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당부

채송화 피면 채송화만큼
작은 키로 살자.
실바람 불면 실바람만큼
서로에게 불어가자.
새벽이면 서로의 잎새에
안개이슬로 맺히자.
물보다 낮게 허리 굽히고
고개 숙이면서 흘러가자
작아지므로 커지는 것을
꿈꾸지도 않고
낮아지므로 높아지는 것을
원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김왕노(1957~ )

벌써 올해의 마지막 달을 살고 있다. 한 해가 시작될 때 소원했던 일의 목록을 살펴본다. 잘된 일도 있고, 그렇게 되지 못한 일도 있다. "고요히 앉아 있는 곳에서는 차를 반쯤 우려냈을 때의 첫 향기 같고, 오묘하게 움직일 때는 물 흐르고 꽃 피듯이 하네"라는 말씀을 따라 살고자 했으나 미치지 못한 때가 많았다.

이 시에서 당부하고 있는 것처럼 채송화의 낮은 키만큼만 바라고, 실바람처럼 부드럽게 다가가고, 안개이슬처럼 맑고 투명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아주 억세지 않게, 공손하게, 누구를 앞서겠다는 생각을 반절 접고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