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조순형 전 국회의원)가 9일 정례 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토론했다. 조 위원장을 비롯해 김경범(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 김태수(변호사), 방희선(변호사), 유미화(서울 반포고 교사), 윤영찬(네이버 부사장), 이덕환(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이재진(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이정희(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여울(문학평론가 겸 작가) 위원이 참석했다.

왼쪽부터 김태수·김경범·윤영찬·정여울·유미화 위원, 조순형 위원장, 방희선·이재진·이덕환·이정희 위원, 정권현 편집국 부국장.

―〈조선일보에 불만 있다〉(12월 28일 오피니언면)는 생경하고 강한 언어로 독자들 불만을 실었는데 하나도 약화시키지 않고 잘 전달했다. 언론사가 스스로 독자들 불만을 모아 보여주어 진정성이 느껴진다. 물론 불만 독자들을 위로하고 동반 의식을 구하는 측면도 있겠다. 다만 일부 독자의 불만을 의식해 그들의 감성에 부합하려는 건 아닌지 걱정도 든다.

―그 지면을 보고 좀 의아하기도 했지만 다수 독자의 공감을 샀을 것이다. 신문을 끊어야 하나 고민하던 어떤 사람은 "조선일보가 공정 보도를 위해 이렇게 노력하니 두고봐야겠다"고 했다.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신선하다. 조선일보의 자신감 같은 것도 느껴졌다. 종종 이런 지면을 만들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직무정지 상태에서 1월 1일 갑자기 기자들을 불러 간담회를 했다. 노트북이나 카메라를 갖고 오지 못하게 하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했다. 1월 9일 A4면에는 〈직무정지 한달… 朴대통령 "일본·중국의 외교 압박 걱정스럽다"〉가 실렸다. 사드와 위안부 문제는 박 대통령이 결정 주체였으니 기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검찰과 헌재 출석을 거부하고 있다. 공식적 자리에서 얘기해야 할 것들을 언론을 통해 우회적·일방적으로 얘기하는 게 바람직한가. 이런 점을 지적했어야 한다. 설 전에도 간담회를 준비하고 있다니 그때는 잘 대처해달라.

―기자가 펜과 카메라를 놓고 취재한다는게 말이 되나. 청와대 출입기자단 간사가 거부했어야 한다. 적어도 조선일보와 TV조선 기자는 거부해야 한다. 그런 기자간담회가 어디 있나. 그리고 지난번 간담회 기사는 평면적 사실 보도에 그쳤다. 국민을 우롱한 간담회였다는 강한 비판이 있어야 했다.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특위 3차 청문회의 주 목적은 '세월호 7시간'에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제대로 대응했는가였다. 증인 13명 중 9명이 의료인이고, 미용시술 의혹을 의원들이 추궁했다. 이날 뜻하지 않게 세 가지 큰 문제점이 드러났다. 대통령 건강을 책임지는 청와대 공식 의료 체계가 완전 붕괴되었다는 것, 경호실이 비선 실세 심지어 비선 의사들을 확인하지도 않고 출입을 허용하거나 묵인 방조했다는 것, 안보 책임 라인이 대통령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이 세 문제점을 기사로도 사설로도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사설 〈최순실은 靑의료체계-軍통수권자 안위까지 농단했다〉에서, 중앙일보도 사설 〈'보안 손님'과 '무분별 시술'로 붕괴된 청와대 시스템〉에서 지적했다.

―1월 9일 '최보식이 만난 사람' 〈'최순실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 단독 인터뷰〉는 논란이 있을 것 같다. 이경재 변호사 인터뷰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새로운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최순실의 변호사로서의 면만 부각됐다. 타이틀도 "태블릿 PC 출현, 너무 작위적"이라고 달았는데 JTBC를 겨냥한 느낌을 준다. 또 "사용자 최순실 아니라는 증인 확보"라는 제목도 그 증인이 누군지 모르고 그 증거가 얼마나 공신력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최순실에게 유리한 쪽으로 뽑았다는 생각이 든다.

―〈사교육 특구에 '학생 전문 사주집' 뜬다〉(1월 7일 Why면)를 보면 비판 의식이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세태를 알리는 기사는 필요하지만 이걸 보고 '우리 애도 사주를 봐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부모도 생길 것 같다. 학생 전문 사주집이 트렌드인 것처럼 쓰면 독자들이 오해할 수 있다. 그 외에 연말연시에 운세나 사주 관련 기사가 자주 실렸다. 12월 26일 '신문은 선생님'에서 토정비결을 소개하고, 12월 31일 '새해 띠별 운세'를 알려주고, 1월 7일 Why섹션 '김두규의 國運風水'에 '붉은 닭의 해… 점쟁이 말에 목매지 말라'를 실었다. 너무 자주 보여 거슬렸다. 〈휴가 다녀온 김병장, 쌍꺼풀 생겼지 말입니다〉(12월 24일 사회면)도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기 애매하다. 휴가 나오면 쌍꺼풀 수술을 해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이가 독감 걸려도… 학원 보내겠다는 학부모들〉(12월 31일 Why면) 역시 학부모 욕심을 얘기하려는 건지, 맞벌이 부부의 현실을 얘기하려는 건지 알기 힘들었다.

―12월 21일 종합1면에 쇼킹한 사진이 실렸다. 터키 주재 러시아 대사가 살해된 장면이다. 현장에서 범인이 총을 들고 서 있고 옆에 시체가 누운, 이런 사진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안쪽 국제면에 실렸다면 몰라도 아침에 신문을 들자마자 보니 얘기가 달라진다.

―새해 들어 교육 특집이 많다. 2일부터 '창의교육 프런티어들'이 연재되고 있는데 헝가리·핀란드의 시스템을 배우자고 하고, 필기·교과서·시험을 없앤 '3無 수업'을 했더니 아이디어가 솟아났다고 소개했다. '3無 수업'을 받고 벤처를 해서 성공했다는 내용도 있다. 이런 기사를 쏟아내면 우리 교육은 엉망이 될지 모른다. 게다가 대부분 서울대 얘기다. 경제학부·공대·자연대·체육교육학과 교수들이 등장한다. 서울대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차분하게 가르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창의교육도 좋지만 지금 더 심각한 건 인성교육이다.

―지난 2일 종합 1면 제목이 〈'87 정치체제' '97 경제모델' 넘어서자〉였다. '87 체제'가 87년 헌법체제를 의미한다는 정도는 이해할 것 같다. 그런데 '97 경제모델'은 와 닿지 않는다. 주변에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수출 대기업 독식 현상이 심화하면서 해외에서 번 돈이 국내 소비·투자로 퍼지는 '낙수(落水) 효과'는 시들해졌고, 고용·소득 격차도 심해졌다. 대기업들이 혁신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내용을 보고서야 대충 이해됐다. 게다가 대기업 수출 주도형 성장은 1970년대부터이니 좀 무리한 설정 아닌가.

―지난달 22일 교육부가 '지식정보사회에 대응한 중장기 교육정책 방향과 전략 시안(試案)'을 발표하고 다음 날 조선일보가 〈교육부, 중장기 정책 방향 발표… 실제 도입까진 수년 걸릴 듯〉(12월 23일 사회면)이라고 보도했다. 기사에서 다루지 않아 궁금한 게 있다.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든 시안이고, 얼마나 많은 의견을 들었는지, 또 왜 하필 이 시점에 발표했는지이다. 중장기 정책이니 곧 시행할 것은 아니다. 그러니 발표 내용을 옮기기보다는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 중장기 정책이라는 것도 황당하다. 지금 수준별 교육도 못하고 있는데 고등학생도 원하는 수업 골라 듣고 학점 받아 졸업한다는 꿈같은 얘기를 펼쳐놓고 있다.

―대선 정국이 시작됐으니 검증 보도가 중요하다. 작년 말 반기문 총장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달러를 받은 의혹이 있다고 '시사저널'이 보도하고 반 총장과 박 회장은 부인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틀 후 반 총장이 '시사저널'에 기사 취소와 사과를 요구하는 공식 서한을 보냈다는 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이후 어떻게 되고 있는지 보도하지 않아 궁금하다. 의혹이 해결되지 않으면 계속 반복되게 된다. 그리고 공소시효가 지나 수사할 수 없는 사안인 점도 설명해줘야 한다.

―AI(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로 역대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그런데 정치에 밀려 비중 있게 보도되지 않았다. 그동안 언론은 밀집 사육 때문에 급격하게 번졌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한삼희 논설위원이 칼럼 'AI, 밀집 사육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에서 실상을 잘 정리했다. 그런데 이 내용이 기사로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 먼저 사내(社內)에서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기상청서 지진 문자 발송하고 예산도 3배로 늘리기로〉(12월 20일 B1면)를 보면 정부가 50초 걸리는 지진 경보 시간을 2020년까지 10초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는데 문자를 빨리 발송하면 무슨 큰 변화가 생긴다고 이렇게 많은 돈을 쏟아붓는가. 시급한 매뉴얼을 만들 생각은 않고 일본 흉내 내느라 경보를 빨리 보내는 일에 돈을 쓰고 있다. 지진이 나면 정부는 무엇을 하고 사람들은 뭘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려주는 일이 더 시급하다.

[위원들의 기사 제안] 强國에서 고립무원 전락한 인터넷산업 실태 알려야

탄핵·대선에 한·미 관계 등 중대 이슈 묻히면 안 돼
새 비전 제시해 불안 가라앉히고 정부도 격려하길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20일 취임한다. 지금까지는 단편적으로 보도했는데 한·미 관계 전반에 대한 기획기사를 내면 좋겠다. 국방·안보·경제·통상 등 양국 관계에 대한 심층보도를 바란다. 자칫 탄핵과 대선 정국에 묻힐 것 같아서 그런다.

―새해 첫날 사설이 〈대한민국을 '안 되는 나라'에서 다시 '되는 나라'로〉였다. 대부분 언론이 신년 메시지로 '절망에서 희망으로'를 제시했다. 문제는 글에 여전히 희망적 내용은 없고, 국민이 어두운 터널 앞에 선 것 같은 절망감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대외적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새로운 비전과 방법을 제시해 불안감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정부에도 "대행체제라고 아무 일도 안 하고 다음 정부를 기다릴 게 아니라,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힘써달라"고 자극하고 격려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 분야에 대해 몇 가지 들여다봐야 할 부분이 있다. 첫째, 한국은 과연 인터넷 강국인가 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절대로 아니다. 과거 강국이라고 했던 것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을 가장 빠르게 구축했기 때문이다. 세계 인터넷 업계는 플랫폼 중심으로 서비스 경쟁이 치열한데 한국은 어느 쪽에도 발을 내딛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업계가 세계를 포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도 다 무너졌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 끼여 시장 자체가 없다. 영어권은 미국이 버티고, 중국은 문을 닫아버렸다. 그런데도 관료들은 신화에 빠진 채 방송·통신 중심이다. 외국 통신사들이 혁신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 다 인터넷 플랫폼 회사들이 주도한다. 페이스북·구글·알리바바·바이두 등이다. 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인터넷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이 필요한데 하나도 없다. 중국·미국은 인터넷에 사활을 건 느낌인데 한국은 고사 위기인데도 아직도 세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우리나라로 구글의 에릭 슈미트나 래리 페이지, 중국의 마윈이 오면 대통령부터 총리와 국회의장 등이 다 만난다. 그런데 정작 자국의 인터넷 기업가를 대통령이 만난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이 되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기반이 공허하고 갈 곳이 없다. 우리 인터넷 기업과 스타트업을 어떻게 세계로 보낼 것인지 전략과 지원이 필요하다.

―인터넷과 관련해 앞으로 주로 SNS를 통해 전파되는 가짜 뉴스, 즉 '페이크 뉴스'가 문제가 될 것이다. 이럴수록 전통 매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저널리즘의 위기가 올 수 있다.

―휘발유값과 경유값을 얘기할 때 고쳤으면 하는 게 있다. 기사 〈휘발유값 34일째 상승… 리터당 2000원 넘는 곳도 등장〉(12월 31일 A8면)이 그런 예다. 휘발유와 경유는 리터당, 원유는 배럴당 가격으로 보도하는 관행 문제이다. 이러면 독자들이 실상을 파악하는 데 방해된다. 정유사나 주유소가 뭔가 해먹는 것 같은 의혹을 갖게 된다. 기사를 보면 원유가가 배럴당 54달러까지 올랐다. 1배럴은 159리터이니 1300원 환율로 치면 리터당 440원이다. 정유사는 이걸 중동에서 실어와 울산·여수에서 정제해 주유소에 공급하는데, 그 가격이 리터당 560원이다. 정부가 여기에 세금 900원을 붙이는데 정유사 공장도 가격의 2배에 가깝다. 이런 사실을 알려주어야 독자들이 기름값 구조를 이해한다. '가짜 기름'이라는 건 이 900원을 따먹는 것이다. 올해 기름값이 오르는 것은 확실하다. 다시 가짜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원유가를 리터로 표시하면 쉽게 이해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