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의 한 가정집 외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는 태풍이 오던 날, 집에 돌아가기 막막해진 아들 내외를 자신의 연립주택에 하룻밤 재우는 할머니의 이야기다. 그녀와 아들 료타는 오래된 연립주택 베란다에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소식을 듣던 날,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마시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를 보고 있었다. 잠시 침실의 불을 끄고 10분간 할머니를 위해 기도했다. '할머니는 우주의 별이 되셨을 거야' 라고 멋대로 생각했다. 3년 넘게 힘든 연명 치료를 받았던 할머니가 이젠 아프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꼭 슬프지만은 않았다. 손에 쥔 머그컵에선 여전히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외가 쪽 가족들이 장례식장에 전부 모였다. 20년 넘게 보지 못한 조카도 있었다. 아홉 살 아이가 갑자기 서른몇 살의 어른이 되는 영화 속을 천천히 걷는 느낌이 들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연출한 가족극 속에 내가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영정 사진 속 외할머니는 성격대로 꼿꼿하게 무표정했다. 웃으면 더 좋았을 텐데. 뜨거운 육개장을 먹으며 옆에 있던 동생에게 말했다. "난 죽으면 웃는 영정 사진으로 해줘." 동생이 말했다. "바보! 우리 겨우 한 살 차이야.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다고." 그 말을 하면서 동생이 쓸쓸하게 웃다가 울었다.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는 태풍이 몰려오던 날, 집에 돌아갈 길이 막막해진 이혼한 아들 내외를 자신의 낡은 연립주택에 붙잡아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할머니의 이야기다. 이렇게 말하니 할머니가 주인공인 것 같지만, 주인공은 그녀의 아들 료타다. 15년 전, 료타는 '사람 없는 식탁'이라는 소설을 써서 문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소설 취재라는 명분하에 흥신소 탐정으로 일하고 있다. 애써 번 돈을 경륜으로 날려버리는 도박 중독자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게다가 이 남자는 아들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이혼한 아내를 틈틈이 관찰하며 아내의 '미래'까지 질투하는 중이다. 덕분에 흥신소 사장에게 "이제 아들은 그만 만나.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가 있어야, 남자는 어른이 되는 거야!"라는 충고나 듣는 한심한 전직 남편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런 남자의 아들 싱고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40년 넘게 도쿄 기요세역 근처의 연립주택 단지에 사는 할머니. 아들이 멍청한 거짓말을 해도 속아주고, 반찬이 떨어질 때만 오는 딸이라도 그리워하는 그런 따뜻한 할머니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녀는 아버지의 유품이라도 챙겨갈 욕심에 집을 찾은 아들에게 "넌 거짓말하면 티가 나!"라든가 "아버지 유품이라면 벌써 다 버렸다!"고 말하는 엄마이기도 하다. 50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어떻게 아버지 물건을 다 버릴 수 있느냐는 아들의 말에 50년이나 같이 살았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하는 엄마 말이다. 평생 집안의 돈 될 만한 물건은 모조리 팔아치우던 악성 남편과 살았던 그녀에게 행복이란 뭔가 포기하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영화가 막 시작됐을 때, 나는 오랜만에 집에 들른 료타와 엄마가 부엌에 앉아 숟가락을 긁어대며 작은 컵에 딱딱하게 얼린 쿨피스 하드를 파먹는 장면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 어쩐지 내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였다. 중년이 된 아들과 할머니가 된 엄마는 태풍 소식을 듣던 날, 오래된 연립주택 베란다에 서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너, 이 귤나무 기억나니?

내가 초등학교 때 심은 거잖아.

열매도 안 맺고, 꽃도 안 피지만 너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물 주고 있어.

말 참 예쁘게도 하네!

그래도 애벌레가 이 잎을 먹고 나비가 되었어! 꼬물꼬물하더니 파란 문양 나비가 되었지. 나중에 내가 사진 보여줄게.

안 봐도 괜찮아!

어쨌든 남에게 이 나무도 도움이 됐지.

나도 세상에 도움은 되고 있어!

태풍 온다니까 이 화분들 좀 벽 쪽으로 다 옮겨줘.

료타는 화분 옮기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라고 말하지만, 바로 엄마의 화분을 깨고 만다. 긁는 족족 '꽝'이 찍힌 복권 같은 인생인 것이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감독의 전작 '걸어도 걸어도' 같은 영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심지어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마저 아베 히로시와 기키 기린으로 같다('료타'란 이름도 동일하다). 그런 이유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마치 홍상수의 어떤 영화들처럼 주인공과 스토리가 뒤죽박죽 섞여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줄의 카피로도 요약 가능한 이 영화의 주제는 명확하다. 누구나 원하는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말 그렇다.

미래의 꿈이 공무원인 료타의 아들은 홈런을 노리기보다 파울을 노리며 출루를 희망한다. 열심히 하면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도 있지 않으냐는 아빠의 말에 '그렇게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안다'고 말하는 아이는 엄마의 새 애인 앞에서도 자기감정을 내색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조숙하다. 그런 아이와 태풍이 오던 날 료타는 죽은 아버지와 했던 놀이를 함께한다. 동네 놀이터 미끄럼틀 아래에 앉아, 태풍 소리를 들으며 아들과 과자를 먹는 것 말이다.

'초밥의 날'까지 만들어 어떻게든 부부의 재결합을 원했던 할머니가 체념하듯 '전 며느리'를 바라보며 하는 말은 "어떻게 안 되겠지?"다. 며느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젊다는 건 아직은 '돌이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가 아닐까. 거꾸로 말해, 나이가 든다는 건 어쩌면 절대로 돌이켜지지 않는 게 있다는 걸 알아버리는 서글픈 일은 아닐까. 활짝 핀 꽃이 그토록 아름다운 건 그것이 너무 빨리 시들기 때문임을 아는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은 분명 다를 것이다.

이 영화를 보던 밤, 혼자 부엌에 나가 카레를 만들었다. 영화 속 할머니가 흩어진 가족을 위해 만드는 카레 국수가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감자를 깎으며 몇 년 동안 유동식만 먹었던 할머니와 나눠 먹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를 보고 나선 옥수수튀김을 해 먹었다. 기름 위로 옥수수 알갱이가 떠오를 때 나는 소리를 직접 들어보고 싶어서였다. '아무도 모른다'를 보고 나선 편의점에 들러 주먹밥과 샌드위치를 잔뜩 사 들고 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보면 나는 늘 뭔가 만들거나 사게 된다. 결국 카레가 부족해 편의점까지 가야 했다. 집으로 가는 길, 올려다본 하늘에는 별이 보였다. 별을 보며 "할머니!" 하고 불러봤다. "거긴 좋아요?"라고 물어봤다. 나지막한 입김이 퉁퉁 불은 국수 가락처럼 자꾸 하얗게 밀려 올라왔다. 자꾸자꾸만….

●태풍이 지나가고―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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