치권에서 ‘패권’이나 ‘기득권’으로 통하는 세력은 친박과 친문 정도다. 직무 정지 상태인 박근혜 대통령보다 경쟁 상대인 문재인 전 대표를 겨냥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또 “(촛불시위)광장에서 나타난 민심을 받들겠다”고 했다. 보수 후보로 여겨져온 반 전 총장으로선 파격적인 발언들이다.

문 전 대표 측과 더불어민주당은 이런 반 전 총장에 대해 외국 장기 거주로 피선거권이 없다는 지적부터 시작, 친인척 비리 의혹이나 유엔 사무총장 직무 수행에 대한 평가 등을 쟁점화 할 태세다. 무엇보다 ‘반기문=정권 연장’이란 프레임으로 대선판을 짜려는 움직임이다.

이런 구도 속에서 두 사람 대결의 ‘1막 1장’이 13일 펼쳐졌다. 주제는 바로 젊은 층 표심 잡기다.

문 전 대표는 13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열린 ‘선거권 18세 하향 조정’을 주제로 한 간담회에 참석, 청소년들을 만났다. 민주당과 문 전 대표는 선거 연령을 하향 조정하는 선거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추진 중이다.

문 전 대표는 이날 “세계적으로 230여개 국가 중 약 93%는 선거 연령이 만 18세 이하로 돼있고 북한도 17세”라며 “(한국의 선거 연령)19세는 부끄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생들은 입시제도와 반값 등록금 등 교육정책의 직접 소비자다. 소비자가 유권자로서 자기 주장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선거에 유리하지 않다는 당리 당략 때문에 반대하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3일 서울 마포구 신한류 프리미엄 라운지에서 열린 '함께 여는 미래 18세 선거권 이야기' 간담회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18세로 선거권 연령을 하향 조정하자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날 비슷한 시각, 반 전 총장은 서울 상도동의 한 김치찌개집에서 이웃 청년들을 조용히 불렀다. 귀국 후 처음 외부인들과 함께 한 식사자리인 이 ‘김치찌개 간담회’에는 청년 상인들과 워킹맘, 취업준비생 등 사회적 약자들을 고루 초청했다. 반 전 총장은 식사 후 강을 건너 마포 도화동으로 향했다. 젊은 부부들이 사는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있고 젊은 직장인 등 유동인구가 많은 이 동네의 은행 지점에 들러 개인 계좌를 개설했다. 이후 반 전 총장은 길 건너 오피스텔에 차려진 대선 준비팀 사무실로 들어가 회의를 가졌다.

반 전 총장의 이날 동선이 뜻하는 바는 그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서민’과 ‘젊은 층’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문 전 대표보다 9살 많은 70대인데다, 보수층 지지가 더 많다는 점에서 반 전 총장의 가장 약한 고리가 청년층이 될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3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KB국민은행에 들러 개인 계좌를 직접 개설하고 있다. 그의 대선 준비 사무실도 인근에 있다.

강북의 ‘마포’엔 대학이 몰려있고 서민층, 젊은 층이 많이 산다. 교육과 복지, 대중문화 분야의 실험이 공공·민간을 불문하고 꾸준히 일어나는 곳이며, 서울 중심부임에도 개발의 여지가 많다. 정치인들 사이에선 여의도 국회를 오가기 쉽고, 정책을 시험하는 테스트베드로서 적합하며, 무엇보다 젊은 인구를 접촉하기 가장 쉬운 동네로 꼽힌다. 문 전 대표와 반 전 총장이 모두 마포에 선거 캠프 격인 사무실을 두고 대선 준비를 하고 있다.

문 전 대표와 반 전 총장이 청년층에 공을 들이는 것은 따지고 보면 이례적인 일이다. 최근 선거 전략은 보수·진보를 떠나 점점 중장년층 위주로 흘러왔다. 고령화가 진행되는 국가들의 공통적 현상이다. 중장년층, 혹은 노령층은 사회적 가치를 논의·설정하는 정치에 관심이 많고, 그럴 관심과 여유가 있고, 실제 선거 투표율도 월등히 높다. 이들의 입맛에 맞는 선거 전략과 맞춤 공약은 다른 대상 연령층에 비해 급속도로 확대되고 정교해져왔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약간 다를 것이란 분석이 많다. 지난해 말 탄핵 정국에서 20~30대가 반(反)정부 여론을 주도하고, 촛불시위 현장에서 10대 고교생들이 직접 마이크를 들고 정치를 규탄했다. 공부와 취업 문제에 쫓기는 이들이 정치 문제 전면에 등장해 목소리를 낸 것은 오랜만의 일이다. 야권에선 재빨리 ‘선거연령 하향 조정’ 입법안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바른정당 등 범여권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선거법 개정이 현실이 되든 안 되든, ‘18세’ 이슈가 계속 쟁점화될 경우 투표장에 몰려나올 젊은이들의 표심이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문 전 대표는 50대에 처음 대선에 출마, 이제 환갑을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젊은 층의 지지를 확신하고 있다. 그를 떠받치는 민주당 조직은 젊은 층을 움직이고 세력화 하는 데 비교 우위가 있는 세력이다. 반면 반 전 총장은 범 보수 후보에, 아직 조직력도 갖추지 못했지만 상대적으로 ‘정치의 때’가 덜 묻었다는 점을 내세우며 오히려 문 전 대표를 기득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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