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기 배우·인하대 로스쿨 교수

강의 순서에 맞추어 회의장 뒷문을 빠끔히 열고 구석자리에 살짝 앉았다. 작은 체구의 까무잡잡한 사나이가 돌아보며 씩 웃었다. 프놈펜에서 만났던 캄보디아 문화부 저작권과 직원이었다. 한국저작권위원회와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가 서울에서 주최한 '저작권 보호 인력 세미나'에서의 일이다.

우리나라의 저작권 보호 수준은 괄목 성장 그 자체이다. 외국 법관들과 공무원들이 단체로 공부하러 오고, 우리 전문가들이 현지로 날아가 경험을 전한다. 두 해 전 가을 프놈펜에서 'WIPO 아시아 지역 저작권 회의'가 열렸다. WIPO 제네바 본부의 간부들과 한국 호주 법률가들 앞에서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 공무원들이 국가별 저작권 역량 구축(capacity building) 방안을 모색하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캄보디아 저작권과 직원은 회의장의 심부름을 도맡아 하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면서도 틈만 나면 다가와 살갑게 챙겨주었다.

프놈펜 회의에서 만난 동남아 공무원들은 한국을 무척 좋아했다. 한국인에게만 보내는 다정한 시선이 단박에 느껴졌다. 모두 한국에 여러 번 출장을 다녀왔다며 한국을 아는 체했고, KOICA와 한국저작권위원회 연수 프로그램의 혜택을 고마워했다. 점심 식사 테이블에서 한국에서 본 '눈(雪)'이 화제가 되었다. 라오스 여성 공무원이 눈 내리는 길거리에서 팔짝팔짝 뛰었다고 자랑하고는 수줍게 웃었다.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얼마나 예쁘던지 가슴이 뭉클했다며 다른 이가 공감했다. '추위가 견딜 만하더냐'고 물었더니 테이블 전원이 합창으로 답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가 따뜻한 옷을 입혀 주었어!" 초청 기관이 연수생 수에 맞추어 방한복을 마련하였고, 그 세심함이 이들의 마음까지 녹였던 게 분명했다.

우리나라의 공공 원조는 예산 대비 성과가 우수하다고 한다. 우리가 배곯았던 경험이 생생하기에 상대방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으면서 의욕을 부추기는 원조에 노하우를 발휘한다는 뜻이겠다. 프놈펜에서 그 실체의 한 가닥을 보았다. 뒤처진 이웃 나라의 어깨를 보듬고자 정교한 지원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이들, 참 훌륭한 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