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대표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새해 첫날 국립현충원을 참배한다. 이때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은 참배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만 가고 경남 김해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2월 당 대표로 선출된 문재인 전 의원이 처음으로 이·박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았다. 지난 8월엔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추미애 대표가 같은 묘역에 참배함으로써 민주당의 새로운 관례로 자리 잡는 듯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최근 최순실 게이트와 촛불 집회를 거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이승만·박정희 묘역 참배 방침을 뒤집었다. 박 대통령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승만 묘역도 찾지 않기로 한 것이다. 무원칙에 앞서 유치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문 전 대표는 지난해 이·박 전 대통령 묘역에 고개 숙인 후 "전 대통령 묘역 참배를 둘러싼 갈등을 끝내고 국민 통합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추 대표도 참배 후 "독재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게 하되, 공과를 그대로 존중하는 것은 바로 국민 통합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두 사람 모두 큰 박수를 받았다. 이제 적어도 전직 대통령 묘역 참배 갈등이라는 부끄러운 일은 없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됐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번 결정으로 다 헛일이 됐다. 문·추 두 사람 논리대로라면 이번 결정은 통합을 저해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그토록 반대해 온 연좌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정당이 때에 따라 방향과 노선을 일부 수정할 수는 있다. 그래도 최소한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대체 이승만·박정희와 최순실이 무슨 상관인가. 지금 박 대통령의 아버지 묘에 참배하는 것은 야당으로서 분명 인기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시류(時流)만 좇는다면 책임 있는 정당이랄 수 없다. 민주당은 새누리당이 분당되면서 원내 제1당이 됐다. 그런 정당의 가벼운 언행을 보며 안심할 수 있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권을 다 잡았다고 생각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극렬 지지층에만 영합하고 중심을 못 잡으면 후회하는 날이 앞당겨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