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교육 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얼마 전 외손자가 입원한 병원에 갔다가 어리둥절했다. 어느 방에 '탕비실'이라고 적혔는데 무슨 뜻인지 몰라서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봤다. 한자 사전에도 나오지 않았다. 사전에도 없는 말을 왜 굳이 썼을까. 인터넷 검색을 거듭해 겨우 '끓일 탕(湯)' '끓을 비(沸)'라는 것을 알았다. '물이나 차를 끓이는 방'이라는 뜻인데, 일본에서 쓰는 한자어라고 한다. '준비실'이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어려운 말을 쓰는 걸까. 굳이 쓰려면 한자를 병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우리 언어생활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 중에 어차피(於此彼), 별안간(瞥眼間), 금방(今方), 지금(只今), 시방(時方), 심지어(甚至於) 등은 고유어가 아니라 한자어이다.
공원에서 '기념식수'라고 쓰인 푯말을 보고 "이게 왜 식수(食水)야?"라고 묻는 초등학생 딸에게 식수(植樹·나무 심기)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본 적이 있다. 우리 언어 수준의 현실이고 한글 전용의 결과이다. 한글로만 표기해서는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 단어에는 한자를 병기해주자. 교과서에서도 한자 병기는 꼭 필요하다. 한자 실력은 물론 전반적인 우리말 실력도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