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대도상가 E동 3층 꽃시장. 문을 열자 크리스마스 장식등이 반짝거린다. 꽃향기도 가득 밀려온다. 하얀색으로 뒤덮인 트리가 성탄을 알린다. 산타클로스 인형, 썰매, 아기 천사와 루돌프 사슴, 빨강 초록 장식품들이 진열대를 가득 채웠다. 손님이 스티로폼 눈사람을 집어들며 가격을 묻는다. 창동 아파트단지에서 옷가게를 하는데 쇼윈도 장식용품을 사러 나온 참이다. 수녀님들도 오랜만에 남대문시장 나들이를 나왔다. 다양하고 예쁜 장식들을 구입하는 데 남대문시장만 한 곳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발품 팔아야 보이는 거대 시장의 비밀
연말 남대문시장은 금요일 밤 가장 분주하다. 밤 10시. 큼직한 가방을 든 사람들이 버스에서 우르르 내린다. 지방에서 옷을 떼러 온 소매상들이다. 대로를 따라 열대 남짓 전세버스들이 서 있다. 옛 기억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한창때는 100대 가까운 버스들이 퇴계로 일대를 가득 메우고도 모자라 중앙우체국과 힐튼호텔 쪽까지 늘어서곤 했다. 전국에서 몰려든 옷가게 주인들과 행상들이 뒤엉켜 밤마다 전쟁을 치렀다. 포항이나 목포, 아니면 어느 다른 도시의 쇼윈도에 주말 신상품으로 걸릴 운명. 남대문시장의 동력은 아동복과 숙녀복이었다. 부르뎅, 포키, 크레용 아동복 등 남대문표 브랜드들이 전국을 석권하던 시절. 밤새 불이 휘황찬란했다. 흥정하는 인파를 뚫고 야식을 먹으러 드나들었다. 고소한 멸치국수, 계란 프라이에 케첩을 잔뜩 친 샌드위치. 야시장이 예전 같지 않은 요즘은 오전에 줄 서는 간식 집들이 몇 있다. 퇴계로 쪽 대만 카스텔라, 남대문로 쪽 호떡집 두 곳.
의류시장과 꽃시장은 일부다. 남대문시장 안엔 약 1만1000개의 가게가 있다. 인근 직장인들은 갈치조림과 칼국수 골목밖에 모르는 경우 많다. 액세서리 상가에 들어가본 남자 몇이나 될까. 결혼을 앞둔 딸이 엄마와 함께 혼수를 고른다. 식당 창업자들은 그릇 상가를 뒤지면서 예쁘고 저렴한 그릇을 찾느라 여념이 없다. 2만평 대지 위에 자리 잡은 남대문시장은 구역마다 전혀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다. 많은 이가 '장님 코끼리 만지기' 같은 경험담을 얘기할 수밖에 없다.
대로를 따라, 건물 지하부터 옥상까지, 비좁은 골목 안에, 비상계단 옆에, 막다른 골목 깊숙이, 가게와 가게들이 미로를 만든다. 얽히고설킨 공간을 느긋하게 다닐 수 있으려면 몇 번쯤 길을 잃어봐야 한다. 그렇게 헤매고 다니다 보면 침구와 혼수는 중앙상가 2층에, 그릇과 주방용품은 대도상가 3층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좁은 작업장에서 꼼꼼하게 손을 놀리는 직원들을 보면서 전 세계로 팔려나가는 액세서리 시장의 존재감도 느낀다. 발품을 팔아야 한다. 그러면 남대문시장을 즐길 수 있다. 미궁 같은 공간에 얼마나 알차고 신기한 물건이 많은지.
크리스마스 알리는 문구점 골목
겨울철 늦은 해가 떠오른다. 점심때는 발 디딜 틈 없는 좁은 갈치골목도 아직은 한가하다. 오랜 단골 '왕성식당' 문을 열고 들어선다. '희락식당'과 더불어 갈치골목의 양대 산맥이다. 칼칼한 갈치조림 한 뚝배기면 속이 후련해진다. 칙폭칙폭 밥 뜸 들이는 소리가 기차소리 같다. 전화벨도 울리기 시작한다. "청자 320호, 라면 하나요!" 청자상가, 라면김치찌개의 준말이다. 자리 뜰 시간조차 없이 바쁜 상인, 작업자들에게 배달 음식은 일상이다. 멀리서 교회 종소리가 들려온다. 갈치골목을 빠져나오니 문구상들이 크리스마스 시즌을 알린다. 산타클로스 인형, 눈사람을 수놓은 가방, 금빛 종과 별, 천사와 사슴 등 트리 장식이 형형색색이다. 포장지 색깔도 황금빛, 노랑 빨강으로 화려해졌다.
갈치골목과 문구점들이 몰려 있는 본동상가는 남대문시장에서 가장 오래된 구역이다. 골목 어귀에는 야채, 생선, 반찬, 식료품 가게 등이 고전적인 재래시장의 면모를 갖췄다. 길 건너에는 1층 액세서리, 지하 수입품, 2층 혼수, 3층 그릇과 꽃가게들이 즐비한 대도상가와 중앙상가가 있다. 지하층은 실핏줄처럼 연결돼 있고, 3층은 낡은 '스카이웨이'로 건널 수 있다. 두 거대한 상가 사이 흔히 '중앙통'이라고 부르는 대로가 있다. 퇴계로 회현역 5번 출구와 남대문로 쪽 2번 게이트를 일직선으로 이어주는 도로다. 매일 아침 짐을 실은 오토바이와 트럭이 들어오고, 카트와 지게가 길을 건넌다. 물건을 받아 옮기는 가게 점원들로 북적거린다.
"그 옛날에 어떻게 이런 큰길을 낼 생각을 했을까 몰라. 땅값이 얼만데!" 터줏대감 중 한 명인 건어물가게 동경식품의 장기수(76) 사장이 얘기를 꺼내는 사이 중국인 단골이 들어온다. 양태 어포를 가리키며 묻는다. "이거? 류첸."(一個? 六千.) "바거."(八個.) 손가락과 계산기만으로도 능숙하게 거래가 끝난다. 중앙통에는 두리번거리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다. 인삼이나 김 등 토산품을 파는 가게들은 영어, 일어, 중국어가 다양하게 오간다. 재래시장 투어는 그 도시의 속멋을 느끼게 한다. '한국적인' 선물을 찾으러 다니던 독일 커플은 빵모자를 몇 개 써보더니 '득템'했다는 듯 활짝 웃었다.
대도상가 지하 '도깨비시장' 아세요?
한국전쟁 후 남대문시장은 폐허가 되었다. 생필품들과 더불어 시장에 흘러나온 게 '미제'였다. 야전상의를 염색해서 입는 것만으로도 멋쟁이 대접을 받던 시절. 불법 미군부대 물건으로 난장이 섰고, 단속이 뜨면 난장판이 되었다. 단속반이 뜨기 무섭게 물건을 팔던 상인들은 보따리를 둘러메고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곤 했다. 그래서 도깨비시장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없는 게 없었다. 고양이뿔만 빼고 다 구할 수 있다고 했다.
대도상가 지하 수입품상가를 흔히 도깨비시장이라고 부른다. 개인적인 추억이 있다. 양담배 판매가 자유화되기 이전이었다. "녹슬은/ 은행과 영화관과 전기 세탁기/ 럭키 스트라이크" 박인환의 시 '투명한 버라이어티'에 실명으로 등장한 럭키 스트라이크를 구하기 위해 도깨비시장을 뒤졌다. 돈을 모아서 시바스리갈 한 병 사기 위해 기웃거리기도 했다. 주인아저씨가 가게 뒤쪽 구석진 곳에 다녀오면 신기한 물건이 '뻥!' 하고 나타났다. 마치 도깨비 방망이를 두드리기라도 한 듯.
60년대에는 거버 이유식 병이 인기였다. 밀봉되는 유리병이 없었던 까닭에 미군부대에서 버린 빈병을 박박 씻어서 팔았다고 한다. 70년대 이후에는 스팸, 핫도그, 헤어스프레이 등이 인기 아이템이었다. 지금이야 인터넷 '직구'로 아무 물건이나 구할 수 있지만, 오랫동안 '미제'는 구하기도 힘들었고 인기도 높았다. 손님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어릴 적 누나 손 잡고 왔다가 손 놓치면 시장 끝까지 쓸려갔었어요." 지금도 오후 시간에는 여성 고객들로 좁은 복도에 교통체증이 생긴다. 오랜 단골 아주머니는 부대찌개를 끓이기 위해 스팸과 치즈를 산다. 젊은 아줌마 둘이 물건 값을 물어보면서 수입산 접시를 세세히 살펴본다. 흥정을 하면서 여우 목도리를 걸쳐본다. 이렇게 24시간 내내 돌아간다. 언제나 열린 공간. 남대문시장의 매력이요, 에너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