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하고 부패하며 진실을 은폐하는 권력에 분노한 수십만의 국민이 광장에 모여 대통령 하야와 탄핵을 요구하는 집회를 반복하고 있다. 분노로 집결한 대규모 집회에 따르기 쉬운 유혈충돌이나 과격한 행동도 없다. 집회 후에는 곧바로 일상의 질서를 회복한다. 놀랍고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광장과 거리의 요구는 다양하지만 공통된 것은 대통령 하야와 탄핵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쉽게 하야할 것 같지도 않고 탄핵도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설사 대통령이 하야하거나 탄핵으로 물러난다 하더라도 산적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게 나라냐'라는 광장의 구호가 특히 눈길을 끈다. 나라는 헌법으로 이루어진다. '이게 나라냐'라는 외침은 '이게 헌법이냐'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J M 뷰캐넌(Buchanan)은 '시장의 실패보다 더 무서운 것이 헌법의 실패'라고 했다. 정부의 실패를 가져오는 정치의 실패도 근본적인 원인은 헌법의 실패에 있다. 헌법은 국가 운영의 최고 나침반이고 국정 운영의 내비게이션이다. 우리 헌법은 1987년 개정 이래 30년 동안 손보지 않았다. 길은 바뀌는데 30년이나 업데이트하지 않은 내비게이션을 따라 자동차를 운전한다고 생각해보라. 국정 운영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미국 3대 대통령인 제퍼슨은 19년마다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독일이나 스위스는 거의 매년 헌법을 개정한다.
세월호 사건이나 메르스 사태와 같은 위기와 재난을 당하여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보이지 않는다. 권력을 중앙정부에 집중시키고, 그것도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시킨 헌법상의 권력 구조는 국가를 작동 불가능하게 만들고, 부패를 만연하게 하고, 비선 실세가 발호하게 했다.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고 치유해야 할 정치가 표몰이를 위한 대결 정치로 갈등을 증폭하고 있다. 경제는 추락하고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행복 지수는 지난해 세계 47위에서 올해 58위로 추락했다. 역시 헌법이 문제다. 정치 체제가 국민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1987년 이래 현행 헌법 체제에서 국민의 기대를 모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역대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초라하게 퇴장했고 국민은 좌절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절대 권력을 부여받은 대통령들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문제를 키워놓고 물러갔다. 현 대통령의 최대 과오는 국민과 정치권의 개헌 노력을 경제발전을 빙자해 위압적으로 억누른 데 있다. 헌법을 이대로 두면 차기 대통령도 역대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광장에 모여 외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국정 운영 시스템을 새로 짜는 헌법 개정으로 결실하지 못한다면 광장의 함성은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올 것이다. 광장민주주의는 국민의 불행을 치유하는 새로운 헌법을 탄생시키는 헌법 혁명의 물꼬를 터야 한다. 국회는 개헌특위를 구성해 국민과 더불어 개헌 과업을 조속히 완수해야 한다. 개정 헌법에 현 대통령의 임기 단축과 과도 내각에 관한 규정도 담는다면 당면한 헌정 혼란을 해결하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