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대선 주자들이 최근 경쟁적으로 '위안부 합의 재협상·백지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연기·철회' 주장을 하면서 정작 그에 따른 대책과 '뒷감당'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다. 한·미 동맹 훼손, 북핵 공조 파기, 국가 신용도 저하 등 수많은 후폭풍이 예상되는 논쟁적 외교 사안을 마치 국내 정치 공약 뒤집듯이 여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는 "국익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전략 없이 국민감정에 편승해 외교 합의를 뒤집으면 국가 차원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며 "지금 한국 외교는 실수를 할 여력이 없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9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에서 받은 10억엔은 굴욕적인 돈"이라며 "예비비라도 편성할 테니 10억엔을 돌려주자"고 했다. 사실상 위안부 합의를 전면 파기하자는 얘기다. 야권 주요 대선 주자들도 위안부 합의를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면죄부"(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외교 참사"(안철수 국민의당 의원)로 규정하며 재협상·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최근 '재협상 검토'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이 위안부 합의에 이처럼 부정적 말을 쏟아내는 것은 일차적으로 일본이 사죄·반성에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격해진 국민감정을 반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임 있는 국정 운영자 차원에서 실제로 합의를 깨고 재협상을 하겠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정부 소식통은 "재협상을 한다면 '어떤 외교적 지렛대를 활용해 어느 선(線) 이상을 얻어내겠다'는 전략 수립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이 얘기는 전혀 없다"고 했다.
사드 배치 연기·철회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야권에서는 당장의 중국의 경제 보복을 이유로 들지만 실제로 한·미 간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깼을 경우 우리 외교·안보에 불어닥칠 후폭풍에 대한 논의는 없다. 동맹 관계도 '거래'로 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빌미로 '주한 미군 철수' '한·미 동맹 재조정' 등을 걸고 나오면 중국의 경제 보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위기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김성한 전 외교부 차관은 "근본적인 정책 전환을 하겠다면 충분한 준비 과정과 이를 뒷받침할 지렛대·대안을 갖고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며 "특히 미·중·일 등 세계 초강대국들을 상대해야 하는 한국은 더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