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이후 열린 10일 촛불 시위는 축제처럼 진행됐다고 한다. 폭죽까지 터졌다. 그러나 지금 나라가 처한 경제·외교·안보 상황은 우리 사회가 자축만 하고 있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위기다. 국제사회는 평화로운 시위의 힘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한국 사회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지를 주목하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는 "(탄핵으로 인한) 대통령 임기 종료는 결코 축하할 만한 일은 아니다"라며 "아직 가야 할 길이 있다"고 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탄핵안 가결로 한반도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12년 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던 때와는 경제·외교·안보 여건 자체가 다르다. 당시엔 대외 경제 여건부터가 지금과는 판이했다. 이웃 중국 경제가 연간 10%씩 커지던 호(好)시절이었다. 수출이 탄탄하게 성장 동력이 돼주었다. 지금 한국 경제는 IMF 외환 위기 이후 20년 만에 가장 심각한 복합 위기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세계 경제의 역동성은 뚝 떨어졌다. 각국의 정치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면서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이 거세다. 한국을 먹여 살리던 수출은 연일 내리막길이다. 수출 연간 5000억달러 초과 기록도 6년 만에 무너졌다.
그렇다고 내수가 경기를 떠받칠 힘도 없다. 경제성장은 2%대로 굳어지고 있다. 12년 전과 달리 이번 탄핵 정국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연루돼 있다. 검찰 조사, 청문회에 이어 특검도 기다리고 있다. 대기업들이 내년도 경영 계획을 수립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한다. 기업의 투자 심리가 얼어붙었다. 가계부채는 사상 최대 규모인 1300조원까지 불어나 있다. 정부가 메스를 든 해운·조선업 구조조정은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빈사 상태로 가고 있다. 저금리로 겨우 버티던 국내 한계 기업들은 금리가 오르면 당장 부도 위기를 맞는다.
우리 경제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답을 훤히 알면서도 국회에 막혀 아무것도 못한 지는 이미 오래다. 이번 국정 공백 와중에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임종룡 경제부총리 내정자가 어정쩡하게 양립하는 상황도 한 달이 넘었다. 12년 전 탄핵 때 이런 불안정한 경제 운용은 없었다.
외교·안보 상황도 2004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당시는 북한이 아직 핵실험을 하기 전이었다. 북이 핵실험을 다섯 번이나 하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까지 시험하는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상황이었다. 미국의 대한(對韓) 방위 공약을 의심하는 분위기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상벨이 울리지 않는 부문이 없을 지경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등장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은 예측 불허다. 트럼프가 대만 총통과 전화 한 통화 했을 뿐인데, 미·중 관계는 벌써부터 경색되고 있다. 주한 미8군 사령관은 조만간 북한이 도발할 것으로 예측했다.
한반도 밖에서는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 한·일 위안부 합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등 기존의 정책이 지속될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탄핵안 통과 직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이 이례적으로 우리 측에 정책의 일관성과 연속성을 주문한 것은 이런 불안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안보 상황이 불투명한데 내년 상반기까지 6개월 이상 정상 외교가 완전히 단절되는 것도 큰 문제다.
지난 두 달여간 박 대통령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 우리나라 최우선 과제였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탄핵안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간 이제부터는 벼랑 끝의 경제·외교·안보가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되돌아와야 한다. 하루빨리 나라 전체를 안정시켜야 한다. 하위 10%의 소득이 16%나 격감했다. 무서운 숫자다. 앞으로도 나라가 계속 정치 바람으로 지새우면 이 무서운 숫자들이 불어날 수밖에 없다. 모두가 두려워해야 한다.
가장 먼저 경제 컨트롤 타워부터 명확하게 세워야 한다. 기업이 처한 불확실성도 어떤 방향으로든 빨리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서 일단 경제의 대외 신인도 추락을 막는 것이 급선무다. 야당은 허약한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를 과도하게 압박하고 흔드는 행태를 삼가야 한다. 박근혜 정부 정책을 다 뒤집고 싶다면 대선에서 공약으로 국민 뜻을 물어보면 된다. 그 전까지는 외교·안보 정책 기조가 경솔하게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알릴 필요가 있다. 비상 시기에 정부, 여야, 국민 모두의 자중(自重)과 인내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