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의 현장 검토본이 공개된 이후 학계에서는 건국 시점과 박정희 정권의 미화 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방침을 발표한 뒤 많은 논쟁이 있어 왔다. 정부와 여당은 기존 민간 출판 검정 교과서들의 오류와 이념적 편향성을 바로잡고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해 국정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사학계와 야권은 정부가 개입할 경우 정권에 따라 오히려 왜곡될 여지가 많으며 다양성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맞섰다.

1년여간 국정화 작업을 거쳤지만, 국정교과서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주요 인물인 차은택씨의 외삼촌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주도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최순실 교과서'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교육부는 국정교과서를 만들되, 국정교과서와 출판사들이 만든 검정 교과서들 가운데 학교에서 선택하도록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사실상 '단일 역사 교과서'는 물건너갔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국정교과서, 어떻게 진행돼 왔나

공개된 국정교과서에 대한 논쟁들

국정교과서에는 대한민국 건국 시기와 관련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수정했다. 북한에 대해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이라는 표현을 국가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북한 정권 수립'으로 바로잡기도 했다. 대한민국이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명확히 한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됐다'는 표현이 보수 학계인 뉴라이트의 '건국절' 개념을 수용하는 개념이라는 비판을 제기했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한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관계자는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일로 명기하는 등 친일 및 독재 미화 등이 반영된 국정교과서는 수용할 수 없다"고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3·1운동을 비롯한 우리 민족의 독립과 건국을 위한 모든 노력이 광복을 거쳐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구성됨으로써 완성됐음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현행 검정 교과서는 '좌편향' 비판을 받아 왔다.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으로 표현했는데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으로 표현하는 등 정통성이 남한 아닌 북한에 있는 것으로 오해하도록 서술한 교과서도 있었다. 북한의 군사 도발을 축소하거나 아예 누락하는 경우도 있다. 천재, 비상, 리베르 교과서는 천안함 피격 사건을 다루지 않았고, 미래엔 교과서는 도발 주체를 알 수 없게 '천안함 침몰'이라고 표현했다. 또 다수 교과서가 북한의 군사 도발에 대해 1~4줄로 짧게 서술하는 데 그쳤다. ▶ 기사 더보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의 단초가 된 것은 2013년 '교학사 교과서 파동'이었다. 좌편향 교과서들이 분점하고 있던 한국사 교과서 시장에 우파 교과서인 교학사 교과서가 진입하자 거센 저항이 벌어져 국사 교육의 심각한 실상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교학사 교과서 역시 편향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 기사 더보기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국정교과서 내용과 함께 공개된 집필진은 총 31명이다. 고등 한국사 교과서에 27명,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31명이 각각 집필에 참여했다. 당초 46명으로 알려진 인원의 3분의 2 수준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시대의 특성, 분야 등을 고려해 중학교, 고등학교를 구별하지 않고 집필진이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공통적으로 집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근·현대사 집필진의 보수적인 이념 편향 탓에 논란이 일고 있다. 근·현대사 집필진 11명 중 4명이 뉴라이트 계열로 알려진 '한국현대사학회' 소속이다.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나종남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 이민원 동아역사연구소장, 김권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등이다.

현대사 집필진에 정통역사학자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점도 지적을 받고 있다. 6명의 집필진 모두가 법학, 정치학, 경제학, 군사사학 등을 전공했다.

[공개된 국정교과서… 1948년 건국 등 이념 논쟁에 불씨 지펴]

이승만·박정희 정권에 대해 기존 검정 교과서들이 약 2~5쪽 분량으로 다룬 반면 국정교과서에선 6~9쪽에 걸쳐 공과에 대한 서술을 모두 늘렸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선 6쪽에 걸쳐 일제강점기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을 한 인물이라고 쓰면서 대통령 당선 후엔 "독재로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했다"고 썼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선 9쪽을 할애해 경제 고도성장, 새마을운동 전개 등을 설명했지만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독재를 했고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다"는 점도 적시했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모두 기여한 게 많지만 말년엔 독재를 했다고 분명히 명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승만, 박정희 정부의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했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실제로 '한미 상호 방위 조약 체결'이나 '대한민국 수립 초기 의무교육과 문맹퇴치 노력' 등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은 이전보다 강조됐다.

박정희 정부의 5·16 군사 정변 관련 내용도 논란이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 '5·16 군사 정변'에서 쿠데타 주도 세력이 내세운 혁명 공약은 본문 해설과 거의 같은 분량으로 노출할 만큼 비중이 크게 표현됐다.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한다',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한다'는 등 미사여구로 포장된 혁명 공약이 청소년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비판이다.

도종환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 더불어민주당 간사를 포함한 교문위 야당 의원들은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공개 후 국회 정론관에서 회견을 열어 집필진의 역사관 편향 문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도 의원은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는 박정희 치적을 강조하는 ‘박근혜 교과서'이며 대한민국의 임시정부 역사와 항일독립운동사를 축소한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였다"고 했다.

480여개 역사교육단체가 연합한 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 출범 이후를 다루는 제목이 ‘냉전 시기 권위주의 정치 체제와 경제·사회 발전'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위기가 박정희 정권에 의해 극복됐다는 뜻으로 읽힌다. 박정희 정권 독재에 면죄부를 주려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기존 교과서에 자주 등장한 쿠데타 이후 박정희 소장이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찍은 사진이 빠진 것도 "부정적인 박정희의 이미지를 순화하려는 의도"라고 덧붙였다.

역사 교사들이 본 국정교과서

35년 경력의 서울 지역의 이모 역사 교사는 "박정희도 독재로 기술했고 이승만 대통령의 3·15 부정선거, 반민특위의 미흡한 점에 대해서도 서술해 공과가 비교적 골고루 실렸다"고 평했다.

그는 이어 "이승만이 임시정부 시절 미국에서 독립운동한 것도 당연히 교과서에 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잘한 것, 잘못한 것 다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국정교과서에 근현대사 분량이 너무 많아서 강화도조약 이후의 근현대사 비중이 절반"이라며 "앞으로 근현대사 부분을 줄였으면 한다"고 밝혔다.

다른 서울 지역 고교 역사 교사는 "국정 교과서가 다른 검정 교과서들의 좌편향 문제에서 벗어난 것은 사실"이라며 "이 책 하나만 쓰라고 하는 것은 안 되지만, 여러 교과서 중에 하나로 놓고 교사들이 선택하게 하면 괜찮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 학원 강사가 29일 현행 검정교과서와 전자책(e-Book) 형태로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의 차이점을 비교해보고 있다. 교육부는 전날인 28일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을 공개하고, 다음 달 23일까지 4주간 국민 의견을 접수한다.

또 교과서 자체의 질(質)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내용을 담으려다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북한에 대한 서술이 균형을 잃고 너무 호전적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김영식 고양 덕양중 교사는 "북한이 우리의 주적인 것은 맞지만 한편으론 앞으로 평화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특수한 관계인데, 새 교과서는 북한을 오로지 배척해야 할 대상으로만 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또 "박정희보다 이승만의 과(過)를 특히 강조한 것도 현 정권이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좌편향 벗어났지만… 단일 국정 교과서엔 거부감"]

명백한 오류 18건은 수정, '박정희 미화' 주장엔 반박

교육부는 국정 역사 교과서 현장검토본을 공개한 이후 '올바른 역사 교과서' 사이트에 의견을 접수했다. 12월 2일까지 접수된 의견은 984건, 교육부는 이 중 18건은 명백한 오류로 드러났다며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논리 비약이나 사실 왜곡인 지적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교과서에 대해 가장 많은 지적 가운데 하나는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한 의견이었다. 국정교과서 공개 웹사이트에 접수된 의견 984건 중 413건(42%)이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표현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표현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대한민국 수립에 대한 표현은 학술적으로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 국민 여론과 상식에 맞는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용어를 쓴 것"이라면서도 "오는 12일 학술 토론회를 열어 학문적으로 정리가 되고, 국민들도 공감하는 내용이라면 수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지적받은 내용 중에서 ▲교과서 완성도가 떨어지고 유관순 관련 서술이 평면적이라는 점 ▲5·16을 군사정변으로 표현하며 이에 대한 평가를 서술하지 않은 점 ▲평화의 소녀상 사진이 누락됐다는 점 등을 '검토 필요' 사항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박정희 독재 미화나 일본군위안부 서술 축소 등에 대해서는 "사실 왜곡"이라거나 "논리 비약"이라고 맞섰다. 일본군위안부는 오히려 기존 검정 교과서보다 더 풍부하게 서술했다고 교육부는 밝혔다. 위안부에 대해 총 40줄 넘게 설명했고, 기존 검정 교과서 일부는 소개하지 않은 고노 담화나 국제사회 결의, 위안부 할머니의 공개 증언까지 서술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또 제주 4·3 사건이나 안익태 선생에 대한 설명이 축소·왜곡됐다는 주장에 대해 기존 검정 교과서와 비슷하게 서술된 것으로, 지적이 타당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특히 박정희 시대를 미화했다는 지적은 "공과 과를 다 서술했기 때문에 사실을 왜곡하는 지적"이라고 밝혔다. ▶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