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힙합은 이 남자에게 빚진 바 크다. 만화 '힙합'으로 힙합을 선도한 만화가. 만화만으로 토머스·윈드밀·에어트랙 같은 댄스 용어를 전국에 보급한 만화가. 그가 돌아왔다. 이번에도 힙합이다. "매달 웹툰 수백 편이 쏟아지죠. 거기서 살아남을 제 유일하고 가장 강력한 무기, 그게 힙합입니다." 데뷔 20년, 힙합 웹툰 '진조크루'로 컴백한 만화가 김수용(43)이 반드시 그렇게 만들겠다는 듯, 선언했다.
그와 만난 지난 14일, 김씨 옆에 훤칠한 청년 여덟 명이 서 있었다. 오를 진(進), 불사를 조( ). 2001년 창단해 세계 최초로 메이저 5개 대회를 석권한 힙합댄스팀 '진조크루' 멤버들이었다. "얘네 성장 스토리 자체가 그냥 만화예요. 서울 종로5가 연습실에서 한 달 10만원으로 버티면서 밤새 춤추던 녀석들이 세계 최고가 되는 거죠." 웹툰 '진조크루'는 17일 케이툰(myktoon.com)을 통해 1화가 공개됐다. 네티즌들은 "2016년 버전 '힙합'의 재탄생"이라며 환호하고 있다.
데뷔작은 '마징가Z'를 패러디한 코믹 만화 '나간다 우라팡'(1996). 만화가로서 체력을 검증하는 일종의 자체 테스트였다. 이듬해 '힙합'을 냈다. 열아홉 살 불량 학생의 힙합 입문기를 다룬 이 성장 만화는 7년간 연재됐고, 단행본 누적 판매량 200만부를 기록하며 만화계를 뒤흔들었다. 진조크루 리더 김헌준(31)씨는 "학창 시절 '힙합'을 교과서처럼 보면서 춤을 따라 췄다"며 "그 만화가의 모델이 돼 꿈만 같다"고 감격했다. 이후 '위킷' '부갈루' '스트리트잼' 등 힙합 만화를 잇따라 발표했다. "사극을 그려도 춤으로 흘러갈 거예요. 임진왜란 때 비보잉(B-boying)을 한다든지."
춤의 역사는 모전(母傳)이었다. "어머니가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서 무용학원을 하셨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매일 연습실 구석에서 춤 구경 하면서 만화를 그렸죠." 1985년, 소년은 TV에서 미국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 축하 공연을 보게 된다. "비보잉 팀 뉴욕시티브레이커스의 춤을 처음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스무 살부터 비보이의 성지 이태원 클럽 '문나이트'를 뻔질나게 출입했고, 1992년엔 아예 SBS 백댄서 팀에 들어가 1년간 뛰었다. "아마 밤무대 행사 뛰어본 만화가는 저밖에 없을걸요?"
지난해 한국힙합문화협회 공로상을 받는 등 힙합으로 일가를 이뤘지만 일신이 편치는 않았다. 수익은 갈수록 악화됐고, 지난해엔 3년간 공들여 낸 춤 만화 '젊음의 행진'마저 플랫폼 내부 갈등으로 빛을 못 봤다. "원고료 미지급 등 악재가 겹쳤고, 그해 11월 공황장애가 왔죠. 호흡곤란이 와서 응급실까지 갔어요. 요즘도 항우울제 먹으면서 만화 그립니다." 그러니 이번 웹툰은 역작일 수밖에 없다. 어시스턴트도 없이 100% 혼자 치러내는 첫 작업. "새 출발하는 마음으로 데생부터 마무리까지 혼자 다 하고 있다"고 했다. "자는 시간 빼곤 계속 그려요. 후배들에게 창피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뿐이에요." 힙합바지를 끌며 그가 작업실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