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국민이 준 권력을 '대리'해서 행사하는 자리 아닌가요. 그런데 지금은 누군가의 '대리 대통령'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대학강사를 하다가 그만둔 뒤 직접 대리기사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대리사회’를 쓴 김민섭씨가 자동차 앞에서 웃고 있다.

김민섭(33)씨에게 '대리기사'는 하나의 은유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 대학에서 근대문학을 가르쳤던 강사였던 그는 요즘 카카오 대리기사로 일하고 있다. 매일 밤 취객의 전화를 받고 뛰어다닌 경험과 그 과정에서 느낀 것들을 모아 '대리사회'(와이즈베리)를 펴냈다. 그는 "육아, 교육, 직업, 소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모두 '타인의 운전석'에 앉아 있는 대리기사나 마찬가지"라며 "사회는 행위와 언어, 생각에 대한 통제를 바탕으로 개인들을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다. 책은 이 거대한 대리들의 사회에서 저자가 온전한 '나'로 존재하기 위해 분투한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시간강사의 처지를 생생하게 폭로·고발한 전작(前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출간 이후 강사를 그만뒀다. 박사학위 논문도 포기했다. 그는 "무려 8년 동안 재직증명서도 뗄 수 없고, 의료보험 가입 조건도 되지 않는 '타인의 시간'을 살았다"며 "내가 대리한 것은 나의 욕망이 아니었다"고 했다.

이제 그에겐 세상이 연구실이자 강의실이다. 이 부박한 세계에서 그는 "평생 글로만 먹고살겠다"고 선언했다. 자신의 플랫폼도 차근차근 만들어가고 있다. 대리운전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와 생각을 연재한 페이스북 페이지는 이미 1만9000명 이상 받아 보고 있다. 2014년 시간강사 시절에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은 조회 수가 140만건을 넘을 정도로 공감(共感)을 받기도 했다. 이번 책의 출간을 위한 스토리펀딩에선 1800만원 넘는 후원금까지 모였다. 다음 책에 대한 구상도 끝났다.

"거리에서 더 많은 것을 깨달아요. 연구실에 있으면 내가 앉아 있는 책상만큼의 크기로 세상이 줄어드는 반면, 거리로 나오자 '몸으로 쓰는' 언어가 만들어지더라고요."

육체노동은 그에게 항상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몇 년 전 아들이 태어난 직후, 맥도날드에서 일주일 세 번씩 냉동·냉장·건자재 박스 150여 개를 내리고 올리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월 60시간의 노동시간을 채우자, 대학이 주지 않던 '4대보험'을 그곳에선 보장해줬다. 고된 노동의 경험을 통해 '이 세상 사람 모두가 존중할 만한 각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음'도 깨닫게 된다. 그는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 사람을 더 위하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라고 했다.

한 손님으로부터 "선생님 차라고 생각하고 편안히 운전해 주십시오"라는 말을 들은 것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그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대리운전석이라는 공간의 성격이 바뀌었다"며 "주체적으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야 나올 수 있는 배려야말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반면, 대부분의 사람은 대리운전기사 옆에 앉아 반말 등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려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조차 실제로는 누군가의 대리일 뿐이다. 그는 "앞으로 어디 속하느냐와 관계없이 나는 '경계인'으로서 살 것"이라며 "경계인에게만 보이는 세상의 균열에 대해 끊임없이 글을 써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