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14일 청문회에서 세월호 침몰 당일(2014년 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추궁했다. 정치권은 대통령이 사고 보고를 처음 접한 오전 10시부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찾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오후 5시 15분까지를 '대통령의 7시간'으로 명명하고 "그사이 뭘 했는지 밝히라"고 해왔다. '7시간' 관련해서는 '굿판설' '연애설' '미용 시술설' 등 온갖 의혹이 제기돼 왔다. 이날 청문회를 통해 밝혀진 7시간을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공백, 10:30~12:00
오전 10시, 김장수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박 대통령에게 세월호 침몰 상황을 서면으로 처음 보고했다. 김 전 실장은 "대통령이 어디 계신지 몰라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에 각각 1부씩 보고서를 보냈다"고 했다.
오전 10시 15분, 박 대통령은 김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고, 10시 22분 다시 유선으로 김 전 실장에게 "샅샅이 뒤져서 철저히 구조하라"고 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10시 30분 김석균 당시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전 청장은 "사고 지역에 가기 위해 헬기장으로 이동하던 차 안에서 전화를 받았다"며 "대통령이 '특공대를 동원해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조를 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 공백, 13:00~14:50
청문회에서는 이후 오후 2시 50분까지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해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없다. 하지만 당시 박 대통령의 식사를 담당했던 청와대 전 조리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점심 식사 1인분이 12시에 관저로 들어갔고, 대통령 혼자 한 시간 동안 다 비웠다"고 했다.
또 김 전 실장은 이날 청문회에서 "오후 2시 50분쯤 대통령에게 유선으로 '구조자를 잘못 집계했다'고 보고했다"며 "대통령이 다시 2시 57분에 전화를 걸어와 왜 구조자 통계가 잘못됐는지를 질책했다"고 했다. 김 전 실장은 두 번째 통화에서 대통령에게 "대통령이 중대본을 직접 방문해 보고를 받는 게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이날 대통령과 6~7회 정도 전화 통화를 주고받았는데, 이 통화가 마지막이었다"고도 했다. 이를 종합하면 오후 1시부터 2시 50분까지 공백이 있는 셈이다. 다만 청와대는 지난달 19일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한 '이것이 팩트다'라는 글에서 "대통령이 안보실장과 오후 1시 13분, 2시 11분 통화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세 번째 공백, 14:57~17:15
김 전 실장과의 마지막 통화 이후 박 대통령이 중대본에 모습을 드러낸 5시 15분까지 대통령의 일정에는 약 2시간 15분 공백이 있다. 이날 청문회에서도 드러난 바 없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관저에서 중대본까지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다. 준비, 경호 등을 감안하더라도 3시 30분에는 도착했어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때 박 대통령이 '올림머리'를 하느라 90분간 시간을 허비했다고 주장하지만, 청와대는 "머리 손질을 한 시간은 20분에 불과하다"고 했다. 기록상으로는 전속 미용사가 청와대 관저에 들어온 시간은 오후 3시 22분, 나간 시간은 오후 4시 37분이다. 김 전 실장은 "대통령이 머리 손질 때문에 중대본에 늦게 가셨다고 생각하기가 싫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며 "중대본 입장에서도 대통령이 도착하기 전 여러 준비를 마쳤어야 한다. 보고 준비도 마쳐야 하고, 오시면 어떻게 모셔야 되나 쉽지 않은 절차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이날 유선 보고 외에 '7시간' 동안 구조 상황과 관련해 10차례 서면 보고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보고서를 직접 봤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김 전 실장은 "관저의 경우 안봉근 전 비서관이 (보고서) 수령자"라며 "박 대통령이 보고서를 직접 수령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