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수서 남서울은혜교회(박완철 담임목사)엔 '주일학교'를 제외하고도 학교가 12개나 있다. 결혼예비학교, 신혼커플학교, 부부태교학교, 애착부모학교, 아동기부모학교, 사춘기부모학교, 청년기부모학교, 부부학교, 어머니학교, 남남톡(아버지학교), BMR(은퇴학교), 새롬평생대학…. 이 12개 학교를 통틀어 부르는 이름은 '생활훈련학교'. 교회에서 '생활'을 '훈련'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보통 교회에서 좋은 교인 키우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노력합니다. 그러나 1000만 성도라 할 정도로 개신교가 성장했지만 여전히 세상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좋은 생각=좋은 사람=좋은 삶'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란 걸 체험으로 깨달았습니다. 결국 각각의 가정과 구체적인 삶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생애 주기별 학교를 만들게 됐습니다."

성인(成人)들이 성경적 삶을 살 수 있도록 안내하는‘인생 12개 학교’를 펴낸 홍정길(오른쪽) 목사와 박남숙 박사. 홍 목사는“전도, 성경 공부 열심히 해도 구체적인 생활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하고‘생활훈련학교’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20년 전 생활훈련학교를 개설한 홍정길(74) 원로목사는 지난 13일 이렇게 말했다. 학교 개교엔 홍 목사의 개인적 고민도 바탕이 됐다. 앞만 보고 달리던 1970~80년대 목회자의 삶 역시 여느 가장과 다르지 않았다. 새벽에 나가서 한 명, 한 가정이라도 더 만나다 보면 귀가 시간은 자정 직전이 되기 일쑤였다. "결혼시키기 전날 아들이 그러더군요. '어려서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깜짝 놀랐죠. 저는 그 아이를 늘 봤거든요. 그런데 돌이켜 생각하니 저는 늘 자고 있는 아이를 봤지만 아이는 저를 못 본 거죠. 무척 미안했습니다." 홍 목사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털어놓았다. 목사 안수 전날 밤 마주 앉은 아들에게 아버지는 목회자로서 두 가지를 당부했다. '잘못을 인정할 줄 알라' '감사하라'. 이 두 가지는 홍 목사 목회 인생의 틀이 됐다고 했다. "자녀에겐 부모의 삶이 본이 된다는 점을 깨닫고 성경적 관점에서 인생살이를 제대로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1996년 새세대엄마학교(현 아동기부모학교)로 시작한 '생활훈련학교'는 점차 범위를 넓혀 현재의 12개까지 늘었다. 연령으로 보면 12개 학교의 시작은 '결혼예비학교'. 결혼을 앞둔 성인을 첫 대상으로 한 것은 성경 창세기가 아담과 하와(이브)로 시작하는 점에 착안했다. 이후 신혼생활, 아기를 갖고 낳고 키우고 독립시키는 과정을 거쳐 아버지와 어머니가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노년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이어지도록 프로그램을 짰다. 학교별 6~10주 과정으로 평일에는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학교, 예비부부는 토요일, 남성을 위한 학교는 일요일에 배치했다. 교수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강의하고 내용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이웃 교회에서도 수강생이 몰렸다. 학교 관계자는 "매년 12개 학교에서 평균 1000명 정도 수강한다"고 했다.

최근 홍 목사는 생활훈련학교 총괄 디렉터 박남숙 박사와 함께 이 학교들 이야기를 적은 책 '인생 12개 학교'(북클라우드)를 펴냈다. 책에는 성경에서 꼽아낸 다양한 예화를 통해 인생 공부를 돕는다. 가령 '자녀 떠나보내기' 대목에선 결혼을 위해 부모·형제를 떠나는 야곱의 일화를 꺼낸다. "야곱이 이처럼 역경 가운데서도 결혼과 직업적 성공이라는 인생의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라는 신앙의 힘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노년의 삶에서도 야곱이 등장한다. 아들 요셉을 따라 이집트로 이주한 야곱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노인이다. 그러나 당당하다. '속여서라도 빼앗고, 움켜쥐고, 쟁취하는 사람'이었던 야곱은 '잃음'을 통해서 인격적 성숙과 영적 성장을 이뤘다는 게 책의 설명이다.

'생활훈련학교'는 지금까지 남서울은혜교회 부목사 출신 목회자가 개척한 20여개 '형제교회'를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전수했지만 앞으로는 개신교계 전체로 개방할 계획도 있다. '인생 12개 학교' 발간은 그 신호탄이다. 최근엔 230개 교회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홍 목사가 특강도 했다. 박남숙 박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When), 어떻게(How) 적용하느냐도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인생 단계를 12개로 나눴다"며 "이번 책이 총론 격이라면 앞으론 학교별로 구체적인 매뉴얼을 담은 각론을 펴낼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