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뉴스를 보면서 든 궁금증. 승마나 펜싱, 하키 등 소위 ‘귀족 스포츠’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 배우고 있으며, 실제로 배우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 과연 얼마나 배워야 국가대표 수준의 실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일까? 체육특기자가 아니라도 배울 수 있을까? 실태를 알아봤다.
온 나라가 떠들썩한 국정농단 사건 관련 뉴스 속에는 승마를 비롯한 펜싱, 아이스하키 등 스포츠 종목이 등장한다. 이들 스포츠는 귀족 스포츠, 혹은 고급 스포츠로 불리면서 대중적으로 보편화되지는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깊게 발을 담가 문제가 된 승마만 봐도 그렇다. 입이 쩍 벌어지는 교육비에 초호화 훈련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감히’ 아무나 배울 수 없을 것 같다. 훈련을 위해 몇억씩 하는 말을 사야 하고,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또 몇억짜리 말을 추가로 사야 하며, 국내가 아닌 지구 반대편 독일까지 원정을 가서 훈련을 해야 하는 데다 대회에서 메달이라도 하나 받으려면 기부금을 쏟아부어야 할 것 같다.
연관 뉴스를 보니 펜싱, 아이스하키 등 각종 동계올림픽 종목도 사정은 비슷한 것 같다. 비용이 만만치 않은 골프가 서민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올림픽 정식종목이기도 한 이들 스포츠는 왜 이렇게 높은 비용을 들여야 하고, 왜 아무나 배울 수 없게 된 것일까? 부자가 아니면 이런 스포츠는 해볼 수 없을까? 정말로 서민에게는 꿈조차 꾸지 못할 스포츠일까?
취재 결과 이들 귀족 스포츠를 배우기 위한 연간 비용이 최소 수천만원에 달해 아무나 할 수 없는 스포츠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수업료는 차이가 있지만 1시간에 10만원 선이 많다. 주 2회 정도 1~2년 레슨을 받으면 메달을 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갖출 수 있다고 한다. 수업료뿐 아니라 기타 부수적인 비용을 생각하면 결코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든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들 스포츠는 최근 몇 년 사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이미 트렌드로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숫자는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이유는 간단하고 명쾌하다. 해외 명문대 진학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비리그 등의 명문대는 스포츠가 필수 입학조건이다. 아무리 학업 성적이 좋아도 스포츠 특기가 하나는 있어야 한다.
포트폴리오를 제출할 때 각종 대회에 참가한 수상경력이 필수다. 메달이 있으면 가산점이 붙는다. 경쟁률이 높지 않은 종목일수록 수상의 확률이 높은 것은 당연한 이치. 당장 돈이 많이 들어도 멀리 내다보면 이득이 되는 것이 이들 스포츠가 가진 최고의 장점이다. 국제대회 입상경력은 해외 진학은 못 해도 국내 명문대 진학은 가능하다.
입시와 상관이 없는 부류도 물론 많다. 귀족의 스포츠라 불리는 만큼 고급문화 취향을 충족하기 위한 사람들이 찾는다. 상류층 매너를 익힐 수 있어서 교육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경우도 있다. 고급문화를 향유한다는 문화적인 우월감은 일종의 스펙이 되기도 한다. 배운 사람끼리 친화적인 그룹이 형성되고, 못 배운 그룹과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다. 특별하고 선택받았다는 생각은 스스로 우월하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부정적인 단면의 예다.
승마는 귀족 스포츠로 먼저 알려지면서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인식이 생겼다. 그래서 한국마사회는 이를 타파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그 결과 2012년 말산업진흥법 발효 등 정부의 말 산업 육성정책이 탄력을 받았고 그리하여 전국에 승마장 시설이 꾸준하게 증가하는 추세였다. 마사회에 따르면 전국의 승마시설 수는 지난해 기준 4백75개나 된다. 승마를 국민스포츠로 만들겠다는 계획으로 유소년 승마 활성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중적인 스포츠로서 저변이 점점 넓어지는 중이었는데 최근의 이슈로 오해를 받고 있어서 안타까운 부분이 크다고 한다. 때문에 각 지역의 문화공감센터를 활용해 인근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유소년 승마단을 창단하기로 했다. 국내 최초로 승마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유소년 승마지원 앱도 개발한 상태다.
마사회가 농림축산식품부의 후원으로 지난해부터 개최하고 있는 유소년 승마클럽 대항전 역시 유소년 승마 활성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마사회는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건전한 레저스포츠인 승마가 대중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런 노력 덕분에 승마는 부유층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승마 체험 인구는 지난해 83만4백6명으로 1년 전보다 6만 명 가까이 늘었다. 정기적으로 승마를 하는 사람은 4만2천9백74명으로 5.9% 증가했다.
뿐만 아니라 승마를 즐기는 인구의 연령대도 다양해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6~7월 승마장 이용객 3백5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승마장 이용 실태조사’를 보면, 40대가 1백16명으로 전체의 36%를 차지했고 20대 미만이 79명(22.3%), 50대 77명(21.7%), 30대 38명(10.7%), 20대 33명(9.3%), 60대 12명(3.4%) 순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승마를 즐기는 데 드는 비용은 시간당 4만원에서 10만원 정도다. 만만한 가격은 아니지만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시설도 늘어났다. 먼저 승마시설이 2012년 2백93개에서 2015년 4백57개로 증가했다. 주로 유소년 승마교육과 체험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곳이 많다. 매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는 각종 캠프가 열리기도 하며 다양한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다.
정부는 2017년까지 승마장을 5백 곳으로 늘리고 승용마 5만 마리, 승마 인구 10만 명으로 시장을 키울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건의 영향으로 진행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있어 추이를 지켜봐야 할 듯하다.
승마 못지않게 높은 비용으로 인해 진입장벽이 높은 종목들은 여럿 있다. 경제력이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생활체육처럼 비쳐지고 여가를 즐기는 문화로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진입장벽은 높은 펜싱, 요트, 골프 등이다.
지난 2015년 통계청이 조사한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2시간씩 주 2회를 기준으로 봤을 때 초등학생 1인당 월 예체능교육비 평균은 8만4천원이었다. 반면 펜싱 개인교습비용은 80만원, 골프 개인교습비용은 1백만원에서 3백만원이었다. 매달 수천만원이 들기도 하는 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는 대상이 한정적인 것은 당연하다.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지만 이들 스포츠의 교육 프레임 역시 승마와 같다. 해외 명문대 진입을 위해서, 경쟁률이 높지 않으니까, 고급문화를 즐긴다는 우월감이 좋아서 이들 스포츠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건전하게 여가생활을 즐기기 위해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박상영 선수가 리우올림픽 펜싱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이후 펜싱의 진입장벽은 조금 낮아졌다. 배우고 싶어 하는 인구도 늘어났고, 동호회도 많이 생겨난 상황이다. 남녀노소 체급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라서 대중적으로 즐기기에도 좋은 스포츠다.
익명을 요구한 펜싱 코치는 “요즘 사회 이슈가 되고 부자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어서 안타깝지만, 사실 알고 보면 모든 스포츠에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들어 있고 각 종목이 가진 고유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또 “몇몇 사람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스포츠 교육의 기둥이 흔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몸과 마음, 두뇌까지 단련할 수 있는 훌륭한 스포츠인 펜싱, 그리고 고유의 가치를 가진 타 종목을 단지 몇몇 부자들이 그릇된 방법으로 즐겼다고 해서 왜곡된 시선으로 보지 말았으면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