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21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추진을 당론(黨論)으로 확정했다. 그러나 탄핵을 주도해야 할 제1야당 민주당은 "탄핵 시기 등은 당장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며 속도를 조절했고, 국민의당이 오히려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엇박자를 냈다. 두 야당은 탄핵의 시기, 방법, 전략 등에 대해서도 "검토하겠다"며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의원총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대통령 탄핵을 추진키로 했다. 하지만 추미애 대표는 이를 당론으로 추인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탄핵을 검토하는 시기에 국회 추천 총리 문제도 논의하겠다"고 했다. 방금 전에 탄핵 당론을 정해놓고 탄핵의 시기를 또 저울질해보겠다는 뜻이었다. 추 대표는 탄핵 문제를 논의해나갈 당 기구 이름도 '탄핵 추진 기구'가 아닌 '탄핵 추진 검토 기구'로 정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탄핵 의결정족수(의원 300명 중 200명 이상 찬성)를 만드는 게 어려워서 잠도 안 온다"며 "통과가 확실해야 탄핵안을 발의할 수 있다. 만약 부결되면 박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고 했다. 야당 내 이탈표까지 감안하면 여야를 아울러 230~240명의 찬성표는 확보해 놓아야 안심하고 탄핵 표결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야당 관계자들은 "정말 탄핵할 생각이 있으면 지도부가 나서서 비박계 등 새누리당 의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고 표를 끌어오는 게 정상 수순 아니냐"고 했다.

대구서 촛불 든 文 문재인 -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21일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 집회’에 참석해 시민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당은 대통령 퇴진 문제와 관련해 공식적으로 새누리당을 접촉한 적이 없다. 우 원내대표는 이런 비판을 의식해 "지도부가 의지가 없는 게 아니다"는 해명도 했다.

민주당이 탄핵의 구체적 계획과 전략을 내놓지 못하자 정치권에선 "국회 주도 탄핵 카드가 촛불 시위 같은 장외 퇴진 운동의 힘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민주당은 대규모 촛불 집회가 예정된 26일 이후에야 탄핵 절차 등에 대한 구체적 논의를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 관계자는 "민주당이 시민단체와 연대 문제 때문에 국회보다 광장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다른 야당들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시민사회와의 공조를 강조했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이날도 "대중적 압력과 당의 지혜가 맞아떨어질 때 탄핵을 논의할 수 있다"며 "범국민추진운동본부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민주당은 "새누리당 비박계 등 탄핵 동의 세력과 함께한다"고 밝혔지만 의원들에 대한 직접 설득보다는 장외 세력과의 공동 압박을 통한 탄핵 동참 유도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대통령 퇴진’ 거리 나선 安 - 안철수(맨 오른쪽) 국민의당 의원이 21일 서울 여의도역 부근에서 당원들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 퇴진 서명 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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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시민단체와 공조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탄핵 가결에 필요한 새누리당 비박계와의 접촉에 소극적인 배경에 대해 '제3지대'가 힘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사실 민주당이 비박계 이탈에 따라 제3지대가 커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탄핵을 계기로 여당 내 비박계의 원심력이 커지면 비슷한 성향인 국민의당과 손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민주당 한 의원은 "비박계가 움직이면 민주당 비문계도 움직일 수 있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것"이라며 "그렇게 친문이 고립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한 야당 관계자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 역풍을 맞았던 추미애 대표의 트라우마도 민주당의 탄핵과 관련된 스텝이 엉키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도 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당은 오히려 탄핵 추진에 더 적극적이다. 이날 의원총회에서는 "탄핵에 필요한 의원 200명 이상의 서명을 받기 위해 야 3당은 물론 새누리당 비박계와 소통하겠다"는 내용을 당론으로 정했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비박계와 대화를 해보니 탄핵 정족수는 확보됐다는 판단"이라고 했고, 안철수 의원은 "탄핵 문제에 있어서 국회는 더 이상 정치적 계산으로 좌고우면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국민의당 역시 탄핵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이날 제시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