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터치’만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대에도 종이로 인쇄된 달력과 다이어리, 연하장은 사람들의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며 인기가 식지 않는다. 달력과 다이어리, 연하장의 시초는 언제부터였으며, 그간 어떻게 변해왔는지 알아보고, 가게 가판대 앞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이거 살까, 저거 살까’ 고민했던 그때 그 모습을 떠올려보자.

첫 장 넘기는 순간내 생일부터 표시하는 달력

요즘은 보통 자신의 생일, 연인과 200일, 아버지 제사 등 개인적으로 특별한 날을 표시해두기 위해 달력이 쓰이지만, 최초의 달력은 농작물의 파종 시기와 종교나 사회적인 기념일을 정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 달의 변화를 기준으로 한 ‘태음력’이냐, 태양의 변화를 기준으로 한 ‘태양력’이냐, 또는 종교가 무엇인지에 따라 문명별로 달력의 형태는 제각각이었다. 국제 무역이 발달하면서 통일된 달력의 필요성이 대두했고, 1582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만든 '그레고리력'이 보편적으로 쓰이게 됐다.

[그레고리력 알아보기▶]

조선 시대 '경진년(1580년) 대통력'과 '기일비망기'

우리나라에도 조선 시대 문헌을 통해 예부터 태음력을 토대로 한 달력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궁중에서는 월일의 시간과 농사나 길흉화복 등의 정보가 기록된 '역서(또는 책력)'를 책의 형태로 만들어 배포했다. 현존 가장 오래된 역서는 보물 제1319호 '경진년(1580년) 대통력'이다. 이와 별도로 일부 가문은 조상의 제사일과 가족의 생일날을 기록하는 '기일비망기'를 만들었다.

조선 말기,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태양력이 도입됐다. 고종은 1895년 11월 17일 양력을 공포, 1896년부터 음력 날짜 하단에 양력 날짜를 동시에 기재한 달력을 간행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양력을 강제로 사용하도록 해 음력에 익숙한 국민들이 혼란을 겪기도 했다.

달력이 상품화된 것은 1950년대 중반 이후다. 이때만 해도 관공서나 은행, 기업 등에서 홍보용 벽걸이 달력을 무료로 배부해 돈을 주고 달력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루 지날 때마다 한 장 한 장 뜯던 일력 달력, 한 달씩 적힌 굵은 숫자의 달력, 3개월이 한 면에 담긴 3단 달력이 대표적이다.

1970년대 들어 여자 연예인의 그림이나 풍경 그림을 넣는 등 디자인이 들어간 달력이 나오면서 구매자들이 늘기 시작했다. 특히 서울 충무로와 을지로, 종로 일대에는 달력 전문상가들로 성황을 이뤘다.

오늘날과 같이 달력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여기는 소비 경향은 1997년 IMF 이후 기업이 홍보용 달력 발행을 줄이면서 자리 잡았다. 벽에 못을 박지 않아도 되고, 집안 장식으로 활용하기 편한 탁상달력의 선호도가 벽걸이보다 높아졌다. 대기업들이 국내외 명화를 실은 ‘명품 달력’을 내놓은 것도 이쯤부터다. 1권당 수 만 원대를 호가하는 명품 달력은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찾는 소비자들을 만족시켰다.

최근에는 판매 수익의 일정액이 기부되는 에코달력이나 인기 TV 프로그램에서 제작한 달력, 프로야구 구단이 제작한 달력 등 개인 취향에 따라 대중없이 팔린다. 수강료와 재료비를 내고 '달력 DIY(Do It Yourself)'라는 교육을 받고 직접 자신만의 달력을 만드는 이들도 있다.

[홍보용 달력? 줄여! 줄여!]

['공짜 달력' 찾아 삼만리]

["누드달력 새댁들이 찾고 일력은 예술가들이 단골"]

무엇을 했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오로지 나의 이야기를 담는 다이어리

동·서양 모두 일상이나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을 기록한 ‘일기’가 산문의 한 양식으로 오랜 세월 이어져 왔다. 그 과정에서 오늘날 수첩 형식의 다이어리가 발전한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나라에 다이어리 상품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60년대 삼중당·휘문·동아 등 출판사에서 학생용 다이어리를, 한국능률협회 주도로 직장인용 다이어리를 제작하면서부터다. 명상일기, 자유일기, 비지네스 다이어리 등 제작 업체마다 다이어리에 붙인 이름도 달랐다. 이어 자물쇠를 단 키·다이어리, 민속 사진에 메모 공간이 있는 포토·다이어리 등이 나왔고, 다이어리는 연말연시 인기 선물로 떠올랐다. 다이어리 제작 업체들도 연말 대목을 놓치지 않기 위해 상품 광고에 열을 올렸다.

문구업계도 가세하면서 다이어리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1987년에는 속지를 갈아끼울 수 있는, 일명 '시스템 다이어리'가 일본에서 인기를 끌더니 국내로 들어왔다. 국민학생들(현 초등학생)도 캐릭터가 그려진 시스템 다이어리를 구매한 다음 서로 속지를 교환하기 바빴다.

1990년대 들어 PDA 다이어리라는 휴대용 전자수첩이 개발돼 반짝 주목을 받았지만, 이내 휴대전화로 대체됐다. 메모를 비롯해 주소록, 일정 관리까지 다이어리의 모든 기능을 휴대전화 하나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다이어리는 기호상품으로 남아 높은 인기를 유지했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는 공간인 다이어리를 직접 꾸미면서 행복감을 느끼는데, 휴대전화로는 이런 욕구를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커피 전문점에서 제공하는 사은품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이러한 소비자들의 다이어리 소유욕을 잘 파고들어 연말 특수를 누리는 데 성공했다. 특히, ‘스타벅스’는 2004년 연말에 프랜차이즈 업계 최초로 음료 판매와 연계한 다이어리 사은품 행사를 시작했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일부 상품이 순식간에 동난다. 소비자들 역시 상술인 것을 알면서도 브랜드에 친밀감을 느껴서, 몇 잔만 더 마시면 공짜로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다이어리가 기호상품이 되면서 ‘대세 다이어리가 있다’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브랜드·재질·속지 형태·테마 등에 따라 디자인이 무궁무진하며, 각자 취향에 맞는 제품을 선택한다.

[커피 전문점의 플래너 마케팅 불붙어]

최근에는 블로그·인스타그램 등 SNS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과 결합한 새로운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손으로 쓴 다이어리를 사진으로 찍어 자신의 SNS에 올린 뒤 다른 사람들의 댓글을 통해 쾌감을 얻는다. 소셜다이어리앱이라는 애플리케이션에 힘든 일상이나 속마음을 익명으로 남겨 위로를 받기도 한다.

['소셜다이어리앱'이란?]

새해 덕담 전하며인맥관리에 유용한 연하장

연하장은 15세기 독일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동시에 신년을 축복하는 글을 담은 카드를 동판에 인쇄한 것에서 출발한다. 그 후 오스트리아·프랑스·영국·미국 등으로 연말에 카드를 주고받는 풍속이 확대됐다.

구당서* 신라조에 ‘신라에서는 새해 첫날을 중요하게 여겨 서로 축하한다’는 구절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우리나라에도 새해 덕담을 나누는 풍속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리고 조선 시대의 ‘세함(歲銜)’이라는 풍속에서 서양과 비슷하게 글귀를 주고받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세함이란, 신년 초 직접 찾아가 인사하지 못하면 아랫사람을 시켜 서찰을 보내는 것, 또는 관아의 교졸*들이 관원이나 상관의 집을 방문해 자기 이름이 적힌 쪽지를 세함상이라는 곳에 넣어 두고 가는 것을 말한다. 바깥출입이 어려웠던 반가(班家·양반 집안) 여인들의 경우 친지들에게 덕담을 적은 글을 단자에 넣은 다음, 여종이 대신 전달하러 갔다. 이를 문안비(問安婢)라고 불렀다.

또, 신선의 시중을 드는 아이가 불로초*를 짊은 모습이나 노자(중국 춘추 시대의 사상가)를 그린 그림을 임금이 신하에게 선물로 줬던 ‘세화(歲畫)’라는 풍속이 있었다.

이러한 풍속은 대한 제국 때 우편제도가 등장하면서 사라졌다. 당시 우정국에서 신년을 축하하는 내용의 전보를 해외 홍보용으로 제작해 새해 1월 1일자 소인을 찍어 배달했다. 우정국에서 발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연하장은 1900년에 전통의상을 걸친 우정국 관리들의 모습이 컬러로 인쇄된 것이다. 하단에는 '신년을 맞이하여 한국 황실과 우정국의 임직원들은 여러분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냅니다'라는 문구가 있었고 뒷면은 공란이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 연하장들

일제 강점기 이후 고향으로부터 떨어져 지내 새해에 일일이 집을 찾아갈 수 없게 되자 연하장이 유행했다. 그러면서 전통적으로 장수나 복을 상징하는 해·학·소나무나 십이지 동물, 겨울 풍경 등 다양한 그림의 연하장이 쏟아져 나왔다.

광복 이후 인터넷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종이 연하장을 지인들과 주고받는 것이 연말의 필수 행사였다. 허리띠를 졸라매던 산업화 시절에도 고위 공무원들은 금가루로 자기 이름을 찍은 카드를 돌리거나 인쇄술이 발달한 일본에 카드를 대량 주문하는 등 카드로 신분을 과시할 정도였다. 이에 1960년 4·19 혁명과 5·16 쿠데타, 12·12 사태 등 정권 교체 시점에 정부가 공무원들에게 허례허식이라며 ‘크리스마스 카드 및 연하장 교환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성탄카드, 공무원들 금지목록 1호… 50년대 카드엔 '춘향이 러브신'도]

인터넷의 발달로 연하장의 문화는 크게 달라졌다. 이메일로, 문자 메시지로, 이제는 카카오톡과 같은 스마트폰 메신저로 주소록에 저장된 지인들에게 한꺼번에 새해 덕담 글귀를 보내는 것에 익숙해졌다. 한 사람을 위해 종이 연하장을 직접 고른 뒤 우표 붙여 우체통에 넣는 것이 오히려 깜짝 이벤트인 듯하다.

달력도, 다이어리도, 연하장도, 신년을 축복하고 기대하는 오랜 풍습에서 비롯된 산물이다. 디지털 시대에 그 의미가 많이 약해졌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연말에 새 달력과 다이어리, 연하장이 없으면 왠지 허전함을 느낀다. 펜으로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쓰던 손맛을 잊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