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소추안 표결을 사흘 앞둔 6일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를 만나 밝힌 심경은 '국회가 탄핵을 추진해 가결하면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때까지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표결 참여 방침을 정한 새누리당 비박계를 향해 '탄핵 찬성을 재고(再考)해달라'고 호소하면서, 동시에 탄핵이 이뤄지면 '탄핵 후 즉각 퇴진'을 주장하는 야권 일부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탄핵 가결 이후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정치권을 향해 마지막 메시지를 던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새누리당 이정현(왼쪽) 대표와 정진석(오른쪽) 원내대표가 6일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뒤 국회로 돌아와 의원 총회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野 "엄동설한 촛불에도… 대통령은 조금도 변함없어"]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 30분부터 55분간 청와대에서 이 대표, 정 원내대표를 면담했다. 이날 회동은 박 대통령이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을 맞아 나라를 위해 어떤 방안이 좋은가 얘기를 듣고 싶다"고 먼저 요청해 이뤄졌다. 박 대통령은 "(정국 수습을 위해) 여야 영수 회담을 수용하는 등 야당과 대화하려 했는데 이뤄지지 않았고, 국회의장을 만나 국회 총리 추천을 제안했지만 야당이 거부했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화 제안도 수용했는데 무산됐다"면서 "이도 저도 안 돼 국정 위기를 풀어볼 마음에 국회 결정대로 법과 절차에 따라 정권을 이양하고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담은 담화를 발표했다"고 했다. 이어 "그러던 중에 새누리당에서 '4월 퇴진, 6월 조기 대선'을 당론으로 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국을 안정적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당론을 그대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이날 언급한 당론은 지난 1일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탄핵 대신 '4월 자진 퇴진'을 우선 추진하기로 한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 당론은 비박계가 주축이 된 비상시국회의가 지난 4일 '조건 없는 탄핵 표결 참여'로 선회하면서 사실상 폐기됐다.

박 대통령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듯 "탄핵 표결 절차가 예정대로 진행되면 가결되더라도 헌재의 (탄핵 심사) 과정을 보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갈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탄핵이 가결되면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면서 "당에서도 이런 입장을 생각해 협조해주기 바란다"고도 했다. 여당 의원들이 '탄핵 열차'를 멈추고 대신 자진 퇴진을 우선 추진해주길 바라지만 탄핵안이 가결되면 헌재의 탄핵안 심사 과정에서 적극 변론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친박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이 당의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미뤄 탄핵안이 가결되더라도 탈당하지 않겠다는 뜻과 함께 당이 분열하지 않도록 노력해달라는 뜻을 내비친 것"이라며 "만약 탄핵이 가결되면 법 절차에 따를 뿐 중도 사임은 없다는 게 대통령 생각"이라고 했다.

이에 정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탄핵 표결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당의 처지를 전했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회동 뒤 소집된 당 의원총회에서 "현실적으로 '4월 사퇴, 6월 대선' 당론이 유지되기 어려운 국면이란 점, 또 9일 탄핵 표결에는 헌법이 정한 절차대로 자유의사에 따라 표결에 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대통령께 말씀드렸고 대통령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다만 이정현 대표는 의총에서 "대통령은 의원들이 탄핵으로 가는 것보다 (자진) 사임 쪽을 받아주기 바라는 심정을 전달한 것 같았다"고 했다.

친박계는 박 대통령이 이날 퇴진 시점을 구체화한 입장 표명을 내놓음에 따라 표결 당일까지 탄핵 찬성파 비박 의원들을 설득할 계획이다. 홍문종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우리 당이 뽑은 대통령이 퇴진 시점까지 명확히 못 박고 나온 마당에 '굳이 탄핵까지 해야 하느냐'고 흔들리는 비박 의원들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며 "표결 당일까지 찬성파 의원들이 돌아서도록 설득할 것"이라고 했다.

일부 친박 중진 의원은 이날 의총에서 "새누리당 3선 이상 대부분은 한 번쯤은 대통령을 팔아 당선되지 않았나" "(탄핵을 할 거면) 의원직을 사퇴해 함께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박 대통령은 법리적으로 무죄임을 확신한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