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20일 박근혜 대통령을 '최순실 게이트'의 피의자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법조계와 헌법학계, 정치권에서는 탄핵소추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검찰이 박 대통령의 실정법 위반 혐의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면서 탄핵 사유가 명확해졌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율사(律士)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탄핵이 선택적 절차가 아닌 필수적 절차가 돼버린 이 시점에서 국회가 탄핵을 논의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왔다.

헌법 제65조 제1항은 대통령의 탄핵소추 요건에 대해 '그 직무 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라고 규정하고 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대통령에 대한 대면 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공소장에 박 대통령을 공범으로 적시하고 이를 발표했다는 것은 박 대통령 혐의 입증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라 봐야 한다"며 "이는 곧 헌법이 규정한 탄핵 사유가 성립됐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공소장을 보면 박 대통령은 자신의 직권을 남용해 기업들에게 강제로 돈을 모금하고, 일반에 공개해선 안 되는 공무상 비밀을 민간인에게 유출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며 "국회가 이를 탄핵 사유로 적시해 의결을 거치면 충분히 탄핵소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헌법학자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존에 나온 의혹과 자료만으로도 충분히 탄핵안 발의가 가능하지만 검찰의 입을 통해 이를 재확인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고운호 객원기자

[[키워드 정보] 최순실 특검·국조, 탄핵과 별도로 진행]

탄핵 심판 절차가 진행되면 소추위원이 돼 검사 역할을 맡는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새누리당 소속 권성동 의원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권력을 남용해 범죄 행위에 이를 정도로 법률 위반 행위를 벌였다"며 "일반 9급 공무원도 이 정도면 형(刑)을 받는데 국법 질서를 수호해야 하는 대통령 아니냐. 중대한 법률 위반 행위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판사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과거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도 기소 사실에 연동한 것이지 확정 판결에 따른 것이 아니다. 헌법상 재임 중 기소가 안 되지만, 검찰의 공소 요지를 살펴보면 박 대통령은 탄핵 요건 사항에 있는 헌법과 법률 위반에 다 해당한다"며 "공소장에 적시된 공모 혐의만 해도 내란·외환죄만 없을 뿐이지 사실상 국헌 논란 수준으로, (박 대통령은) 국사범(國事犯)과 다름없다"고 했다. 검사 출신인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은 "중대한 법률 위반, 헌법 가치 훼손 등을 자행한 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헌법을 수호할 수 있는 자격을 저버렸다"며 "박 대통령 본인이 (최순실씨 등이 연루된)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중하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검찰이 기소한 혐의가 사실이라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문턱도 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전문가들은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보고 있다. 당시 헌재는 노 전 대통령이 선거법 중립 의무 조항과 헌법 수호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하면서도 대통령을 파면시킬 만한 '중대한 직무상 위배'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노 전 대통령의 측근 비리에 대해 "대통령이 지시·방조했다거나 불법적으로 관여한 사실이 인정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허영 전 헌법재판연구원장은 "박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과 달리 직접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기업들에 돈을 내라고 요구했기 때문에 (이게 사실이라면) 헌재가 제시한 탄핵 사유인 '중대한 직무상 위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허 전 원장은 또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당선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탄핵소추를 의결한 국회의원들의 임기도 거의 끝나가는 시기였다"며 "박 대통령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데다 국민의 신뢰를 잃어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이므로 헌재도 이를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내년 초 임기가 끝나는 박한철 헌재소장과 이정미 재판관 2명의 교체 문제가 탄핵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절차상 대통령 탄핵이 결정되려면 헌재 재판관 9명(소장 포함) 중 6명이 찬성을 해야 한다.