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 소추 사유는 사실이 아니며 증거도 없고 절차에 흠결이 있으므로 탄핵은 각하 또는 기각돼야 한다"는 답변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박 대통령은 답변서에서 기업들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등은 자발적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에게 밉보인 대기업 오너가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VIP 뜻이니 그만두라'는 말을 듣고 망명하듯 외국으로 나가야 했던 게 작년 일이다. 국회 청문회에서도 대기업 회장들은 "청와대 요청을 거부하기 어렵다"고 했다. 장관과 청와대 수석들도 잘 만나지 않는 대통령이 재벌 회장들을 1대1로 불러 재단 출연을 부탁하거나 어떤 회사를 지원해달라고 할 경우 거절할 수 있는 회사가 있느냐는 것이다.

박 대통령 측은 '참모진이 대통령 뜻을 오해해 과도하게 직무 집행을 했다'는 답변도 했다. 안종범 전 수석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안 전 수석은 대통령 지시 사항을 깨알 같은 글씨로 적은 510쪽 분량 수첩 17권을 갖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재단 명칭을 어떻게 하고 사무실 위치는 어디에 두라는 지시까지 했다. 검찰은 '공범으로서 대통령 혐의는 99% 입증 가능한 것만 공소장에 포함시켰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 등의 사익(私益) 추구는 알지도 못했고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미르·K스포츠재단을 전문가 아닌 최씨 일당에게 맡긴 것 자체가 '국가를 위한 일'이라는 박 대통령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 대통령이 최씨의 뒷배경을 자처했는데 최씨의 종횡무진을 모를 수 있었느냐는 것은 합리적인 의심이다. 박 대통령이 어디까지 알았느냐는 헌재 심리의 주요 부분으로 앞으로 밝혀져야 한다.

박 대통령은 현대자동차에 최순실씨 지인의 회사가 납품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한 것에 대해 '중소기업 애로를 해결해주려 노력한 것'이라고 했다. 수만개 중소기업 가운데 왜 그 한 곳만 부탁했느냐는 반문엔 뭐라 할지 궁금하다. 박 대통령은 연설문 유출에 대해선 '일부 표현에 관해 의견을 들은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기자와 다 알려진 얘기를 통화한 것조차 국기(國基) 문란이라 했었다. 국정 방향이 담긴 연설문 유출은 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사안이다.

박 대통령은 문제가 되는 일들은 전체 국정의 1%도 안 되는 것이라고도 했다. 국민은 그렇다면 나머지 99% 국정에서 벌어진 무능·무책임 행태는 또 얼마나 더 심각했던 것일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여러 문제가 과거 정부에서도 있었던 관행(慣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재단을 만들고, 돈을 걷고, 무자격자들에게 통째로 맡겨 마사지센터 주인이 재단 이사장 자리에 앉는 일은 이 정권에서만 벌어졌다.

박 대통령은 답변서에서 '대통령이 국민 신임을 배신해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라야 대통령 파면이 정당화된다'는 2004년 헌재 결정문 내용을 인용했다.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은 국민 신임을 배신하지 않았고 국정을 담당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지 아닌지는 헌재가 판단할 것이다. 다만, 답변서 전체 내용을 보며 박 대통령의 현실과 동떨어진 현실 인식만은 또 한 번 절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